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오요한 선교사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자,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 이삭에게 떠나라”(창 26장) 그렇게 이삭은 몇 차례씩 쫓겨났다.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나그네의 삶. 선교사의 삶이 바로 그렇다. 몇 년 전 A국에서 사역의 열매를 거두던 한 선교사가 현지에서 추방당했다. 그 이후 B국으로 사역지를 옮겨 미전도종족을 섬기다 잠시 한국에 방문한 오요한 선교사를 만났다.
– 몇 년 전 현지에서 추방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이 어떠셨는지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밖에 허락을 안 하셨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사람에 대한 원망스러움에 (신고한 제자는) 왜 유다 같은 짓을 했을까. 그 생각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기 어렵더군요. 그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경찰의) 습격을 받은 날부터 정말 감람산에서 제자를 두고 떠나는 주님 마음을 묵상하게 되더군요. 나는 한국으로 추방된다 하더라도 남은 이들이 겪게 될 어려움만 생각하면 마음이 어려웠죠. 고난 받는 것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매 맞고, 가족들에게 분리되고, 학교에서 퇴출당할 텐데. 댓가지불이 너무 큰 거에요. 함께 있던 현지 제자는 이러더군요.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은 정말 몰랐다고.’ 비밀경찰한테 유린당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며 너무 미안했어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더군요. 생명주는 일, 미안하다고 여길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추방되는 과정을 겪으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았어요.”
– 정말 그 일은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죠. 많이 답답하셨겠어요.
“그런데 감사한 마음도 생기더군요. 현지 제자들이 커 나갈 수 있는 기회였거든요. 저희와 같이 고통을 받으면서 제자들의 믿음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보았어요. 무슬림 국가에서 이렇게 빨리 제자들이 세워진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다만 어려움은 한국의 동역자들에게 이런 상황에 대한 설명이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일을 한 것 같고, 실패한 것 같은.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래서 추방당한 다음에 안정된 사역지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다시 추방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에 쉽게 보이는 사역지를 택하게 되는데 주님은 그렇게 인도 하시지 않으셨어요. 어려운 곳,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갈 마음을 주셨어요.”
–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현재는 B국으로 파송 받아 그곳에서 한 종족을 품고 있어요. 그리고 곧 미전도종족이 거주하는 또 다른 지역으로 들어갈 준비 중에 있어요. 제가 A국에서 추방될 때 함께 사역하던 선교사님들이 대부분 추방됐어요. 다 뿔뿔이 흩어지고, 현재 몇몇 선교사님들은 이곳에 오게 되셔서 함께 기도 모임을 갖고 있죠. 저희들은 땅 끝을 향한 기도모임 ‘땅끝향기’라고 불러요. 미전도종족으로 구분된 지역을 직접 들어가 조사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 뜻이라 분별되면 그곳으로 들어가는 거죠. 저희가 머물고 있는 지역은 선교사들이 거할 수 있는 곳이기에 복음을 대부분 듣거나 들을 기회가 있는 곳이지만 아직도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볼 수 없는 종족이 주변에 많아요. 물론 위험하고 대가가 더욱 지불되겠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기에 순종하게 되었죠.”
– 예전부터 미전도종족을 대상으로 선교사역을 준비해오셨나요?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하지만 ‘추방’이라는 형태로 한번 뿌리가 뽑히고 난 이후, 안정적인 방식의 선교형태에 안주했던 것에 대해 회개하게 되었죠. 또 선교사가 들어가지 못하는 빈 공간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되었어요. 이전에 잠시 소수종족을 찾아가 섬겼던 경험을 통해서도 주님이 이 일에 기뻐하신다는 것을 보기도 했었죠.”
– 빈 공간에 복음을 전하는 일, 순종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 같군요
“‘왜 하필이면 내가’라고 반문해야하는 상황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순종이더군요. 순종이 뭔지 생각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순종이란 ‘하필이면 내가’라는 반문이 생길 때 하는 것이더군요. 그 일을 생각하는 사람, 마음 쓰이는 사람이 순종하는 거였죠. 연합도 누군가 먼저 하자고 하면 좋겠지만 먼저 잘 안하잖아요. 그런데 그 마음 받은 내가 먼저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럼 또 매번 나만 손해 보는 것 같다고 느끼겠죠. 그런데 다른 분들도 다 동일하게 느끼시더군요. 순종과 연합은 ‘왜 하필 내가 해야 할까’ 하는 일에 순종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어요.”
– 선교사란, 선교란 무엇이라고 정의하실 수 있을지 묻고 싶어요.
“처음에는 스스로를 선교사라 생각 못했어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주변에서 선교사라 부르면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저는 선교사에요. 정말 연약해서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선교사라고 생각해요. 선교사역에는 보이는 사역보다 보이지 않는 사역이 더 많아요. 표시 안 나는 사역 말이에요. 바쁘긴 엄청 바쁜데 그것을 누군가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죠. 또 어떤 새로운 사역을 하는 것 보다 언제 멈춰야하는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할 때가 많죠. 추방당하고 어렵게 요르단을 가서 느보산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많이 생각하게 되었죠.”
