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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오시기 전에 베트남 사람 절반 이상이 돌아오게 하자!”

베트남 쭈엔자오(선교하는 베트남.VNTG) 쭈민썬 장로

믿음의 길을 걷는 성도들 사이에 이런 표현이 구전되고 있다. “주님을 만나는 때는 두 경우가 있다. 망했을 때나 병들었을 때이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절망없이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고개가 끄떡여지는 명제이다. ‘절대 절망’ 없이 ‘절대 은총’은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 보트피플 출신의 쭈민썬(週民山) 장로는 베트남 근대사를 가로지르는 한복판에서 주님을 만났다. 전쟁. 보트 피플. 독일 생활. 그리고 두번의 대형 교통사고. 그리고 마침내 그는 주님을 개인의 주인이자 구세주로 영접했다

아시아의 지정학적 판도를 뒤바꿔놓은 베트남 전쟁이 1975년 막을 내렸다.

그러나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베트남 국민 상당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중 일부는 해상으로 국외 탈출을 시도했다. 이른바 보트 피플의 효시이다.

이같은 고난의 행로에서 새로운 인생을 경험한 사람들도 많다. 쭈민썬 장로도 그런 보트 피플 중 한 사람이다.

3월초 2주 정도의 일정으로 내한한 그를 본지 사무실이 있는 인천 요셉의창고에서 만났다.

“80년대 베트남 북부 지역은 가난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들중 상당수는 유럽으로 갔습니다. 저도 그 일행중에 속해있었지요.”
가난한 북부지역 사람들 홰외 탈출 시도

베트남은 지형적으로 동남부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남쪽은 곡창지대로 비교적 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세계 제2위의 쌀 수출국 베트남의 명성도 메콩강으로 이어지는 남부지역 덕분이다.

하지만 북부 지역은 자원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북부 지역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했다.

“더 이상 포기할 것도 없기에 북부 지역 주민들은 해외 이주자의 삶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보트 피플의 경우, 그 대가는 엄청났다. 대양 한복판에 떠있는 일엽편주(一葉片舟)같은 소형 보트에 자신을 내어맡겨야 했다.

청년 쭈민썬도 보트에 모든 삶을 걸고 탈출을 시도했다. 91년, 천신만고 끝에 독일에 상륙했다.

도착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낯설고 물선 독일에 도착하던 그 해였다.

“크리스마스를 교회에서 보내게 됐어요. 너무 따뜻한 섬김을 받았어요. 그 사랑에 감동해 교회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됐어요.”

현장 잡부 일을 하면서 꾸준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전 삶을 드리지는 못했다. 시간이 흘렀다.

93년에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량 수리비 견적만 4000마르크(약 13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처참한 사고였다.

다행히 주님 은혜로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리지는 못했다. 이듬해인 94년에도 또 다시 교통사고를 당했다.

“1년도 안된 상태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하면서 치료한다고 그동안 모은 돈을 쓰고보니 남은 것이 없었어요. 완전히 빈털터리가 됐어요.”

비로소 주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상황은 그렇지 않았으나, 감사가 넘쳤다.

그 무엇이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께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손에 쥔 것은 없었다. 오직 병든 육신밖에는 드릴 것이 없었다.

“주님, 제 몸을 드리겠습니다.”
두 번의 교통사고 이후 “회심”

그리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기쁨과 감격의 시간이 이어졌다. 95년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삶이 송두리채 변했다.

나만의 일신영달(一身榮達)을 추구하던 기도제목이 달라졌다.

“이웃의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두고온 가족과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그들은 아직 복음도 모르는데.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갑작스럽게 귀국을 생각하게 됐다. 독일 체류 상황도 달라졌다. 그전까지 학생 신분으로 체류하던 비자발급이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된 한 변호사님은 난민 신청을 권유하더군요. 그때 난민 신청을 하면 받아들여져 계속 독일에 거주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도하면서 결정했다. 난민 신분으로 계속 독일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 기회를 고국 베트남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다.

