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원의 故 대천덕 신부의 아내 현재인 사모를 보내며
2012년 4월 6일, 한국 교회는 또 한 명의 벗을 잃었다. 아니, 다시 그분의 품으로 보내드렸다. 그녀의 이름은 현재인. 영어 이름으로는 제인 그레이 토레이(Jane Grey Torrey).
총선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흐린 4월 11일, 기자는 빈소가 마련되어 있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방문했다. 빈소에는 손님들을 맞는 몇 분의 관계자들이 있었고, 영정사진 앞에서 고인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스크린에서는 고인의 생전 모습이 영상으로 비추고 있었고 한 번도 고인의 모습을 뵌 적은 없었음에도 너무나 친숙한 얼굴로 나를 반겨주시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뭉클했다.
고인 현재인 사모는 결혼 전 미국 전역 40여개 주에서 60여회의 전시회를 할 정도의 재능있는 화가였다. 퀸즈대를 다닐 때는 메이퀸으로 뽑힐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으며 그런 그녀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남편인 대천덕 신부를 따라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던 1957년, 현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인 미카엘 신학원 재건을 위해 한국에 왔다. 1965년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강원도 태백 땅에 예수원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한국 구석구석에 복음의 정신을 새겼다.
부부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예수원을 세워나갔고 평생 무소유로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나갔다. 제인 사모는 남편 대천덕 신부와 함께 예수원을 ‘실험실’이라고 부르며 세 가지 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첫째 개인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의 실험,
둘째 자신과 다른 이들과의 영적인 공동체의 실험,
셋째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의 실험을 통해서 개인의 영성을 넘어선 공동체와 사회의 영성이다.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삶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고 지금도 한국사회 구석구석에서 그 열매들을 맺고 있다. 이들 부부는 예배 시간에 구체적으로 죄를 고백하며 자신을 낮추었고 온전히 성령을 의지하며 기도의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경적 토지관, 기독교 세계관 운동,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과 목소리를 늦추지 않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자신의 반평생 이상을 한국에서 보냈던 현재인 사모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떠날 때조차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또 한 알의 밀알이 이곳에 썩어져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던 주님의 말씀이 지금도 이루어짐을 본다.
한 평생 수고하며 아름다운 귀한 삶을 나눠주신 그분을 기억한다. 지금은 주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릴 현재인 사모님을 추억하며. 나 또한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질 것을 다짐해본다. [복음기도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