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고정희 칼럼] 짧아진 아버지의 바지처럼

ⓒ 현승혁

고베에 있는 짐을 정리했다. 2년 정도의 고베의 삶은 많은 만남들을 허락하셨고, 삶의 편리함도 허락하셨던 시간이었다. 다시 오사카 마츠바라에 있는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 땅에서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쌓아두지 않으면서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또 모아진 것이 너무 많다. 옷도 많아졌고 그릇들도 많아졌다. 옷은 큰 두 뭉치를 재활용에 내 놓았다. 그릇들은 우리 조선인들과 다같이 모여 먹을 날을 기대하며 가져가기로 했다.

마츠바라 집은 5년 전 오사카로 처음 올 때 어느 할머니가 사시던 빈 집을 일본교회 성도들이 준비해 준 집이다. 할머니의 손 때 묻은 살림이 그대로 묻어 있는 지어진지 60년이 된 일본식 작은 주택이다. 딸아이가 전화가 와서 다시 마츠바라로 간다고 했더니 그 집 일본 같아서 너무 좋잖아 하며 기뻐해 주었다. 전화를 끓고 나니 그것이 왠지 위로가 되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일본 성도들이 오랫동안 비어있었으니 한 번 다같이 가보자고 하였다. 일본 집은 보일러가 없기 때문에 주방이나 욕실의 난방수는 순간 온수기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은 온수기가 너무 오래되어 작동이 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일본성도님한테 전화가 왔다. 온수기 교체하러 사람이 가니까 그 날 시간에 맞춰서 집으로 가 있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따뜻한 물로 또 위로하셨다. 이렇게 한 걸음씩 마츠바라로 움직이게 하셨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잘 모르는 때는 환경과 상황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고 있다. 버티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감사하다.

드디어 이사하는 날이 되었다. 일본성도들은 자동차를 가지고 고베에 와서 같이 짐을 옮겨 주었다. 일본할머니가 사시던 이 집은 크고 까만 불당(신당)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집집마다 죽은 사람을 모시는 곳을 만들어 놓고 아침 저녁마다 인사를 하고 손님들도 그 집에 가면 그 곳에 가서 두 손을 모으고 먼저 불당 앞에서 인사를 하는 것이 문화가 되어 있다. 매일 삶이 우상숭배의 절정이다. 나는 이 큰 불당을 선반처럼 사용했지만 늘 신경이 쓰였다. 이제는 집 주인이 처분해도 괜찮다고 한다. 일본성도들이 불당을 분리해체해서 버려주었다. 이렇게 주님은 또 위로하셨다. 마츠바라 집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그 추운 날에도 함께 이사를 기뻐하며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택배가 왔다. 석유난로와 전자렌지였다. 대부분 일본 집들은 석유난로나 전기난로로 난방을 하고 있다. 어느 성도님이 오래된 난로와 렌지를 바꿔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날 오후에 택배가 또 왔다. 전기난로와 전자렌지였다. 다른 성도님이 또 보내주신 것이다. 다음날도 택배는 오래된 할머니의 청소기를 바꿔주셨다. 그렇게 택배는 오늘도 계속되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어릴 적 읽었던 글 하나가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바지 하나를 사오셨는데 좀 길었다. 다음날 아버지는 바지를 다시 입어보니 길었던 바지가 반바지가 되어 있었다. 반바지가 된 바지를 입으신 아버지는 너무 행복해 하셨다. 그 이유는 가족 한 명 한 명이 조금씩 잘랐기에 반바지가 된 것이었다. 서로 위하는 마음이다.

일본 성도들이 우리 부부를 위하는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다. 그것은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은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었다.

신발장 앞에 다시 반품할 택배 박스를 보고 있노라니 괜시리 눈물이 나면서 반바지를 입은 아버지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딸아~ 불편하고 어려운 것 내가 알고 있었다.’

처음에 힘들고 불편해서 우리 조선인들의 삶을 느꼈던 집이다. 처음 마음을 다시 받으시길 원하신다. 여기서 다시 시작하자.

주님은 일본성도들의 섬김으로 당신의 마음을 알기 쉽게 알려 주셨다. 주님은 내 속 저 밑에 보이지 않게 싸매고 있는 내 슬픔의 보따리를 알고 계셨다. 꽁꽁 묶어 놓고 잘 감추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낙심하는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고후7:6

나는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을 좋아한다. 정말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여인이다. 아름다운 자는 자기의 어떠함에 매여있지 않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검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주님만 사랑하며 그 분께만 매이고 싶음이 절절히 고백되어 있다. 검게 그을린 얼굴로 거친 들을 달리며 주님을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고백하는 술람미 여인이 사랑스럽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니 아6:3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무엇이든 다 괜찮다. 우리는 주님의 나그네란 옷을 입고 사는 삶이라.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가리. 깨끗하게 하느라 너무 애쓰지 않으련다. 당신의 나그네란 옷을 입고 당신께 속한 오늘이라면 검을지라도 아름답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16:19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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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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