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동등한 책임의식을 가진 남성의 자각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 프로라이프(생명 존중) 운동은 50년이라는 시간동안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금의 활발한 양상을 띄게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한국 프로라이프 운동의 남성의 역할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앞서 미국의 역사에서 전통적 가정이 무너지는 가운데 남성과 여성이 가정의 사적공간에서 사회 구조 속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이 표면상 드러나게 되고 여성의 권리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결국 낙태가 요구되는 구조로 나아가게 되었음을 보았다. 이것은 1973년 낙태의 합법화가 단순히 여성들의 편의적 요구사항이 아니라 그동안 남성이 가지고 있던 권리의 선점과 양육에 대한 책임회피 등 본분에 대한 열외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낙태의 간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남성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반대로 말하면 프로라이프 운동에서 남성은 책임의식을 가지고 나서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성의 프로라이프 운동은 그 역할상 본연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남성이 가정에서 자녀양육에 동등한 책임을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이 프로라이프 운동에 대한 동등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라이프 운동에서 남성의 위치는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여성과 동등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여성과 같은 선상에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 현재 다양한 프로라이프 단체들의 활동에서 남성과 여성의 비중이 그리 차이가 없을 정도라는 것이 현장의 분위기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프로라이프 운동이 조직의 이권을 쟁취하려는 목적이 아닌 생명의 가치를 지키려는 목적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재 한국 프로라이프 운동이 앞으로 해나아가야 할 역할은 여성 문제의 보조적인 목소리를 내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사안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운동은 이권에 대한 싸움이 아닌 생명 가치를 지키는 공동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남성들,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감당해야
그렇다면 보다 실제적인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것은 전통적인 남성다움(공동체적 남성다움)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미국의 전통적 가정에서의 남성상은 자기억제와 자기희생적 남성상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 이는 산업화 이후에 사회 공적인 영역으로의 이동을 통해 아집과 표리부동한 남성으로서의 남성상으로 변질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남성이 어디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과거 미국의 프로라이프 운동은 기독교 중년 남성들 위주로 활동하면서 대중적인 운동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 대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던 시기에 이들은 이미 세력을 가지고 있던 프로초이스(낙태 지지) 측과 힘겨운 대결을 해야하는 상황이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굳은 심지로 지켜가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1990년대 이후 대중적인 지지와 함께 젊은 세대가 프로라이프 운동의 중심부로 들어오게 되는 상황 속에서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
여기에서 착안하여 볼 수 있는 것이 보호와 필요 제공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프로라이프 운동이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일임을 정확하게 인지한 남성은 생명의 보호자로서 그에 부합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듯 프로라이프 운동 안에서 여성의 섬세한 활동과 젊은 세대의 창의적 영역을 보호하고 지탱하는 역할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제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여성과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특징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든든한 후견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남성의 역할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성은 프로라이프 운동의 보호자와 후견인으로서의 역할로 ‘보호하고 필요를 제공하는’(protect and provide)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성들, 성과 생명에 대해 재인식해야
이러한 보호와 필요의 제공이 남성의 역할인 것에 반해, 실제 한국 남성들의 현실을 마주하면 성과 생명에 대한 인식이 현저하게 뒤떨어져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로라이프 운동에 동참을 호소할 때 남성은 전혀 관심 밖의 문제로 여기는 것이 현장의 분위기이다. 이처럼 한국 프로라이프 운동에 있어서 남성의 참여가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과 생명에 있어서의 남성의 왜곡된 인식과 안일한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현재 대한민국의 남성은 남녀간의 성관계가 생명을 만드는 생식의 과정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갖추지 못한 무지와 무감각에 놓인 것이 현실이다. 이는 사회에 만연하는 생명 경시 풍조와 함께 남성이 프로라이프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는 남녀가 고른 활동 분포를 나타내는 미국의 프로라이프 운동과 대비되는데 미국의 이러한 모습은 성과 생명에 대한 의식 수준이 한국 남성보다 폭넓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바가 무엇인지를 잘 알려준다. 그것은 프로라이프 운동 안팍에서 성과 생명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폭넓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 제공자이며 보호자인 남성
