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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기도는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두 기둥”

사진: Cdoncel on unsplash
신구약을 통해 본 복음과 기도의 성경적 근거

복음과 기도가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해 주님이 허락하신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순회선교단 부설 복음기도신학연구소(소장 유영기 목사) 창립 첫 복음기도신학포럼이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견고한 두 기둥으로 복음과 기도’를 주제로 지난 15일 천보산민족기도원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기도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김명호 교수(고대근동언어성지문화연구소 소장)가, 세례의 관점에서 본 복음의 성경신학적 이해에 대해 유영기 교수(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가 각각 주제논문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응답자로는 이종환 목사(영산교회 담임)와 이동주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선교신학)가 구약부분을, 정용비 목사(전주온누리교회 담임)와 송준인 목사(청량교회 담임.총신대 석좌교수)가 참여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주제 논문 요약문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생명으로 사는 총체적 복음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라 … 의의 병기로 드리라

유영기 교수(복음기도신학연구소 소장)

복음의 성경적 이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세례이다. 복음을 처음으로 선포한 세례 요한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례를 행했으며, 예수님 역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세례받으심으로부터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음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복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영원한 형벌 가운데 있는 인간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될 뿐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다.

‘ 십자가 사건 이후 복음을 총체적으로 다룬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고 죽음을 통과하여 의롭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동참하게 되고 의의 병기로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즉,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 다시 말해서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 세례라는 것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나서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갈 때에 진정으로 성경이 말하는 총체적인 복음이 될 수 있다. 이 복음은 그러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변치 않고 절대적이고 영원하다. 과거나 현재에도, 빈한 자나 부한 자에게도, 남녀 누구에게도, 인종의 구분 없이 누구에게도 필요한 절대적인 복음이다. 이러한 영원한 복음을 몇 가지 주제별로 살펴본다.

◇ 예수님의 공생애와 복음 =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 그리고 광야의 시험을 거치셨다. 첫 사람 아담은 실패했으나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고,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통하여 실패를 경험했으나 예수님은 40일 금식을 승리하셨고, 만나와 기적을 경험하고도 이스라엘은 실패했으나 예수님은 40일 금식이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아들로서 마귀를 이기셨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의 복음의 일련의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를 받으심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과 죄인들의 친구로 오신 예수님을, 그리고 성령이 임하심은 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종 된 자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감당하기 위한 능력이 임하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은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실 십자가 죽음의 시험에서 승리하실 분임을 미리 입증하는 사건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삶과 죽음와 부활에 기초한 구원 역사 사건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세례 =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세례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죄 없으신 하나님이 죄인과 연합하여 죄인들의 대표자가 되어 그들의 죄를 대신하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의 삯을 지불하는 죽음이며 죄인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하는 사건은 분명 복음이다. 바울은 세례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함으로써 복음의 기원과 권위가 하나님께 있다고 밝혔다.

또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표현으로 그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즉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복음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요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복음이 온전해진다.

◇ 율법과 복음 = 율법과 복음을 대조적인 것으로 보거나 반대적 개념으로 보는 것은 성경을 균형 있게 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다. 이제 율법 시대는 지나갔고 복음 시대, 혹은 은혜 시대가 도래했다”는 생각도 바른 성경적 관점은 아니다. 물론 율법과 복음은 불연속성도 있고 연속성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음은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성취이다. 율법의 행위로 의에 이르지 못하지만 율법은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롭게 사는 일에 규범적인 역할을 감당한다.

◇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세례에 관한 바울의 이해 =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살아야 할 것이라고 바울은 말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된 자들이기 때문에 새 생명 가운데 행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은 자들이며, 장사 지낸 바 된 사람이다. 그리고 세례는 또한 부활의 새 생명 가운데서 걸어가는 자들이다. 이것이 진정한 세례의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는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죄의 몸을 멸하는 것이며 우리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함께 못 박는 것이다. 죄의 종 노릇을 그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된 성도들도 여전히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죄의 유혹과 범죄함이 있을 수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라는 것이다. 둘째, 죄로 죽을 몸에 왕 노릇하게 하지 말고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믿는 자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고 자신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면 죄가 믿는 자를 주관하지 못한다고 바울은 결론을 내렸다.

