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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고린도전서 설교가 필요한 이유

▲ 사진: unsplash

바울은 결국 인간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우리는 인간으로서 당시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특히 복음을 삶 가운데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든 적용될 수 있는 주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설교자는 주제설교를 선호한다. 그래서 설교 준비를 할 때도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한 후 그에 관한 성경구절을 모은다. 물론 우리 교회에서도 주제설교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설교하면, 결국에는 청중에게 묽은 죽을 먹이는 꼴이 된다.

주제설교만 고집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설교자는 말씀 준비에 요구되는 부담을 피해 가게 된다. 난해한 본문과 씨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고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사랑’만 이야기해도 된다. 그러나 청중이 난해한 본문을 포함해서 성경의 모든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주제설교로는 그 청중을 제대로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의 각 권을 전체적으로 설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옳게 다루도록 청중을 가르쳐야 한다.

강해설교는 교회만이 아니라 설교자의 영혼에도 큰 유익을 준다. 우리는 설교를 준비할 때 깨닫게 된 진리를 모두 다 설교할 수 없다. 그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석 같은 진리는 감사하게도 설교자의 마음에 남게 된다.

주제설교만 고집할 때 따라오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수년 동안 내가 확인한 바로는, 성경에서 어려운 본문을 올바로 이해하고 설명할 때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인 설교가 전해지곤 하는데, 주제설교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혼의 문제를 두고 씨름하게 만드는 본문, 기독교인으로서 독신으로 살아가는 게 어떠한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본문, 또는 바울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고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본문을 연속적으로 설교하게 되면, 청중은 계속해서 성경의 흐름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리고 혹 그러한 본문이 다루고 있는 애매한 문제에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설교자가 각 본문을 다루는 자세는 청중 앞에 성경의 난해한 부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모델이 된다.

고린도전서를 설교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고린도전서를 설교해야 하는지 여기에 네 가지 이유를 소개하고자 한다.

1. 고린도전서는 우리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당신은 성경의 모든 본문이 우리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고린도전서가 현대 사회와는 관련이 없으며 기껏해야 다른 시대를 위해 쓰인 편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내려놓기 바란다. 고린도전서는 복잡하지만, 오늘날과 동떨어진 문제를 다루는 성경이 아니다. 고린도전서가 복잡한 이유는 단일한 주제만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편지에는 수많은 문제가 등장하며 그러한 문제가 서로 엮여서 전체 내용을 구성한다.

고린도전서를 읽는 일은 마치 누군가의 통화를 한쪽에서 엿듣는 일과 같다. 편지의 대부분이 고린도 교인들의 물음에 답하는 바울의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린도 교인들의 물음을 직접 들을 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편지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는데, 바울이 언뜻 보기에 다소 이상한, 오늘날과는 그리 상관없는 당대의 문화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현대 사회에서는 우상의 제물로 고기가 바쳐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아가 바울은 이 시대의 독자들이 가볍게 읽어서는 오해할 수밖에 없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표면을 살펴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금맥과 같은 성경의 원리가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원리는 우리의 설교 준비를 더욱 심도 있게 만든다. G. K. 체스터튼(Chesterton)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린도전서는 아쉬움을 찾을 수 없는 성경, 여전히 어렵고도 아직 다루어진 적이 없는 진리로 가득한 성경이다.

나는 고린도전서 시리즈를 마치고 났을 때, 그 내용이 오늘날 교회와 얼마나 관련이 깊은지를 돌아보며 새삼 놀라게 되었다. 그토록 상관성이 깊은 주제 중에는 예상한 내용도 있었다. 가령 교회의 분열이나 성적 순결성 또는 신앙의 존속을 위한 부활의 필연성 등이 그에 속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주제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11장에서 여자의 머리에 덮는 수건을 언급할 때 거론되는) 성 정체성의 문제가 그러했다. 내가 있는 이라크에서는 교회에 설교를 들으러 오는 여성에게 지금도 머리를 가리도록 허용하고 있다.

어떤 주제는 내가 있는 지역에서 특별한 관련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 교회는 쿠르디스탄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란과 시리아 그리고 터키에 의해 둘러싸인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바울의 과거사, 즉 이 편지의 저자가 원래는 테러리스트였다는 설명을 하자, 청중은 그 내용을 더욱 주의 깊게 듣게 되었다.

이외에도 우리가 처한 상황에 구체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왜냐하면 바울은 결국 인간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우리는 인간으로서 당시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복음을 삶 가운데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든 적용될 수 있는 주제다.