남성의 프로라이프 운동에서 생명에 대한 남성의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남성이 생명의 제공자이며 그 생명을 보호해야 할 본분을 가진다는 인식이다. 이는 엄밀히 말해 여성이 어머니로서 모성애를 가지는 것과 같이 남성은 아버지로서 부성애를 가짐을 말하는 것이고 동시에 남성이 직접 출산하지 않을 뿐 임신과 출산과 양육 등 모든 면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엄연한 당사자로서 여성과 함께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할 중요한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각할 때 지금껏 여성에게만 쏠려있던 프로라이프 운동의 단면은 남성이 그 당사자가 아니라는 암묵적인 동의에서 가능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임신과 출산의 문제에 남성이 책임을 회피하던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이 문제에 같은 선상에 있음을 직시하는 것으로 태도를 바꿔야 함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책임 의식이 남성에게 당장의 이익이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여성과 태아를 보호하는 역할로 인한 상대적 불편함과 불이익이 남성에게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이것은 남성의 불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남성은 생명의 제공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의 분명한 책임을 지금껏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회피하고 있었으며 법적으로도 남성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 것은 이러한 남성의 책임회피를 묵인하는 근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 남성은 전통적인 남성상인 자기억제와 희생정신을 더욱 발휘하여 남성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는 생명의 제공자로서 남성이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있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남성들, 자신의 책임을 스스로 요구해야
우리는 생명의 제공자로서 남성에게 분명한 책임있는 행동이 요구되며 생명운동의 당사자로 이러한 요구가 얼마나 타당한 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당사자인 남성들 편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내려는 직접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생명 운동에 관한 다양한 현실 과제에 실질적인 성과가 있도록 적극적인 발언과 참여가 요구된다. 더욱이 그 사안이 남성의 책임과 관련된 부분에서 보다 강력한 요구가 남성의 목소리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성들이 특별히 집중해야 할 현안은 낙태에서 남성 책임법을 도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남성 책임법의 부재는 임신에 대한 남성의 책임이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책임을 면책토록 해서 수수방관하거나 오히려 여성에게 낙태를 요구하는 등 직접적인 법적 처벌이 없음을 악용한 태아에 대한 철저한 외면과 유린을 가능하도록 조장하였다. 이는 어떤 면에서 낙태 방조에 해당하며 낙태의 공모와 협박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명 유린의 문이 자유롭게 열려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 이대로 남성에 대해 도피로를 만들어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에 다다를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성 책임법은 지금까지 여성에게만 국한되어 있던 임신과 낙태에 드리워져 있던 책임이 남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고 처벌로까지 가져가도록 하는 의도를 가진다. 이러한 의도에 맞게 이번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새 개정안에는 반드시 남성 책임법에 대한 조항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고로 낙태를 허용하고 방조하도록 하는 더 이상의 어떠한 요소도 남지 않도록 남성들의 도피로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남성이 해야 할 중요한 움직임은 무엇보다 남성 책임법을 남성들의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남성과 관련된 사안에 여성들이 그 요구사항을 주장하는 것보다 남성 스스로가 주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움직임이 태아와 여성을 보호해야 할 남성의 역할이 사회 보편적인 덕목이 되도록 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라이프 생태계 확장에 힘 모아야
우리는 앞서 미국의 전통적 가정의 가치 속에서 남성의 의미를 찾아봄을 통해 미국 프로라이프 운동의 전개 속 남성의 역할과 순기능을 살펴보았다. 또한 아직 개척의 시간과 같은 한국 남성 프로라이프 운동에 이러한 미국의 사례들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현재 국내의 상황이 미국이 지금까지 걸어온 50년의 프로라이프 운동과 비교해 어떠한 성과를 내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며, 그러함에도 1973년 미국의 낙태합법화의 시기와 비교하였을 때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후 낙태와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공방 속에서 국내 프로라이프 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2021년 1월 현재, 낙태죄 개정안의 공백 상태는 새롭게 개정되어야 할 법안을 두고 프로초이스 측과의 극렬한 대립이 예상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 하겠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프로라이프의 움직임은 윤리와 종교 뿐 아니라 정치, 언론, 기업, 의학, 문화, 교육 등 다양한 그룹에서 연구와 토론을 통하여 더 견실하게 다져지며 세워질 필요가 있다. 그 중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그룹은 바로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남성은 프로라이프 운동이 단지 여성 운동에 대항한 또다른 여성 운동이 아닌 진정한 생명 운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만드는 필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의 중요성에 반해, 아직 프로라이프 운동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는 당사자인 남성들의 생명에 대한 무지와 무관으로 인한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 시도해야 할 남성 프로라이프 운동의 과제는 아직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 남성들에게 프로라이프의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라 하겠다. 더 이상 남성이 프로라이프 운동에 무지, 무관한 존재가 아닌 여성과 동등한 책임의 동반자이며, 태아의 생명 제공자이자 보호자이며, 생명 가치 수호에 있어서 책임있는 당사자라는 정체성을 심어줌으로서, 작게는 프로라이프의 참여를 유도하고 크게는 남성 프로라이프 운동의 전략적 인재를 육성하는 것에 역량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단기적으로 우리가 역량을 집중해야 할 과제는 낙태에 대한 남성의 책임을 부여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묵인되던 남성의 책임을 이제 남성의 목소리로 요구함을 통해 앞으로 남성 프로라이프 운동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더 나아가서는 프로라이프 운동의 실제적인 성과인 낙태률의 감소를 통해 보다 빠른 기대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더 효과적으로 해나아가기 위해 남성 위주로 설립된 남성 프로라이프 단체가 존재한다면 이를 더욱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토양을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존의 프로라이프 운동과의 협력과 연계라 하겠다. 앞서 움직이고 있는 다양한 프로라이프 운동에 지원과 협업을 통한 프로라이프 생태계를 확장하는 일에 힘을 모으고, 한편으로 남성 프로라이프 운동의 지지를 이끌어냄을 통해 프로초이스를 능가하는 프로라이프의 저변을 확보하는 것을 위해 나아감으로 이 땅에 생명에 대한 가치가 세워지고 낙태가 사라지는 그 날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복음기도신문]
김동진 | 일산하나교회 담임. 복음이면 충분한 목회를 소망하고 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페이스북, 유튜브(목동TV)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 영역의 성경적 가치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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