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칼럼] 복음을 향한 루터의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 사진: pixabay.com 캡처

“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내 양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내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 안전하지도 또 옳지도 않기에 나는 그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

어떤 의미에서 마틴 루터가 보름스(Worms)로 가는 길에 발을 들인 것은 우연이었다.

루터는 ‘박사’로서 교회의 교리를 옹호하고 어거스틴 수도사로서 교구 사제들의 사역을 돕겠다고 맹세했다. 1517년 면죄부 판매는 이 두 가지 부분에 있어서 루터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95개 반박문을 통해 면죄부를 공격함으로써 루터는 사회의 기둥이자 당시 권위의 정점에 있던 교황의 권력에 도전했고, 또한 교회법을 의식 그대로 지키는 데 관한 의문을 던졌다.

루터의 아이디어는 면죄부에 대한 사소한 논쟁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기에 실로 혁명적이었다. 사실 루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가 벌이는 일의 중요성을 더 일찍 감지했다. 루터는 지금 교황이 이끄는 시스템에 따라 이뤄지는 모든 성례가 과연 하나님이 규정한 의식에 맞게 수행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기존 기독교 신앙의 전반적인 이해와 실천 그 자체에 도전한 셈이다. 실제로 루터는 각종 성례보다는 말씀이 계시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임을 주장했다. 루터가 보름스 의회에 섰다는 사실은 그가 다름 아니라 성경이 주장하는 복음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그 순간은 교회 역사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보름스로 가는 여정

95개 반박문 이후 비텐베르크 신학 교수였던 루터에게는 엄청난 비난의 폭풍이 닥쳤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한 루터는 그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 보좌 앞에서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그의 삶의 기초로 삼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도 자신있게 설 수 있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세상에 바로 전파할 것을 소명으로 받았음을 확신했다. 그는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1521년 1월, 그는 파문되었다.

루터에 대해 화가 난 것은 로마 교회만이 아니었다. 교황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또한 독일 제국의 근본적인 통일과 그 지도자들의 권위마저도 흔들었다. 교회와 국가가 융합된 당시 상황은 특정 지역에 대한 임시 관할권을 가지고 있던 주교와 대수도원장들로 하여금 루터의 반박문에 대한 종교적이고 또한 정치적인 격한 반응을 일으키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특정 지역 통치자에 속하지 않는, 공작과 백작 등등 100개 이상의 제국 도시의 지방 자치 단체 대표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루터에게 동맹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그의 통치자이자 소리 없는 지지자였던 작센의 프리드리히 현공(Frederick the Wise of Saoxny)은 제국의 강력한 선거인이었다. 당시 제국 정부의 최고 엘리트 인사들은 루터를 제거하려고 맹렬히 노력하는 중이었다. 루터의 개혁 요구에 동조하는 일부 사람들조차 루터가 그의 논문 ‘교회의 바빌로니아 포로(The 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urch)’ 속에서 주장한 중세 가톨릭 성례에 대한 비판을 철회함으로 교회와 화해하기를 바랐다.

이러한 거대한 정치적 반대에 직면하고도 사라지지 않은 루터의 담대함은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 힘을 준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악한 영의 적극적인 적대감이 점점 커지고 또한 기독교인들이 각종 이데올로기의 분노에 직면하고 있지만, 그 어떤 왕과 권력자 앞에서도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루터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마 10:16). 하나님은 가장 끔찍한 상황에서도 그분의 구원 진리에 대해 간증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신다. 말로 또는 무기로 위협을 받을 때에도 주님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신다. 우리 앞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은 성도들의 삶과 죽음, 모두를 다 사용하여 결국은 그분의 왕국을 발전시키고 그 왕국이 임하도록 하심을 확신한다.

황제 앞에 선 루터

불확실한 운명에 맞서 보름스로 가는 내내 루터는 교황권에 반대하고 널리 퍼진 개혁 욕구에 생명을 불어넣은 영웅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보름스를 향한 모든 발걸음은 루터에게 그의 삶이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나움부르크에서 한 신부가 그에게 한 세대 전 피렌체의 개혁가였던 제롬 사보나롤라(Jerome Savonarola) 그림을 주었다. 루터는 (체코) 보헤미안 지방의 얀 후스(Bohemian Jan Hus)와 같이 자신과 비슷한 운명을 맞이한 다른 개혁자들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루터는 자신이 황제의 수배자 리스트에서도 첫 번째라는 소식을 듣고도 담대함을 잃지 않았다. 지붕에 붙은 타일만큼 많은 악마가 자신을 기다려도 보름스로 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고 루터는 말했다.

