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배자 (3)
아브라함의 정통 혈통으로 스룹바벨 성전을 다시 짓고 겉으로는 신앙의 모양이 갖춰졌다. 구약 마지막 시대에 희망의 기회가 주어진, 포로귀환된 이스라엘 백성. 그들에게 적의 독화살이 날아왔다. 영적 예배의 위기에 빠졌다. 영적 질병의 증후군이 예배라는 영역에서 드러났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 1:6)
주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사랑이 식어버리면 하나님을 멸시하게 된다. 영적 지도자요, 예배를 주도하는 제사장들. 그들이 주관하는 예배에 형식만 남아있었다.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며 예배의 책임은 감당했는데 정작 주님의 이름을 멸시했다는 선고가 떨어졌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이들은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 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1:13)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한다. 왕에게 바치는 진상품은 왕의 수준에 맞아야 한다. 아무거나 갖다 바치면 왕을 모욕한 죄로 도리어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예배 형식만 지키면서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제물을 갖다 바쳤다. 예배가 형식만 있고 경건도, 능력도,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도 없으니 깊이 병이 든 것이다. 영적인 깊은 질병이 예배로 나타났다.
제사의 행위 각각에는 다 의미가 있다. 제물을 잡는 것부터 번제단의 불을 관리하는 것, 제물을 태우는 것, 물두멍에 손을 씻는 각 의식마다 의미가 담겨있다. 흉내 내며 따라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시간을 쓰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은 아까워한다. 영적인 바로미터는 바로 예배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예배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중심이다. 그래서 예배의 위기가 오면 예배를 경멸하고 코웃음 치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말 2:17)
하나님을 정말 괴롭게 하는 것은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자들이 예배와 함께 악을 행하는 것이다. ‘주여, 주여.’ 하며 모든 예배행위는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 죄를 저지르고 악을 버리지 않는 것을 주님은 견딜 수 없어 하신다. 마음에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 음란을 가지고 거짓말하면서 모양만 멋있게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다. 형식만 있는 예배는 아주 심각한 위기 상태다. (2018년 2월)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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