기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으로 넘어지는 행위

주님의 날이 응답으로 영광가운데 임할 것

김명호 교수(고대근동언어문화성지연구소 소장)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복음과 기도의 두 기둥’은 순회선교단이 결론으로 붙잡고 믿음으로 삼고 있는 주제이다. 복음이 믿음을 통해 실제가 되게 하는 기도영역을 히브리 본문을 근거로 고찰했다.

전통적으로 기도는 간구하는 것, 얻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사용된 기도에 대한 원문(히브리 단어)의 단어와 문맥에 대한 의미를 살펴볼 때 기도는 이런 의미를 넘어서 그 이상의 뜻을 담고 있다.

먼저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히트파엘(기도하다)이라는 단어는 ‘기도하다’는 뜻의 ‘트필라’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시35:13에 따르면, 기도를 하는 사람의 그 행위의 결과가 기도하는 자신에게 돌아온다. 또 기도는 온 힘(전심)을 써야 한다.

그러므로 가벼운 기도란 있을 수 없다. 이 연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한다는 히브리 단어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패역한 존재여서 기도를 잘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이밖에도 ‘기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다양한 단어가 있는데, 이 논문은 그중 3개의 용어를 중심으로 기도의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첫째로 ‘엎드러지다’ ‘넘어지다’ ‘떨어지다’ 라는 뜻을 가진 ‘나팔’이라는 용어다.

시91:7의 엎드러지나(이폴)의 어원은 나팔(엎드린다)이다. 구약성경은 또 엎드린다는 의미를 갖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자들의 반응임을 알 수 있다(겔1:28). 기도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으로 믿음으로 넘어지는 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넘어진 곳에서 자신의 원함을 거룩한 불로 100% 부정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야 한다는 것이다(민 16:4, 신 9:25f). 오늘날 성도는 긍휼이 크신 여호와의 손에 함께 넘어져 이 땅을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죽어도 여호와의 손에 넘어져, 죽더라도 생명이 있는 그 자리, 우리를 살릴 수 잇는 십자가의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도 주전 8세기에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며 ‘세상으로, 사람의 손으로 넘어져서는 안되며, 말씀으로 넘어져야 한다고 외쳤다.

둘째 ‘기도하다의 히브리 어원 피엘의 원래 의미는 ‘끼어들다’ ‘개입하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기도란 자신이 나름대로 고민하고 생각한 것을 정리해 주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재하는 것이다. 시 106:30의 비느하스의 중재하다에 사용된 단어가 바로 피엘이다.

이를 새번역으로 ‘심판을 집행하니’ 이며 공동번역으로 ‘법으로 다스리자’라고 번역되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도의 자리는 심판의 자리이다. 이처럼 기도의 자리는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그 분 앞에 나아가는 자리이다.

실제로 구약에서 이같은 피엘이라는 단어는 소돔 멸망에 대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창 18:22-32), 아말렉 전쟁에 대한 모세의 중보기도(출 17:8-16), 블레셋 전쟁에 대한 사무엘의 중보기도(삼상 7:5-9)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셋째 ‘간구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타르가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구한 그대로 들어주시는 기도의 의미라는 뜻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아타르 동사는 현대에 와서 기도하다라는 의미 대신, 법정용어로 간구하다 간청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이 아니라 대법원에서만 특별한 간청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창 25:21에 아내의 잉태를 위한 이삭의 간절한 간구를 들어주시는 기도를 가리킬 때 바로 ‘아타르’를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도는 단순히 구한다는 기본 의미를 넘어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믿음의 행동이요 순종을 뜻한다. 그리고 그 넘어진 곳에서 자신의 원함을 거룩한 불로 100% 소멸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뤄지는 축복의 자리가 바로 기도의 자리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의 온전한 뜻을 좇아 간청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해 부분적으로가 아닌, 통째로 응답하신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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