– 어떤 묵상이었는지 궁금하네요.
“하나님이 모세를 느보산에 세우셔서 이스라엘 땅 전체를 보게 하셨다고 성경에 나오잖아요. 실제 그곳에서 보니 예루살렘은 커녕 요단강 건너편만 보이더군요. 그런데 주님이 모세를 약속의 땅 전체를 속속히 보게 하신 후 ‘너는 못 들어간다’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모세는 아무 말 없이 내려왔죠. 저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 나오게 한 것이나 광야에서 전쟁에 승리하게 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보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만 하고 아무 말 없이 내려올 수 있는 것. 저만해도 그 나라에서 떠나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주님은 저에게 ”네가 있어야할 곳은 그곳이 아니야.“ 라고 하셨어요. 그때 모든 걸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거였죠. 주님이 뭔가를 보여주실 때 이해는 안 되지만 재빨리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그래야 주님의 뜻을 볼 수 있다는 것 알게 되었어요.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 항상 마음에 두고 순종의 걸음을 걷고 있어요. 물러설 때는 물러서야죠. 언제까지 이 사명을 맡기실지 모르지만 다만 한 가지 지금은 이 사명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또한 기억하는 것이죠. 무엇을 이루느냐보다 누구와 동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내가 미전도종족의 문을 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죠. 그 종족을 품고 비자가 열리지 않아도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사실 일하는 것보다 힘든 것은 기다리는 거라고 하더군요.”
– 약간 짓궂은 질문 같지만, 다시 추방과 같은 그런 상황을 겪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게 있어요. 그 시간이 내게는 없어선 안 될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음을요. 그래서 고난이 올 때면 이제 기대하게 되요. 물론 그 순간은 너무 힘들죠. 그리고 앞에 주님은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주님을 어떻게 보느냐 하면요.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의 눈을 통해 볼 수 있어요. 뒤를 돌아보면 볼 수 있구요.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돌아보면 주님이 어떻게 나를 돌아보셨는지 알게 되요. 앞에는 안보이지만 뒤를 보면 주님은 항상 서 계심을 알기에 갈 수 있는 거죠.”
– 선교사로의 부르심은 어떻게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비즈니스 하며 해외에서 선교를 돕는 일을 조금 했어요. 그러던 중 하나님 은혜로 복음의 진리를 듣게 되고, 그 자리에서 선교사로 헌신했죠. 이후 선교사로 훈련 받기 위해 선교단체에 지원하며 훈련을 기다리던 중 복음학교를 통해 총체적 복음 앞에 서게 됐어요. 저는 예전부터 진리를 알았지만 죄는 죄대로 다 짓고 살았어요. 돈 많고 젊으니 어떡하겠어요. 바로 사망의 골짜기였죠. 꼭 나쁜 짓은 술집 가서 술 먹고 해야 나쁜 게 아니에요. 복음 앞에 서고 나니 알게 되었죠. 이것이 얼마나 나쁜 죄인지. 건설회사에 있는 동안은 우린 술 접대 없다고 사인을 안하고 대신 해외로 골프여행가라고 직원들에게 여행상품을 줬어요. 그런데 직원들이 골프만 쳤겠어요? 알면서 모르면서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지요. 복음 앞에 서면서 절망하게 되었죠. 내가 선교사로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2006년에 복음 앞에 서면서 세상에 대해 죽은 자가 됐죠. 그 이후 삶의 현장에서 죄를 발견하게 되면 제가 처리 할 수 없기에 주님께 맡기며 나아가고 있어요. 2007년 A국으로 첫 파송 받게 되었고,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어요.”
– 이 길을 함께 걸어온 가족들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시겠어요?
“아내와 두 자녀가 있어요. 큰 아이는 아프리카 선교사의 꿈을 꾸고 있는데요. 한번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더군요. 그리고 기도하던 중 주님이 확신을 주셨고 은혜가 많아요. 현지 아이들과 겨우 친해지고, 언어 좀 될 때면 다시 떠도는 생활을 하다 보니 무척 힘들 때도 많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하나님 은혜로 함께 짐을 지고 가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잘 이겨내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 가족이 하는 일은 묵상이고, 그 말씀으로 하루를 살아내죠. 그리고 저녁에는 말씀을 나눠요. 2006년 이후 365일 그런 생활 속에 사니까 서로 바뀌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죠. 어느 날 제 딸이 이런 고백을 하더군요. 아빠가 돈 잘 벌고 좋은 환경 줬던 그때보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주님 앞에서 이렇게 대화도 하고 선교사로 서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누구의 인정보다 가족의 인정을 받고 있으니 정말 감사하죠.”
– 앞으로의 비전을 나누어주세요.
“저의 비전은 미전도종족 수를 줄이는 거에요. 그런 땅이 다 없어지기 까지 달려가다 보면 저 또한 언젠가는 이 땅에 없어지겠죠. 그러나 주님이 또 다른 사람을 세우실거에요. 그렇게 순종하다보면 100년 뒤가 아니라 곧 그날이 올거라 믿어요.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Y.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