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부름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비록 나중에 허사가 될지라도 뭔가 계획이 있고, 대책이 있다고 여길 때 그것을 자기 마음에 위안을 삼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길로 초대하실 때, 갈 바를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지시할 곳’으로 가라고 하셨지, ‘지시한 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아갈 곳’을 보지 말고, ‘지시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걸음은 바로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믿고 걸음을 걷도록 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의 길을 떠날 때, 이전의 내 삶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내입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 10:36~39)
주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이 소중한 인내를 성령의 열매로 준비해 두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이루시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인내인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 8:24,25)
보이는 소망, 이 땅에서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식선에서 결과가 보이는 것,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소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 즉, 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차원, 지금의 차원이 아니라 영원한 그날의 차원, 나의 무능의 한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의 한계를 바란다면 그 엄청난 소망에 걸맞는 인내, 그 엄청난 꿈을 담아낼만한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물러서지 말고 주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서 진리를 결론삼고 인내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복음 안에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벧전 5:10)
그렇습니다. 나로 인내의 길, 믿음의 온전함에 이르게 하시는 것은 나의 어떠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내는 우리에게서 쥐어짜내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의 본질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축복이요, 특권이요, 믿음의 위대한 능력입니다. 믿음을 써야할 기회, 참고 기다려야할 기회가 오거든 이 놀라운 특권을 사용하십시오!
<순회선교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