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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젊은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편지

ⓒ 박계환

 십자가의 길에는 지름길이 없다 

친애하는 형제에게

이번에 특별히 네가 중요한 생일을 맞이한다고 하면서 너의 아버지가 내게 한 가지 요청을 하셨어. 누구나 어렸을 때 알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때는 알 수 없는, 인생에 관한 교훈을 담은 편지를 네게 써주면 좋겠다고 말야. 아주 좋은 생각이라 여겨지기에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솔직하게, 성화된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힘든 삶의 여정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인생 학교라는 사실부터 말하고 싶구나.

십자가의 길에는 지름길이 없단다. 오로지 고통만이 있을 뿐이지. 네가 부름받은 이유도 힘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고, 때로는 두렵겠지. 그러나 하나님이 네 곁에 계시니 조금도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복음이 약속한대로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는데, 이 세상이 어떻게 감히 너와 대적할 수 있겠니?

자, 나는 이제 의인이 된 죄인(sinner-saint)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도성을 향하는 순례자라면 거쳐야 할 세 가지 단계를 너에게 알려주고 싶구나.

덕(virtue)에 관해서

첫 번째로, 젊은이라면 어떤 동기에서든지 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단다. 내 경우에는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책을 통해서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덕을 의미하는 ‘Virtue’는 ‘힘’을 의미하는 오래된 라틴어 ‘virtus’에서 온 것인데, 이 단어는 또한 사람을 의미하는 ‘vir’와도 연결된다. 즉, 진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덕을 많이 쌓아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지. 돈, 성적 매력, 스포츠, 성공 중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없단다. 오로지 덕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렴.

그리고 네가 꼭 얻어야 할 네 가지 기본 덕(목)은 지혜, 정의, 용기, 그리고 자기 통제란다.

지혜는 겉모습에 가려진, 숨겨진 진짜를 볼 수 있는 능력이으로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 누구보다 건전한 판단을 하게 된단다. 성경은 또한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어. 그 이유는 하나님이 가장 확실한 실재이기 때문이지. 주님되신 하나님의 완전한 실재를 체험함과 동시에 너무도 형편없는 나 자신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허물어질 때, 사람이라면 겪는 가장 자연스런 반응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에, 그런 두려움을 사모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너는 그 누구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될 거야.

다음은 정의다. 정의는 인간됨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바탕으로 타인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는 데 나 자신을 아끼지 않는 능력이지. 세상이 갖지 못해서 안달하는 것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네가 해를 입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굴하지 않으며 의롭고, 옳고, 선하고, 충실하고, 진실하고, 또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야. 세상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심지어 생명까지 앗아간다고 해도 정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는 용기다. 용기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올바른 일을 하는 능력을 말하지. 오해하지 마라, 그것은 두려움이 실종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야. 어리석은 인간은 아예 두려움 자체를 느끼지 못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또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를 잘 알기 때문이지. 그러나 세상보다 더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고, 그렇기에 용기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정의의 길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단다.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지위, 부귀, 심지어 생명보다도 정의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이고, 그 결과 선을 위해 기꺼이 손해까지 감수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마지막 덕목은 자기 통제다. 자기 통제가 없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떠나버린, 벽이 무너진 도시와 다를 바 없음을 기억해라. 자신을 지배하고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힘, 이 덕목은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음식이나 술, 이성 또는 복수심과 같은 욕망이 너를 지배하게 놔둬선 안 된다. 그것들은 네가 허락만 한다면 당장에라도 주인이 되어 너를 노예로 부릴테니까. 대신 너는 그것들을 지배해야 한다. 기억해라, 자제력을 가져야만 진정한 자아를 소유하게 되고, 네 자신을 온전히 소유할 때만 진정한 자유 속에서 바른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덕에서 은혜로

두 번째 단계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말했듯이, 덕에서 은혜로 ‘전환’하는 것이다. 해 아래에 덕보다 더 좋은 것은 없기에 덕을 쌓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결코 네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것이 덕이란다. 사실,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내 힘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절실하게 깨달을 뿐이지.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흐르고 있는 죄성으로 인해 너의 죄는 실로 엄청나게 중하다는 걸 알고 있니? 도무지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니까. 아무리 고대 지혜와 각종 기법을 동원해도 죄 문제만은 해결할 수 없지. 게다가 문제는 죄만이 아니다. 네가 자랑하는 도덕적 미덕조차도 그 안에는 영적 암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네 선함조차도 교만의 악으로 인해 이미 손상된 상태고, 네가 자랑하는 최고의 업적 또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아라는 심각한 병에 걸린 상태를 드러낼 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네가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이야. 사람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한 아담은 다름 아니라 덕을 포기했고, 결과적으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거지. 나 또한 아담의 자손으로 그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는 덕보다 더 나은 게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다. 너는 세례를 받았고 또 복음의 약속도 받았어. 하나님은 너를 너무 사랑하셔서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까지 내어주셨으니까.

– 스스로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아라. 그는 너의 지혜다.

– 네 자신의 불의를 인식할 때면,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아라. 그는 너의 의가 되신다.

– 네 자신의 비겁함을 알아차릴 때면,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아라. 오로지 그분만이 네게 용기를 주신다.

– 정욕의 노예가 되었음을 알아차릴 때면,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아라. 그의 피는 너의 모든 죄를 속하시며 또 그가 주시는 성령은 육신을 이기고 너를 거룩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하니까.

네가 어느 날 정말로 크게 잘못을 범하고, 덕을 추구하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악에 굴복했을 때도 실망하지 말고 주님을 향해 마음을 높이 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은 두 번째 아담이자 또한 최후의 인간으로서 너와 나 같은 죄인의 친구가 되시는 분이다. 네 자신의 무력함을 더 빨리 깨달을수록, 너는 더 강해질 수 있는데 그건 네 힘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한 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또한 그리스도는 진정한 인간(the Vir)이 되신다. 우리의 진정한 아담인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에까지 순종함으로 첫 번째 아담이 초래한 재앙을 마침내 해결하던 바로 그날,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향해 “이 사람을 보라”라고 말했지.

가장 위대한 것

첫 번째 아담에서 떨어져 나와 은혜로 인해 그리스도에게로 접붙여진 우리는 이제 예술 중의 예술인 사랑을 배우기 시작한다. 오로지 사랑만이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왜 그럴까? 그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요일 4:8) 때문이란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진정한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

언젠가 너도 직업을 선택할 날이 오겠지. 그건 너무도 중요한 일이야. 좋은 직업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취미도 좋고, 사냥은 재미있고,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움과 지혜도 함께 가져다주지. 그러나 결국에 인생에서 남는 것은 딱 두 가지 뿐이다. 사람, 그리고 그들과 나눈 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삼위 일체로 존재하시는 사랑이시다. 사랑이신 이 하나님은 너를 구원하셔서 다시금 자신의 형상을, 곧 사랑을 회복하게 하셨다.

사랑이 무엇일까?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고 아담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사랑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 위해, 가룟 유다의 발을 씻기 위해 왕 중의 왕이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다. 사랑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신부를 위해 목숨을 내어줌으로써 그 신부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또 희생의 길을 배우게 되면, 너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게 될 것이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3-14). 너는 이미 좋은 출발을 했고 아주 잘 살고 있다. 그 길에서 절대 벗어나지 말고, 또한 믿음의 길을 함께 가는 내게도 도움을 나눠주길 바란다.

너의 형제, 필 목사가 [복음기도신문]

필 안데라스 |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협약에 따라 본지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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