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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신뢰받지 못하는 리더십은 무너진다

사진: unsplash

“만약에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의 인격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다면, 내가 어떤 역량을 가졌는가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다”

재료 하나가 빠질 때 요리 전체를 다 망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것은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을 인도할 때, 신뢰가 없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신뢰야말로 리더십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라는 부름을 받았다면, 그것은 당신을 향한 사람들의 신뢰를 잘 관리하라는 부름을 받은 것과 다르지 않다. 학생은 선생을 믿고 싶어한다. 부부라면 서로를 믿기 원한다. 교인은 담임목사를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종업원은 그들의 관리자를 믿고 싶어한다.

신뢰가 실종될 때, 따르는 자들은 사라진다.

나 역시 리더로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나의 역량을 신뢰하길 바란다. 그들이 나의 판단력을 믿기를 바라고, 또 다가올 도전과 기회를 잘 예측해서 우리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혁신적인 역량을 가진 리더로 나를 신뢰하길 바란다. 나는 아내와 자녀들로부터도 그런 신뢰를 받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리더십 역량은 인격에 대한 신뢰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한순간에 완전히 허물어질 수 있다. 만약에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의 인격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다면, 내가 어떤 역량을 가졌는가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신뢰를 쌓고 또 강화할 수 있을까? 네 가지 실질적인 방법이 있다.

1. 진실을 말하라

언제나 그래야 한다. 기독교인 리더십이라면, 진실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얼마나 쉽게, 보이지 않게, 서서히, 거짓의 늪으로 빠질 수 있는지, 또한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진실을 가리려고 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당연히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이것은 영적으로 아주 두려운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을 반만 말하면서 어떤 사실에 대해서 오해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어떤가? 만약에 함께 일하는 사람이 당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글쎄, 저 사람이 말하는 건 10퍼센트 정도만 믿어야해. 너도 알잖아? 저 사람 얼마나 과장이 심한지.”

집, 직장 또는 교회 어디에 있든지 당신이 이끄는 사람들은 언제나 당신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성경 전체에 걸쳐서 드러난 하나님은 철저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다.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믿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가?

2. ‘미안하다고 말하라

당신이 리더라면 ‘미안하다’라는 말에 익숙해져야 한다. 당신은 이 말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람들을 실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 편에서, 판단 실수를 할 수 있다. 플랜 A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틀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화나게 할 수도 있다. 이와는 다르지만, 당신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또 다른 경우가 있다. 당신의 판단이 분명히 옳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해야만 하고 때로는 그들의 트라우마까지 자극해야 하는 경우다.

꼭 대단한 일 때문에 누구를 해고하거나 누구를 강등시키는 것은 아니다. 동료에게 또는 가족에게 또는 교회 지체에게 죄를 지었다면, 그것은 사과할 일이다. 나 자신을 변호하거나 정당화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야 한다. 당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옳을 때, 분노를 쏟아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물론 어떤 리더에게 있어서 “미안하다”라는 말이 가장 힘든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말 자체를 하지 않는 리더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그런 리더라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 말을 빨리 그리고 겸손하게 하는 법을 배워라. 그렇게 할 때, 장기적으로 리더로서 당신의 영혼에 도움이 될 것이다.

3. 실패를 잊지 말고 성공을 나누라

혹시나 무엇인가 잘 되면 다 자기가 잘 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고, 또 뭔가가 잘못되는 경우에는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리더를 본 적이 있는가? 왜 매출이 늘었을까? 물론, 리더 때문이다. 왜 매출이 줄었을까? 그것은 절대로 리더 때문이 아니다. 이런 리더는 분명 마케팅 부서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유형의 리더는 세상에서만 만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런 식의 세상적인 나르시시즘은 너무도 쉽게 기독교인 리더와 기독교 단체를 오염시킨다.

잘 인도하다는 것은 비난을 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당신이 중요한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비록 당신의 결정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고 해도 당신의 책임 하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 리더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리더가 그렇게 할 때, 신뢰가 쌓인다. 충성심은 깊어진다. 그러나 리더가 책임을 회피하고 아랫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할 때, 얼마나 빨리 직원들이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는지 보게 될 것이다.

이 원칙은 집이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인도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4. 책임감과 독점욕의 차이를 배우라

이것은 미묘하지만 아주 위험한 차이다.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신뢰하게 하는 데 아주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인도한다는 것은 어떤 목표, 전략, 그리고 사람 등에 관해서 당신이 일종의 무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그것은 종종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종종 너무 사소한 일을 가지고 잔소리하지 않고, 대신 전체 그림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리더라면 맡은 책임과 관련해서 결코 이런 식의 한가한 소리를 할 수는 없다. “그런 건 신경 안 써.” 왜냐하면 리더는 책임지는 자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책임감과 독점욕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라는 주어를 사용해서 말할 수도 있다.

당신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 특히 당신 밑에 있는 사람들은 ‘당신의 사람 또는 당신의 팀’이 아니다. (그들이 믿는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가 가진 권위와 영향력을 극대화하여,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굴복할 때 누리는 기쁨을 알고 그 기쁨이 더욱 충만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차이를 이해함으로써 당신은 훨씬 덜 자기 방어적인 리더가 될 수 있고 또한 아주 작은 일에는 반응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비판받을 때, 독점욕이 강한 리더일수록 자기 방어에 빠져 상대를 공격하기 마련이다. 누군가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에 독점욕이 강한 리더는 그것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팀원이 다른 곳으로 떠났을 때, 독점욕이 강한 리더는 그것을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중심적 독점욕이 강한 리더보다 리더를 향한 신뢰를 더 쉽게 깨부수는 것도 없다.

수단으로서의 신뢰

신뢰는 정말로 효과적인 리더십의 통화 수단(currency)이다. 그것이 없이는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없다.

신뢰가 조직 내 새로운 리더에게 부여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 뿐이다. 궁극적으로 리더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신뢰를 쌓는 데는 수 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리더로서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당신의 한계와 약점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리더로 살다보면 사람들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다. 우리 구주는 불완전한 리더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구주에게 완전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쓰러져도 구주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로 좋은 소식이다. [복음기도신문]


“신뢰는 정말로 효과적인 리더십의 통화 수단(currency)이다.

그것이 없이는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없다”

Matthew J. Hall  | www.tgckorea.org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협약에 따라 본지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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