다음날 루터가 황제 카를로스 5세가 있는 의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판사는 루터에게 단 두 가지 질문에만 대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루터 앞에 있는 책들이 다 루터가 쓴 책인지, 그리고 그가 쓴 모든 글을 다 부인하고 철회하겠다는 명령에 따를 것인지였다. 루터의 법률 고문을 맡은 비텐베르크 법학 교수 제롬 슈르프(Jerome Schurff)는 책 제목을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루터는 어떤 책은 믿음을, 영혼의 구원을,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려할 시간을 요청했다. 카를로스 황제는 마지 못해 동의했다.

결국에 루터는 경건함과 좋은 기독교적 행동을 장려하는 그의 작품을 철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논문들은 기독교 신앙과 신자들을 훼손하는 거짓 가르침과 관행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루터는 그 글도 부인할 수 없었다. 루터는 글 중의 일부가 서둘러 쓰였고 그 순간의 열정에 사로잡혀 수도원 사제와 성경 교사에 걸맞지 않은 성급함으로 인한 거침이 글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그 점을 후회했다.

판사는 루터에게 그의 저작물 사이에 내용적인 구분은 용납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단자로서 그는 자신의 모든 거짓 가르침을 다 거부하라고 요구했다. 루터는 모든 저작물을 다 철회할 것을 강요받았고, 그렇게 하는 경우에 카를로스 황제가 교황 레오에게 파문을 해제해 달라는 특별 간청을 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루터가 계속해서 교황의 권위에 저항한다면 그는 다른 이단자와 동일하게 취급받을 것이었다.

여기에 대한 루터의 대답은 잘 알려져있다.

“성경 말씀 또는 명확한 이성에 의해서 설득되지 않는 한 (나는 교황이나 평의회 중 어느 쪽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에 틀리고 서로 간에도 모순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인용한 성경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내 양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내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 안전하지도 또 옳지도 않기에 나는 그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제발 나를 도우소서, 아멘.”

25년이 지나서야 등장한 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또한 이렇게도 말했다고 한다.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도무지 지금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루터가 정확하게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 말 속에는 그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루터의 입장은 분명했다. ‘명확한 이유’에 근거해서 루터는 교황이 일반적인 논리 및 정직한 성경 독해와는 양립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양심은 그에게 옳고 그름을 말하는 목소리 그 이상이었다. 그의 양심은 예수님과 성경을 통해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창조주에 대한 궁극적인 헌신뿐 아니라 동시에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지적 욕망이기도 했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제약을 받았다. 바로 이 사실 속에 개혁가의 위대함이라는 또 다른 유산이 있다. 루터처럼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많은 종류의 위협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 안에서 피어오르는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제약을 받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고 싶다는 우리의 인간적인 계획이 가진 거짓된 욕망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에 의한 임박한 처형을 걱정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은 항상 옛 자아의 죽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문화는 주님께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 다음에 놓으신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 ‘나의 즐거움’과 ‘나의 권리’에 대한 사랑을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유행하는 내적 지향의 삶을 죽이는 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믿음에 대한 위협에 맞서는 것보다 더 큰 용기와 더불어 성령님의 강력한 도움이 필요하다.

보름스에서 종교개혁으로

제국에 고용된 스페인 군인들이 “꼬챙이에 꽂아서 죽여라”라고 외치는 와중에 제국의 관리들은 루터를 의회에서 밖으로 데리고 갔다. 의회에 참석했던 왕자, 귀족 및 지방 자치 단체 대표들은 심의할 시간을 요청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보름스에 불안을 조장하고 있는, 루터에 대한 대규모의 대중적 지지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루터에 반대하는 신학자 및 정치 고문과의 결실 없는 한 주간의 격론 끝에 루터는 보름스를 떠났고, 카를로스 황제는 그를 무법자로 선포하고 그의 모든 저술과 추종자의 근절을 명령했다.