물론 우리는 고린도만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양극화된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다. 실제로 고린도와 같은 도시를 본 적도 없다. 또한 오늘날도 여러 가지 성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1세기 고린도 교회만 직면했던 문제도 있으므로 그 특수성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고린도전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세속적인 분열을 예방하기 위한 지침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고린도전서의 주제는 당신이 섬기는 교회가 변화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목사로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떤 종류의 교회를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이를테면 복음 중심적이고 십자가 진리를 붙드는 공동체, 즉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공동체를 원할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멤버가 진실한 세례 교인으로서 거룩한 생활을 요구하는 언약 관계를 반영하고, 복음의 은혜 가운데 서로를 돌보며 장로들의 리더십에 기쁨으로 순종할 뿐 아니라, 세상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공동체를 원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와 같은 교회를 원한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를 설교하면 교회가 그렇게 변화되겠는가? 글쎄, 반드시 그렇게 변화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를 위한 기초를 놓을 수는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는 교회를 갈라놓는 여러 문제에 대해 정면 공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세속적인 분열을 예방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침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또한 성적으로 문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 가운데 퍼져 나가는 정욕적이고 육감적인 성격의 죄악을 멀리하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습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3. 고린도전서는 성경적 교리와 목회적 정서 모든 면에서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고린도전서는 건강한 교회를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가령 1장에서 우리는 성경적 회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바울의 뚜렷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5장에서는 권징의 원리를 확인할 수 있고, 14장에서는 교회 전체가 예수님을 증언하는 모습이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전체에 걸쳐서는 교회 멤버십의 필요성과 실제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그토록 까다롭고, 죄악 되며, 다투기 좋아하는 공동체를 바울이 어떻게 사랑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이는 성경적 제자훈련의 정신을 보여 주는 모델이 된다.

나는 바울이 그 문제 많던 성도들을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살펴보기 좋아한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베푸신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를 표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날까지 예수님이 그들을 흠 없는 모습으로 보전하시리라고 이야기한다. 흠 없는 모습으로? 그렇다. 바울은 그 죄인들에 대해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진 성도라고 언급하며 편지의 서두를 연다(고전 1:2). 거룩한 성도 말이다.

그러다가 편지의 본론에 가서 고린도 교인들이 저지른 온갖 죄악을 거론한다. 그들은 잘난 체하며 불화를 일으켰고, 서로를 법정으로 데려가려 했으며, 음란한 행위를 벗어던지지도 못했다. 게다가 교리적인 이해도 느슨했고, 도덕적인 행동거지도 해이했다. 나아가 사랑의 정신은 없으면서 사소한 신학적인 문제에만 매달렸다. 또한 기꺼이 이혼을 용납하고, 성찬 자리에서는 곧잘 술에 취했다. 그리고 파벌과 다툼을 일삼았다. 심지어는 바울의 사도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모든 사실을 감안한다면, 편지의 결말에 이르러 바울이 이러한 마지막 문장을 남긴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난 이제 내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고전 16:24). 바울은 복음의 은혜 가운데 그 문제 많던 성도들을 끝까지 사랑했던 것이다.

이처럼 고린도 지역에 있던 교회는 실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던 실제적인 교회였다. 당신이 섬기는 교회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청중이 들어야 할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편지에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여러 가지 교리적인 내용을 그로부터 들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바울이 보여 준 사랑으로 당신이 교회를 사랑하며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듣고 배울 필요가 있다.

4. 고린도전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저 사람들만 내보낼 수 있으면, 더 좋은 교회를 이룰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바울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고린도전서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해 준다. 또 성경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혹 교회가 엉망진창이더라도 교회의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이끌어 준다.

바울은 교회에 대해 장기적인 비전을 품었다. 당신도 쉴 새 없이 재현되는 당치도 않은 모든 문제를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진전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도구가 교회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나라가 진전되기 위해서는 인내와 자비와 긍휼과 관용의 자세가 필요한데, 바울은 바로 그러한 자세로 고린도 교인들을 대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역사하여 빌립보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신앙의 완성에 이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빌 1:6). 다시 말해, 교회를 구성하는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신뢰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교회를 이루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모델이 된다.

고린도전서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해 준다. 또 성경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혹 교회가 엉망진창이더라도 교회의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이끌어 준다

맥 스타일즈 Mack Stiles | 중동에 거주하며 한 다국적교회의 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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