“주님이 베트남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은 생을 고국에서 민족이 주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데 쓰임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97년에 다시 고향 땅을 밟았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노방전도를 시작, 전도자로서 삶을 시작하게 됐다.

그 무렵, 베트남 사회에 일대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1년 2월. 베트남 정부가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한 것이다.

2011년말 말 국내에서 열린 한국베트남기독교포럼에서 응웬 홍 즈엉 베트남사회과학원 종교연구원장은 90년대 이후 베트남의 기독교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90년 10월경 베트남 정부와 개신교의 관계가 조금씩 풀렸다. 그러다 90년대말 종교에 대해 정부가 인정하는 분위기를 취하며, 개신교단의 독자적인 모임이 표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2001년 2월 베트남 기독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남부복음성회가 대형집회를 개최하게됐고, 이 무렵 정부가 개신교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종교로 인정하게된 것이다.”
2001년 2월 개신교를 공식종교로 인정

쭈민선 장로가 귀국하던 90년대 후반, 출석하던 교회에는 60-70명 정도의 교인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노방 전도를 비롯,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으로 전도를 열심히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많이들 낙심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중 함께 보트 피플로 독일에서 살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7명이 남게 됐다.

“처음에는 함께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지요. 그러다 숫자가 늘어나면 모임을 나누고, 또 나누고 셀모임 형태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연히 성도들이 늘어갔습니다.”

주님을 만난 그들에게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삶으로 여겨져, 교회 이름을 베트남선교교회로 명명했다.

또 이들 교회들이 연합해서 만날 때는 ‘베트남 쭈엔자오’(선교하는 베트남)라 불렀다.

연합체의 영문표기는 각 단어의 첫글자를 따, ‘VNTG’로 불렀다. 현재 이 VNTG에 소속된 성도는 15만명에 이른다.

“VNTG의 비전이 몇가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베트남을 구하자.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면 열방이 변한다.

지옥보다 천국에 베트남 사람이 넘치게 하자.’ 아주 구체적인 비전도 있습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 베트남 사람 절반 이상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자.’ 등등 구체적인 구호같은 비전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베트남에는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개신교측 교단이 10여개가 존재하고 있다.

이같이 기독교계의 성장세는 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됐다는 것이 쭈민썬 장로의 의견이다.

“제 기억으로 98년은 베트남 기독교계에 아주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성경번역이 시작된 해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집단 개종과 전도의 열매가 풍성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3일 동안 북부 흐몽족에는 1000여명이 거의 동시에 회심하여 주님을 영접하기도 했습니다.”

VNTG도 이같은 시기를 거치며 회심자를 많이 얻게 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고난의 시간이 믿음의 순종과 열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서남 아시아와 동유럽 겨냥, 해외선교

“어려운 위기 상황에서 주님은 약속의 말씀을 주셨지요. 시편 118편 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이 능력의 말씀으로 이겨낼 수 있었지요.”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고난을 건져주신다는 말씀처럼 고난의 시기에 더욱 주님을 붙잡은 것이다.

VNTG는 앞으로 해외선교에도 더욱 열심을 내어 순종할 계획이다. 해외선교부장으로 섬기고 있는 쭈민썬 장로의 말이다.

“저희는 마가복음 16장 15절의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받고 서남아시아 국가에 복음을 전하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

그렇게 시작된 해외 선교사역은 이제 서남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려고 한다.

현재 단기선교 등의 형태로 라오스,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수십개국을 다녀왔다. 또 독일에서 주님을 만났던 관계로 동유럽에 대해서도 부담을 갖고 기도하고 있다.

기도제목을 물었다.

“저희는 앞으로 주님이 허락하시면 가두전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전광판 차량을 놓고 기도중입니다.”

그들이 몇년채 크리스마스 등의 시기에 가두전도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면 이같은 기도제목이 얼마나 간절한지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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