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땅에 살면서 가끔씩 지진을 경험하고 있다. 첫 지진은 일본, 토요타에서 삶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식탁이 흔들렸다. 지진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지진이 온 줄 모르고 남편이 식탁을 흔들며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규모 3의 첫 지진을 그렇게 경험했다. 며칠 후 모두가 잠든 한 밤 중에 집이 좌우로 한 참을 흔들거렸다. 아~ 이것이 지진이구나 하는 순간 무서운 생각이 밀려왔다.
이 땅에 살면 지진의 경험은 보통이다. 텔레비전을 보면 지진이 일어났을 땐 자막으로 지역과 몇 도의 지진인지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고 자주 있는 보통의 일상이다. 오늘도 텔레비전 자막은 이 땅에 지진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3월 11일은 2011년 동일본(東日本) 대지진이 일어난 날이다. 이 지진이 일어나고 우리 가족은 한 달 후 일본으로 왔다. 그런데 얼마 전 10년 전 지진을 경험한 그 지역에 다시 지진이 왔다. 일상의 지진이 아니라 6도강, 7도의 지진이다. 10년 전, 수 많은 생명을 가져간 지진의 여진이라고 한다. 그 날의 무서움이 아직도 남아 있는 백성에게 다시 동일하게 덮어졌다. 10년 동안 행방불명된, 당시 고1이던 딸에게 답장 없는 메일을 매일매일 보내고 있는 아버지가 있다.
2011년 3월 11일 ‘딸아 어디에 있니? 아빠가 지금 갈게’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메일을 보내는 아버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여진은 한 참 먼 거리에 있는 여기 오사카까지 오고 있다.
오늘 텔레비전에서 10년 전 지진으로 아들과 남편을 잃은 여인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그 당시 쓰나미로 집이 쓸려 아들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아버지는 없어진 아들을 찾느라 4개월간을 헤매이고 다녔다. 4개월 후 뼈만 남아 돌아온 아들을 DNA감정을 해서 확인을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도 한 달이 채 안되어 아내 곁을 떠났다. 그리움으로 사는 여인은 남편과 아들이 좋아했던 쿠르미모찌(호두떡)을 자주 만들었다. TV에서 보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 흰 찹쌀인절미에 호두로 만든 쨈 같은 것을 올려 먹는 모양이었다. 남편과 아들이 둘 다 너무 좋아해서 보통은 아침부터 끼니가 그것이었단다. 이 여인의 눈가에는 흐르지 않는 눈물이 방송을 보는 내내 고여 있다.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이 땅에 살고 있다. 이 땅은 슬픔이 많다. 이 땅의 백성들은 슬픔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기에 무엇이든 신이 된 것일까? 집집마다 신당이 있고 집 앞 거리에는 손뜨개질을 해서 빨간 모자를 씌어놓은 아기 신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땅에 팔백 만의 신이 이 백성의 슬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이 날도 제자들과 나인이란 성으로 가시다가 독자 아들이 죽어 슬픔에 잠긴 과부를 만난다. 예수님은 유독 슬픔이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그리고 바라보신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누가복음7:13)
그 모습을 가만히 그려보았다. 살아있는 예수님이 가고 있는데 저기 죽은 청년과 슬픈 과부가 울며 다가오고 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은 울고 있는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들을 살리심으로 슬픔을 해결하신다. 나인성 과부이야기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다는 이야기일까? 살아계신 예수님이 죽음과 슬픔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복음이다. 예수님이 먼저 긍휼로 다가와 값없이 생명을 주었다. 복음은 생명을 주고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고 슬픔이 변하여 춤을 추게 한다.
1549년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선교사가 큐슈(九州) 남부의 카고시마(廘児島)에 상륙하면서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다. 하지만 1597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금교령이 선포되면서 수 백 년 동안 기독교가 박해를 당하고 이 땅은 순교의 피를 받아낸다.
이 땅에 복음이 사라진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거룩한 씨를 남겨 놓았다. 나가사키(長崎) 히라도(平戶)에는 기독교 박해 사건들이 전시되어 있고, 1500년 후반부터 250년간 기독교인들이 숨어 지낸 11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마태, 마가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복음이 심겨지는 심령을 말씀하셨다. 어찌 보면 이 땅은 길 가, 돌 밭, 가시 밭 같이 선한 영적 열매들이 잘 일어나지 않는 땅 같다, 그래서 선교하기에 인기가 없다.
영화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그냥 만들어 내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왜 그 장면을 만들었는지, 왜 그 때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고 공감을 하게 된다.
우리 하나님일까 보랴! 이 땅이 지금 순종하지 않음은, 지금 애굽의 바로같이 완악함은 하나님이 만드시는 영화이다.
이 땅은 메마른 땅이 아니요 눈물이 많은 불쌍히 여김을 받는 땅, 좋은 땅이다!
이 땅은 순교의 피가 곳곳에 흐르고 거룩한 씨가 심겨져 있는 주님이 기억하는 땅, 좋은 땅이다!!
이 땅은 주님이 사랑하는 조선이 함께 살고 있는 영광의 땅, 좋은 땅이다!!!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마가복음 4:8)
일군은 좋은 땅에 씨앗을 심는다.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 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잠언 24:11~12)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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