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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복음,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소식

ⓒ 안호성

로마서1:16-17 절의 참 意味(6)

로마서 1:16-17절 말씀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이다. 복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갈 2:20절과 더불어 많은 분들이 암송하고 있는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 없이, 또 생각을 했어도 꼼꼼히 성경을 보지 않고 그냥 진정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외웠던 말씀이 아니였나 생각이 된다. 헬라어 텍스트로 롬 1:16-17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1. 헬라어 본문

16 οὐ γὰρ ἐπαισχύνομαι τὸ εὐαγγέλιον· δύναμις γὰρ Θεοῦ ἐστιν εἰς σωτηρίαν παντὶ τῷ πιστεύοντι, Ἰουδαίῳ τε πρῶτον καὶ Ἕλληνι. 17 δικαιοσύνη γὰρ Θεοῦ ἐν αὐτῷ ἀποκαλύπτεται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Ὁ δὲ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그 복음(τὸ εὐαγγέλιον)

1) 그 복음(τὸ εὐαγγέλιον)이 어떤 복음이길래?

그 복음(τὸ εὐαγγέλιον), 그 복음이 과연 무엇이길래? 왜 그렇게 바울은 자랑하고 싶은가? 그 복음에 미치고 싶은가!

그 복음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구원하여 살리신 복음(행 9:1-22)이요,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불러 그 사명을 성취하게 한 영광스러운 복음이였다(롬 11:13, 갈 2:8).

우선, 기쁜 소식, 복음이란 말의 헬라어는 두 단어가 아니고 한 단어다. 중성명사로 “εὐαγγέλιον”(유앙겔리온)이다. 히브리어는 무엇일까? 역시 여성 명사인 “בְּשׂוֹרָה”(베쇼라)다.

영어나 우리 번역처럼, 복음(福音)은 왜 두 단어가 아닐까? 왜 두 단어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말이다. “좋은 소식, good news.” 헬라어도 두 단어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헬라어에도 “소식”이란 단어가 있었다. “앙겔리아”(소식) “앙겔리아 칼라”(좋은 소식) 히브리어도 마찬가지이다. “하다쇼트 토보트”(좋은 소식) 이렇게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여러 소식들 중, 거기에는 좋은 소식도 또 나쁜 소식도 별 소식이 다 있다. 이런 경우는 헬라어로는 “앙겔리아”라 히브리어로는 “하다쇼트”라고 한다.

그런데 복음은 그런 것들 가운데 좋은 소식이 아니다. “유앙겔리온” “베쇼라”는 소식은 소식인데 특별한 소식,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unique) 소식이다(참조, 요 3:16, μονογενής monogenes). 이는 마치 히브리 명사에 붙은 정관사와 같다. “그 소식”, 한정되어진다.

Par Excellence!”(대단히 뛰어난!)

2) 구약에 예언된 복음

이 특별한 소식이 구약에 이미 예언되었다. 문자적으로 기쁜 소식이 이사야서에 쓰여있다. 개역 성경 이사야서 말씀을 보면 두 단어로 나와 있어서 혹 이렇게 말하는 것이 틀리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구약에서 가져온 “복음”(בְּשׂוֹרָה), 히브리 본문을 보면 역시 한 단어이다. 히브리어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복음”이란 단어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 포로상태에서 석방될 때 사용하였다. 묶여진 것에서 풀어지는(요11:44, 행2:24) “자유”를 의미한다. 자 보자.

이사야 52:7
“좋은 소식(מְבַשֵּׂר טוֹב)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히브리 본문을 보면 정말 멋있는 문장 구도이다. 분사 형태에 목적어로 명사를 사용했다. 히브리 본문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 선한 것(טוֹב)을, 즉 복음을 선포한다는 말이다.

어찌 아름다운지!
산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발이

평화를 공포하며(מַשְׁמִיעַ שָׁלוֹם)
좋은 것을 전하며(복음을 전하며, מְבַשֵּׂר טוֹב)
구원을 공포하며(מַשְׁמִיעַ יְשׁוּעָה)

로마서에서 바울이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했다. 헬라어 성경은 히브리 본문을 알았기에 그대로 정확히 받아 해석을 했다(참조 시 85:12, Heb. 13): τῶν εὐαγγελιζομένων τὰ ἀγαθά. 우리 성경이나 영어 성경처럼 형용사로 해석을 하지 아니하였다.

로마서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τῶν εὐαγγελιζομένων τὰ ἀγαθά)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사 61:1-3에서도, 그 기쁜 소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를 말하고 있고,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좋은) 소식(לְבַשֵּׂר)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 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역시 여기서도 한글 번역으로 만 보면, 또 히브리어를 잘 모르면, “좋은 소식” 두 단어로 풀어 놓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한 단어다!

רוּחַ אֲדֹנָי יְהוִה עָלָי יַעַן מָשַׁח יְהוָה אֹתִי לְבַשֵּׂר עֲנָוִים

”레바쎄르”(לְבַשֵּׂר) 히브리 피엘 동사의 부정사를 사용하여 그 복음이 특별함을 이미 히브리 문법에 담아 놓았다. 늘 강조하여 말했지만, 그 복음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그 싹을 이미 담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언어가 매우 중요하다.

누가 4:16-19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과 해방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 바로 참 복음의 의미다(참조. 시편 85).

따라서 여기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한 “유앙겔리온”(τὸ εὐαγγέλιον) 좋은 소식, 복음이란, 예수 믿고 잘되어 이 땅에서 기껏 신세 풀어지는 인생가운데 일어나는 한낱 사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τὸ εὐαγγέλιον”(토 유앙겔리온)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다 정확히 알려면 그 역사적인 배경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당시 그 역사속에서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어졌는가? 왜냐하면 로마제국 당시에도 기독교 밖에서 복음,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 계속됩니다. [복음기도신문]

kim mh

김명호 | 헤브론선교대학교 성경언어대학 교수. 복음과 기도의 기초 위에 성경의 원어 연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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