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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삶 속에 적용되는 칭의 교리

▲ 존 칼빈 동상 출처: Pixabay

“종종 칭의 교리가 가진 실질적인 본질이 간과되고 있다. 그것은 때로 이 교리가 가진 용어와 개념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John Calvin,1509–64)은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야말로 “기독교를 지탱하는 근본 원리다”(기독교 강요, 3.11.1)라고 강하게 선언했다. 16세기 종교 개혁의 실질적인 원리로 알려진,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는 교회에 꼭 필요한 개혁을 가져오려는 영적 전쟁에서 중심이 된 주제이기도 하다. 로마와 갈라디아 교회에 쓴 바울의 편지에 성경적인 이 교리가 분명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여겨지는 교리이기도 하다.

칭의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볼 때, 교리의 세밀한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좀 거칠게 말해서, 만약에 이 칭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복음 전체를 아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를 담은 성경의 가르침을 용기있게 지켜온 신실한 신앙 선배들이 남긴 풍부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칭의에 관해서 명확하고 간결한 정의를 제시한다.

“칭의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의 행위이며,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우리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다”(WSC 33).

다른 말로 하면,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된 것에 기초한 우리의 믿음을 향한 하나님의 합법적인 행위다.

그러나 종종 칭의 교리가 가진 실질적인 본질이 간과되고 있다. 그것은 때로 이 교리가 가진 용어와 개념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교리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적용 가능한지를 아예 놓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단순하게 지식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적용할 수 있는 것도 많겠지만,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이 교리를 적용하는 데는 다음 네 가지의 실질적인 방법이 있다.

확신

믿음으로 인한 칭의 교리를 실제로 적용하는 첫 번째는 바로 확신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생각되지 않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낙담한 날, 흔들리는 날, 죄를 많이 지은 날, 그래서 “이런 내가 과연 그리스도인일까?”라는 질문에 하루종일 괴로운 날도 있다. 그러나 이럴 때 칭의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내가 다시 태어났고, 나는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갈 2:20) 있음을 확신하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속 사업을 완성하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으며, 또 우리를 성령으로 인치셨다. 칭의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칭의가 필요없음을 보증한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법정 앞에 선 타락한 죄인들이 이제는 “칭의로 인해 의롭게 되었다”라고 선언하셨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칭의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준다. 따라서 낙담하는 날을 만나거나, 또 불안함을 느낄 때, 우리는 오로지 믿음만으로 영원히 솟아나는 의로움의 샘을 마시면서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으며, 또한 “너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스도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방어

로마서 8장 마지막에서 바울은 이렇게 주장한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33-34절).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칭의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신자를 보호한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고 고발할 때,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단단한 기초를 무너뜨리려고 할 때, 우리의 죄가 너무 크다고 정죄할 때, 또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진짜로 구원 받았다고 분명히 말한 적은 없잖아?”라고 속삭일 때, 우리는 성경의 권위에 의지해서 이렇게 선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내 내면에는 의로운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치거나 드릴 것이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고 하시는 분이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9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그렇게 할 때 사탄은 우리로부터 도망갈 것이다. 고발당할 때, 의심의 유혹을 받을 때, 우리 영혼의 대적으로부터 커다란 정죄함을 당할 때,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주는 높은 칭의의 탑으로 피하자. 그의 독생자를 통해서 우리를 받아들인 하나님 안에서 위안과 피난처를 찾도록 하자.

겸손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당신의 능력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왜? 바울이 그렇다고 말하니까, 그래서 아무도 자랑하지 말라고 하니까. 정말로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 것이라면, 우리는 자랑할 게 없다. 오히려 칭의 속에 숨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남는 것은 겸손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묵상할 때, 거기에는 조금도 자만심이 끼여들 여지가 없다. 사실, 우리의 반응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제거하셨고, 우리의 죄를 아들에게 두셨으며, 그 아들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심으로 결국 아들의 공로를 통해 우리를 의롭게 여기셨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 어떤 진리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만든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이 교리를 묵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27절). 이것은 마치 바울이 우리 어깨를 붙잡고 우리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묻는 것과 같다. “뭐야? 네가 도대체 자랑할 게 뭐가 있냐고? 자랑할 건 아예 없어. 여기에 인간의 자랑이 들어갈 여지는 아예 없다고.” 바울이라면 자만심에 찬 그리스도인은 아예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할 것이다. 칭의는 은혜 그 자체다. 우리 자신의 은혜가 아니라 자격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므로 자랑과 찬양과 영광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향해야 한다.

감사

칭의에 대한 바른 성경적인 관점을 갖게 되면 감사가 우러난다. 칭의가 공로와 관계 없이 오로지 믿음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될 때, 칭의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될 때, 우리가 용서 받고 의롭다고 선포되고 또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무한한 감사가 우러나오게 된다. 그런 감사는 타락한 죄인들이 의롭게 받아들여질 방법을 무한한 지혜로 생각해낸 하나님을 향해 쉬지 않고 예배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믿음으로 인한 칭의는 모든 신자들이 천사의 군대와 그들의 목소리에 합류하도록 만들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거룩하며 거룩하신 분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다”라고 부르짖게 만든다. 칭의를 생각하면서도 우리 속에 예배와 감사의 삶이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칭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분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게 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럼으로써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는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믿음으로 인한 칭의는 단지 토론 또는 신학적인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의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교리를 올바르게 이해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고, 사탄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고, 겸손한 마음을 키울 수 있으며, 또한 지속적인 감사의 삶을 누리게 된다.

“고발당할 때, 의심의 유혹을 받을 때, 우리 영혼의 대적으로부터 커다란 정죄함을 당할 때,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주는 높은 칭의의 탑으로 피하자”

네이트 피코비치 Nate Pickowicz | 뉴햄프셔주 길맨턴아이언웤스 Harvest Bible Church의 목회자. ‘Why We’re Protestant’를 비롯, 다수의 책을 저술하고 편집.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를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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