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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원론적 신학을 극복하라

ⓒ 현승혁

“ 이원론은 영적이며 거룩한 것을 나머지 삶과 분리하는 철학이다 … 이는 기독교가 현실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제공하며, 삶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평안과 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대할 뿐이다 ”

지난 해 12월, 필자의 책 ‘팀 켈러의 신학적 비전’(CLC_기독교 문서 선교회)이 세상에 나왔다. 책은 말 그대로 팀 켈러의 신학적 비전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가 자신의 저서 30여 권에서 다루는 각각의 주제를 어느 정도 세세하게 소개하는 일을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그 책을 저술한 목적은 단지 켈러가 말하는 신학적 비전의 큰 그림을 그리고 켈러 사상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필자가 책을 통해서 정말 하고자 했던 말은, 켈러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신학적 비전은 1) 하나님과 2) 그리스도인 개인 및 공동체, 그리고 3) 믿지 않는 이웃(과 그들이 숨쉬며 살아가는 도시 문화) 사이에 어떻게 해야 복음을 통해서 연결과 소통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묻는 작업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켈러의 신학적 비전은 정말로 그런 작업을 수반하고, 그런 질문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는가?

켈러가 자신의 신학적 비전을 가장 광범위하고도 세밀하게 다룬 ‘센터처치’를 살펴보면 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 켈러는 같은 책 후반부에서, 실제적인 교회의 사역이 추구하는 바를 네 개의 사역 접점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이 각각의 사역 접점은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과 사명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지만, 켈러가 왜 ‘센터처치’를 썼는지, 더 나아가 왜 신학적 비전을 말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1. 사람들을 하나님께 연결하는 것 (전도와 예배를 통해서)
2. 사람들을 서로에게 연결하는 것 (공동체와 제자도를 통해서)
3. 사람들을 도시에 연결하는 것 (자비와 정의를 통해서)
4. 사람들을 문화에 연결하는 것 (신앙과 직업의 통합을 통해서) (센터처치, 616)

이 네 가지 사역 접점은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를 규정하며, 교회가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 그 까닭을 설명해준다. 켈러는 연결시키는 공동체가 교회라고 본다. (연결이 저절로 소통을 담지한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들을 연결하고, 사람들을 서로에게 연결하며, 사람들과 도시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문화를 연결하는 일이 켈러가 바라보는 교회의 주된 사역이다. 켈러의 신학적 비전은 어떤 목회자든, 어떤 교회든, 각각 처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이런 네 가지 사역 접점을 어떻게 추구해야 할 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게 해준다. 그러므로 신학적 비전을 찾아가기 위해서 켈러가 제시하는 여덟 개의 질문은 바로 그런 점을 역설한다.

나는 신학적 비전을 형성하기 위해 비슷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제안한다. 우리가 이 질문들에 답을 해나가다 보면, 신학적 비전이 도출될 것이다.

복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현대인의 마음에 다가가도록 이 복음을 제시할 것인가?
• 문화는 어떤 모습이며, 우리는 문화에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대항하면서 소통할 것인가?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도심, 외곽, 신도시, 시골 등) 그리고 그 점이 우리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 공공 영역과 문화 생산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그리스도인이 참여할 것인가?
• 교회 안의 다양한 사역들(말씀, 봉사, 공동체, 교육 등)을 어떻게 상호 연결할 것인가?
• 우리 교회는 얼마나 혁신적이며, 얼마나 전통적이어야 하는가?
• 우리 교회는 도시와 지역 안에서 다른 교회들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 기독교의 진리를 어떻게 세상에 제시할 것인가?  (센터처치, 28)

내 책에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이 질문들은 모두 연결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연결하는 일을 질문의 전제로 깔고 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스스로의 목회적 상황에서 이 질문들에 대답해 보려는 시도를 한다면, 그게 바로 여러분의 독창적인 신학적 비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독창적인 신학적 비전은 여러분의 교회와 사역에 가장 합당하며 유용한 도구가 되어, 어렵고 복잡하며 때로는 명확한 답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목회적 상황 속에서 여러분이 다른 것들(외적인 상황과 그에 대한 고려, 혹은 교회 성도들이나 주변인들의 압박 등)에 흔들리지 않고 다시 복음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붙잡아 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연결과 소통이 켈러의 신학적 비전에서 본질적인 요소가 맞다면, 그리고 켈러가 말하는 네 가지 사역 접점이 모두 공통적으로 연결과 소통을 말하고 있다면, 켈러는 왜 굳이 자신의 신학적 비전의 틀을 세우는 큰 축으로 ‘복음,’ ‘도시,’ ‘운동’을 선택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여기에 대해서 필자는 앞서 언급한 필자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복음,’ ‘도시,’ ‘운동’은 연결과 소통을 이루는 세 가지 주체며, 그 세 가지 주체가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이 바로 연결과 소통이라는 점이다. 켈러가 구축하는 신학적 비전은 궁극적으로 이 세 가지 주체를 연결하고 소통하는 작업이다. 그 세 가지 주체는 각각 ‘하나님’(복음), ‘세상’(도시), ‘교회(운동)’를 상징한다. 혹은 ‘하나님 (복음),’ ‘믿지 않는 이웃 (도시),’ ‘믿는 신앙인 공동체 (운동)’로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즉 ‘하나님’, ‘이웃,’ ‘나 자신(혹은 교회인 우리 자신)’의 구도가 ‘센터처치’의 세 가지 축을 이룬다. 교회는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하고 소통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숙해 가면서 세상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의 복음이 어떤 소식인지 소개하고 알린다. 이런 관계 맺음에 연결과 소통은 필수적이다.”(김상일, 팀 켈러의 신학적 비전, 10-11)

