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아신 친정어머니가 핏줄은 핏줄이구나 하신다. 작년 한국에 있을 때 친정어머니 집에서 잠깐 동안 지낸 때가 있었다. 글과 씨름하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르셨나보다.
나는 아버지의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기를 어쩌다 보니 나와 동생이 생겼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자랄 때 ‘나는 어쩌다 생긴 아이구나!’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식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남편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하신 말씀이었다.
어릴 때 나는 엄마가 퍼 주신 밥을 다 안 먹고 꼭 한 숟가락씩 남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어쩜 그렇게 니 아빠를 닮았냐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엄마가 싫어하시는 데도 자꾸만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뭔가 안심이 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좀처럼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런 나의 기억에 없는 아버지께서 책을 좋아 하셨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셨더란다.
어머니가 기억하시는 삶에서의 추억도 아버지는 늘 글을 쓰고 있었다고 하며 내가 모르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셨다. 새삼스러웠지만 어머니의 목소리가 예전보다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젠 많이 연로하신 어머니는 남편을 원망하기 보다는 조금은 그리움으로 추억하시는 듯하다. 아마도 어머니의 기억 한편 저쪽에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 있었나 보다.
‘딸이 글을 쓰는 것을 알면 좋아할 게다. 본인 닮았다고..’
내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형상이 그려진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1:27)
지금 내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형상은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가면 이순신장군,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그 동상을 세운 것은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나를 자기 형상으로 만드신 이유는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주님은 은밀한 곳에서 나를 빚으셨고 땅 속 깊은 곳 같은 저 모태에서 나를 조립하셨다.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 숨길 수가 없다.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다.(시139:15)
내가 주께 감사함은 나를 빚으심이 어찌 이리 신묘막측하신지요.
나는 어쩌다 생긴 아이가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빚어진 존귀한 아이였다. 하지만 이 사실을 기뻐하는 데는 좀 시간이 걸렸다.
그러기에 주님 앞서 나는 그냥 먹을 수가 없고, 나는 그냥 생각할 수도 없고, 나는 그냥 행동할 수도 없다.
너희는 하나님께로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1:30)
요즘 남편이 자주 부르는 찬양이 있다. 귀 뚫은 종이라는 찬양인데, 예전 복음성가 곡에 가사를 새롭게 입힌 노래이다. 주인을 너무 사랑하는 종이 그 집 문에 귀를 대고 구멍을 뚫어 주인집에 완전히 속함으로 주인에게만 귀 기울이며 살고 싶다는 찬양이다. 출애굽기 21장 말씀이다.
가사와 남편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듣고 있노라니 사랑하는 주님과 은밀한 사귐으로 묶인 삶이 기쁨이요, 영광이요, 축복임이 절절히 흐른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해보면 그럴려고 그러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는 사람과 묶이고 싶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그것을 같이 하고 싶어한다.사랑은 따로 놀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와 묶여진 삶은 서로 닮아간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주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다.
‘어째 정희 기도 스타일이 성로(지금 남편)와 똑같네~’ 내가 많이 좋아하고 있어서였다.
오늘 나는 주님을 닮아 가지 못함을 애통하고 있는지 묻는다. 기억에 없는 아버지였지만 내 진심은 늘 아버지가 그리웠나 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참을 걸었다. 그리움을 가득 담으려고. 그리움이 당신을 닮아갑니다.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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