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경계(警戒)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잠15:31)
“생명력 있는 모든 기도는 사람의 생명력을 소진시킨다. 그러므로 참된 중보기도는 희생이다. 피 흘리는 희생이며, 갈보리 사건을 영속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이다.”
주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히 5:7). 중보기도는 즐거운 감정이 고조되는 꿈같은 환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씨름’, ‘고뇌’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에바브라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골 4:12)에 사용된 “애쓰다”(wrestling)라는 헬라어에서 영어의 “고뇌하다”(agonize)가 나왔다.
이같은 ‘고뇌’의 의미가 가장 잘드러난 장면은 겟세마네의 비극에서 나타난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눅22:44).
진정한 중보기도는 희생이 따른다. 참된 중보기도는 희생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허드슨테일러와 기도의 거장들(2012), 죠이선교회 刊
命を与える懲らしめに聞き従う耳は知恵ある人の中に宿る。(箴言15章31節)
“命あるすべての祈りは人の命を消耗させる。だから真の執り成し祈りは犠牲だ。血を流す犠牲であり、カルバリ事件を永続させることであり、キリストの残りの苦難を満たすことだ。”
主は“激しい叫び声をあげ、涙を流しながら、御自分を死から救う力のある方に、祈りと願いとをささげ”(ヘブライ人への手紙 5章7節)。執り成し祈りは楽しい感情が高調される夢のような幻ではない。それより‘苦しみもだえ’、‘苦悩’という言葉で表現される。
“エパフラスが・・・いつもあなたがたのために熱心に祈っています”(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4章12節)に使用された“熱心に”(wrestling)というヘブライ語で英語の“苦悩”(agonize)が出た。
このような‘苦悩’の意味がよく現れた場面はゲツセマネの悲劇から現れた。
“イエスは苦しみもだえ、いよいよ切に祈られた。”(ルカによる福音書22章44節)
真の執り成し祈りには犠牲が伴われる。真の執り成し祈りには犠牲と全面的な献身が要求される。それなら、我々は我々自身を捧げることについて神様に祈るか問わざるを得ない。
-ハドソン・テイラーと祈りの巨匠たち(2012)
ジョイ宣教会 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