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대상이 된 나를 만나주시면 나에게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예수님은 내게 무엇을 주려고 오셨나요?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고린도후서 5:17)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존재가 뒤집어지는 것,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또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복음 3:3)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우리는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처럼 묻습니다. “어머니의 태로 다시 들어가란 말입니까?”
인간 존재의 근본은 ‘생명’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을 ‘사망’이라고 표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를 ‘생명’이라고 표현합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인생을 보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에베소서 2:1) 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 결과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극단적인 선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전에 살았던 나는요?” 이전에 살았다고 꾸무럭거리고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그것은 죄에 대해서 산 것(반응하는)이지 하나님에 대하여는 죽은(반응할 수 없는) 자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생명이 있다 치고 그다음 뭔가 부족한 것을 주님이 채워주실 것을 기대했지만, 주님은 어느 때든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시고 주님께 다른 필요를 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썩을 양식이 필요한 자가 아니다. 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내가 필요하다.” 주님의 초점은 이렇게 항상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한 대로 예수님을 끌어다가 각색하고 옷을 입힙니다. 정치가 예수, 인권운동가 예수, 사회사업가 예수, 문화예술가 예수…. 그러나 성경 전체는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은 ‘생명’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믿고 믿지 않는 결과는 그래서 결국 생명을 얻느냐 못 얻느냐로 확 갈라집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규장.201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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