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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통신] 하늘의 부르심과 선교사의 삶

▲ 태국 이민국 전경. 본지 통신원 제공

선교사이지만 선교지에서는 선교사가 아닌 신분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외국인에게 선교사 비자를 주는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태국은 외국인들에게 종교활동을 할 수 있는 비자를 쿼터를 정하여 허락하고 있다. 나도 선교사로 입국하기 이전에 태국대사관에서 선교사 비자를 받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선교사가 아닌 은퇴자의 신분으로 입국하였다. 코로나로 인하여 선교사비자는 입국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교사 아닌 선교사가 된 것이다.

선교지에서 선교사의 자리매김을 생각한다. 앤드루 월스 교수는 역사 속에서 교회의 위치를 두 가지로 설명하였다. ‘토착화 원리’와 ‘순례자 원리’이다. 선교사가 아니나 선교사’라는 자리에 있고 보니 위의 두 가지 원리가 잘 다가왔다.

‘토착화의 원리’란 교회가 마치 집처럼 편안한 장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교회는 항상 특정한 문화와 공간과 역사 속에서 존재한다. 교회는 그런 상황 속의 교인들에게 배타적이고 이국적인 장소가 아니라 편안한 집처럼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5장에 예루살렘 공의회가 이방인 성도들의 문화를 존중하였던 경우이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이제 돼지고기를 먹어도 되고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의 문화를 존중 받았던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교회가 편안한 장소가 되었다.

이번에 7개월여만에 돌아온 카렌 공동체는 나에게 편안한 집처럼 느껴진다. 신학교에서 예배를 마치고 난 뒤 학생들이 반가움을 표현한다.

“오 선교사님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오 목사님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았나요?”

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소식을 듣고 기도하였던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학교 예배실 밑에 있는 가게에 갔는데 한 남학생은 음료수를 사면서 건네 준다.

“이것은 오선교사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목말라서가 아니라 그들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하여 주는 것이다. 총회 사무실을 방문하니 총회 총무가 환한 얼굴로 안아주면서 반가움을 표현한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요?”

같은 식구로 대하여 준다. 카렌 교회 공동체는 나에게 가족과 같은 곳임을 다시 확인한다. 카렌이라는 새로운 문화에 토착화된 나의 모습을 확인한다.

토착화의 원리와 대조적인 또 한 원리가 있다. 그것은 ‘순례자의 원리’이다. 복음이 세상 들어왔을 때 복음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즉시 받아들이는 사회는 없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에서 ‘순례자’이다. 주님께서 이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사옵나이다(요한복음 17장 16절).”태국 국내법에 따르면 선교사가 아닌 현재 나의 모습을 표현한 듯 하다.

나는 선교사이지만 선교사가 아니다.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이민국이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민국에 가는 것은 편치 않다. 한국의 동사무소에 가는 것과는 심리적인 반응이 전혀 다르다. 동사무소에 갈 때는 불안하지 않다. 직원들에게 요구하거나 요청하는 것이 정당한 권리이다. 그런데 태국의 이민국은 뭔가 불안하다.

이번에 입국할 때 아내는 거주 기간을 1년 받았지만 나는 3개월 받았다. 12월 14일, 이민국에 거주지 신고를 하면서 이 내용이 수정가능한지 질문을 하였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공항에 있는 이민국 담당자를 만났다. 그 직원은 마치 본인의 일처럼 친절하게 데리고 다니면서 처리해 주었다. 고마우면서도 나의 자리를 느낀다. 나는 임시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이다. 순례자와 같은 존재이다.

여권에 연장된 거주 기간은 1년이다. 그 이전에 연장하거나 바꾸지 않으면 떠나야 한다. 신분상 법적으로 선교사가 아니라, 은퇴자로 왔다. 태국 정부에서 선교사 비자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태국은 보통 외국인에 대하여 관용과 배려의 정책에도 있지만, 이번은 코로나로 인하여 중단되었다. 태국에서는 내 마음대로 나를 결정할 수 없다. 태국 정부가 나의 위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체이다.

자연재해나 정치 사회적 혼란의 상황 속에서 선교사 신분은 불안하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속에서 이것을 실감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선교사의 신분은 대부분 불안정하였다. 중세와 근대선교시대 서구강대국에서 파송된 경우가 신분적으로는 예외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선교지에서 그들의 삶이란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도바울에게 선교사라는 직책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이지 당시 로마 정부가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로마제국은 그의 선교사역 때문에 결국 사형시켰다.

초대 교회 이후에 복음 확장에 기여한 선교사들은 새로운 문화 속에서 적응해가면서 제 2의 고향처럼 지냈다. 선교지가 고향보다 더 편안한 장소가 되었다. 새로운 곳에 토착화된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법적, 제도적, 사회적 보장과 안전장치가 없이 이방인으로 지냈다. 순례자로서의 길은 피할 수 없는 삶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지 정부에서 선교사로 구분 되는 것을 어떤 면에서 관심이 덜한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함부로 선교지 정부의 정책을 무시하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의 위치의 근거가 한 국가의 인정보다 더 큰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나라 앞에서 나의 선교사 됨의 근거가 확실한가 이다. 바울과 수많은 선교사들의 삶은 이것을 확인시켜 준다.

오늘 2020년 12월 19일은 1995년 12월 19일 이후 정확히 25년이 된 날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선교사로서의 나의 삶은 ‘토착화’와 ‘순례자’의 모습이 동전의 양면처럼 이어져왔다. 내가 선교사로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식구로 받아준 카렌 교회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여전히 외국인으로 불안정한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모두가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이 고백이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시간에도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하늘의 부르심으로 선교사 아닌 선교사로서 길을 간다. <무익종(본지 통신원)>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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