루터는 여행 중에 납치되었지만 이것은 루터를 바르트부르크 성(Wartburg Castle)에 숨겨두기 위한 그의 친구 프리드리히 현공의 계획이었다. 그곳에서 루터는 11개월 동안 신약성경을 번역하고 여러 교육 프로그램, 그의 첫 번째 우편물 및 기타 여러 논문을 작성했다. 그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교회와 사회 속으로 전파되었고,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보름스 의회는 루터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단지 무법자로 낙인 찍힘으로 이동에 제한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말은 인쇄술을 통해 훨씬 더 강력한 이동성을 얻게 되었다. 성경 말씀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간증은 독일어와 라틴어로 전파되었으며, 덴마크어, 영어, 헝가리어, 폴란드어, 스웨덴어 및 기타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 전역과 마침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로 퍼졌다.

보름스에서 루터가 교황과 황제가 가하는 처형의 위험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선포했던 말은 즉시 널리 퍼져 나갔다. 망명이나 처형의 위협을 받는 다른 개혁자들은 루터로부터 용기를 얻었다. 루터의 어거스틴수도회 동료인 얀 반 데르 에쉔(Jan van der Esschen)과 헨드릭 보에스(Hendrik Voes)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루터가 피했던 바로 그 운명을 만났다. 그들은 2년이 지나고 브뤼셀(Brussels)에서 꼬챙이에 찔려 죽음을 당했다. 500년이 지난 후, 보름스에서 드러난 루터의 모습은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간이 주는 최악의 위협 앞에서도 예수님이 주님으로 역사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용기 있는 신앙고백의 모델을 제공한다.

500년이 지난 후 우리의 상황은 1521년에 루터가 직면했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점점 더 신앙에 대한 적대감에 직면한다. 신자들은 종종 다음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취한다.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할 때 만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담대하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외칠 뿐 아니라, 그 진리를 위해서는 나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존재의 중심이자 주인이다.

한편 위기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는 자신감에 넘치다가 막상 위기를 만나면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도망칠 문을 찾았던 베드로처럼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도 있다. 심각한 위협이나 고난에 맞서기에는 충분한 용기가 없다고 절망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걱정하면 안 된다. 성령님께서 때에 맞는 은사를 통해서 우리를 도우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이 시대 속에 그분의 이름과 진리의 증인으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삶 속에서 그분의 임재와 도우심을 의지해서 선한 용기와 강한 믿음을 가져야한다. 우리가 그분을 증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끼거나 또는 그분의 말씀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굴복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떨든지 관계없이,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의 인도자이자 위로자임을 확신해야 한다. 성령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든든한 보호자이시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때가 되었을 때 어떤 말을 할지 가르쳐 주시고 주님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우신다.

“ 루터의 모습은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간이 주는 최악의 위협 앞에서도 예수님이 주님으로 역사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용기 있는 신앙고백의 모델을 제공한다 ”

로버크 콜브 Robert Kolb | 미국 세인트루이스 시의 Concordia Seminary 교수.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20241218_Creation
[TGC 칼럼]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새 땅’이다
1218re
[김종일 칼럼] 2024 세계 이주민의 날에 생각하는 한국 교회의 사명과 역할
alex-shute unsplash
[GTK 칼럼] 진리가 무엇이냐?
pexels-241216-man-attention-listen
[TGC 칼럼] 아플 때까지 듣자

최신기사

한국 교계, 국난 처한 나라 위해 20일 '금식 기도의 날' 선포
[오늘의 한반도] 韓 국민 다수, 전통 성개념.남녀 간 결혼 지지… 제3의성.동성커플엔 부정적 외 (12/19)
[오늘의 열방] 러시아, 주거지 내 예배 금지 법안 발의 외 (12/19)
미 학교 총격, 2021년부터 급증…건수·희생자 10년새 4배
[TGC 칼럼]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새 땅’이다
“복음캠프 이후, 복음을 살아내는 삶이 시작된 것 같아요”
[김종일 칼럼] 2024 세계 이주민의 날에 생각하는 한국 교회의 사명과 역할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20241219_1027 United Worship Service of the Korean Church
한국 교계, 국난 처한 나라 위해 20일 '금식 기도의 날' 선포
gay-wedding-unsplash
[오늘의 한반도] 韓 국민 다수, 전통 성개념.남녀 간 결혼 지지… 제3의성.동성커플엔 부정적 외 (12/19)
russia-241219-unsplash
[오늘의 열방] 러시아, 주거지 내 예배 금지 법안 발의 외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