이렇듯 팀 켈러의 신학적 비전에 연결과 소통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의 삶과 사역에 여러 가지 함의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 특히 연결과 소통을 지향하는 켈러의 신학적 비전이 어떻게 교회와 세상 사이에 이원론적인 관점이 자랄 여지를 그 싹부터 잘라 버리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마치고자 한다.

우선 이원론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봐야 하며, 교회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대하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켈러의 생각을 들어봐야 한다. 켈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원론은 영적이며 거룩한 것을 나머지 삶과 분리하는 철학이다.… 그래서 교회와 그 활동은 선하고 순수한 것이며, 세속 세계는 악하고 오염된 것으로 보는 이원론이 만연하였다. 이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최상의 방법은 설교, 전도, 제자 훈련 등 직접적 형태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가 현실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제공하며, 삶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평안과 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대할 뿐이다.”(센터처치, 691-692)

켈러에 의하면, 기독교는 ‘현실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제공하며, 삶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삶의 어떤 현실도 교회의 정체성이나 사명과 분리해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즉 교회는 세상 어디와도 연결하고 소통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연결과 소통을 지향하는 신학적 비전을 가진 목회자와 교회는 절대로 이원론적으로 사역할 수 없다. 앞서 살펴본 사역의 네 가지 접점은 이원론이 연결과 소통을 지향하는 신학적 비전에 자리할 곳이 전혀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더군다나 켈러는 다음과 같이 율법주의와 이원론이 얼마나 서로 관련성이 깊은지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신학적 비전이 연결과 소통을 말하는 이상,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일은 불가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율법주의적 기독교는 이원론적 기독교로 귀결된다. 사람들이 은혜의 복음을 깨닫지 못할 때, 그들은 바리새인처럼 전례적 경건이나 정결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긴다. 만일 우리가 삶의 정결함이나 의로움에 의해 구원된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교회 담 안에 머물러야 할 동기부여가 생긴다. 비신자들과 그 생각들을 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분위기 속에 머물고 싶은 자극을 받는다.”(센터처치, 692)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나누는 일은 율법주의적인 동시에 이원론적일 수밖에 없다. 깨끗한 곳에만 머물면 되며, 거룩한 곳에만 거하면 된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라는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할 뿐 아니라, 예수께서 굳이 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거룩한 바리새인들이 멸시하고 천시하는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거하셨는지를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켈러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그리스도인 교회가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교회는 또한 주변에 속해야 하며 주변과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이웃들에게 교회가 섬기는 공동체임을 보여주어야 하며, 희생적으로 시간과 재물을 도시의 공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센터처치, 566)

연결과 소통의 근원적 동력은 하나님의 복음이며, 복음은 하나님께서 죄로 가득찬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메시지다(요 3:16). 사랑하려면 만나야 한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 연결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죄인들과 연결되기를 거부하지 않으셨고, 기꺼이 그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셨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스스로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즉, 자기들의 율법적 의로움 때문에 사랑이신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비껴갔는지, 그리고 바로 그런 율법적 의를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사람들을 향했는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교회 안에서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나누는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마치 바리새인들이 그랬듯이 스스로 열심히 자기 의를 붙잡는 대신, 사랑이신 하나님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몸소 드러내신 예수님을 따라서 사랑해야 한다. 율법적 의로움 대신, 교회를 향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또 어떤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는지, 세상 앞에서 몸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신학적 비전은, 여러분이 섬기고 사역하는 교회가 어떻게 교회로서 세상과 연결되어야 하는지, 세상에 흡수 당하는 대신, 복음에 기반해서 사랑하면서도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세상과 구별되는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데 버팀목이 되어주며 안내표가 되어준다.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가는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을 응원하면서, 복음이 한국 교회 안에서 더 풍성하게 드러나게 되어 한국 사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깨닫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 연결과 소통의 근원적 동력은 하나님의 복음이며, 복음은 하나님께서 죄로 가득찬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메시지다(요3:16). 사랑하려면 만나야 한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 연결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죄인들과 연결되기를 거부하지 않으셨고, 기꺼이 그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셨다 ” [복음기도신문]

김상일 작가 | 현재 보스턴대학교 기독교교육과 실천신학 박사과정중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협약에 따라 본지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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