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를 기뻐 아니하시고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 147:10-11)
출애굽의 영웅, 민족 구원의 지도자, 그러나 어떤 칭호보다도 하나님의 사람. 그 이름만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 되는 사람 모세.
사망의 때에 태어나 나일강에 던져진 그를 건져내어 살게 하신 이는, 애굽의 궁중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양육 받게 하신 분이며, 황실의 권세와 뛰어난 능력을 주신 이이시며, 이스라엘의 고난을 돌아볼 마음을 주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 분명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그에게 속한 젊음, 권세, 능력, 열정 등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고 잠잠하셨다.
모세가 그토록 신뢰했던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애굽인 한 사람을 살인한 것과 도망하는 것뿐이었다.
하나님의 도움 없는 뛰어난 한 인간의 힘이란 포도나무에서 꺾인 가지에 불과했다. 그가 도망쳐 이르게 된 미디안 광야 40년은 그가 의지했던 모든 것을 상실하고 무력해진 인간 모세만 남겨 놓았다.
40세의 혈기 왕성한 젊음은 80세의 늙은이로, 왕자의 권세는 광야의 목동으로, 애굽의 학문과 능력은 입술이 뻣뻣한 무능자로 완전히 바뀌었다.
드디어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시는 주님 앞에 초라한 목동으로 서게 된 모세. “내가 너를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나의 종으로 쓰겠노라!”고 하시는 하나님께 모세는 한사코 “나는 아닙니다. 무능합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했다.
자신 스스로에게서 어떤 것도 나올 것이없는 자임을 철저히 깨달은 것이었다. 주께서는 두 번의 기적(지팡이, 문둥병)을 통해 “네가 아닌 전적인 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단지 너를 사용하기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너의 가진 무엇이나 너의 어떠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출애굽의 역사는 이뤄질 것이다.”
결국 주의 부르심 앞에 머리 숙여 경배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그의 손에 들렸던 지팡이가 하나님에 의해 다시 모세의 손에 돌아왔을 때에는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분명해졌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말의 힘이나 사람의 다리가 아니다. 힘도 아니며 능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자를 원하신다.
모세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지금 또다시 우리에게 미디안 광야 40년과 같은 시간이 필요할까? 나의 젊음, 권세, 능력, 열정이 필요할까? 우리 존재의 무력함을, 인간 전략의 초라함을 굳이 다시 경험해야만 할까?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세우려고 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하나님은 이 패역한 세대를 구원할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으신다. 견고하게 버티어선 바벨론의 성문. 거룩함을 비웃고 조롱하며, 거침없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세속의 힘에 주저앉은 종교. 속기도 속이기도 하는 교활하고 혼미하며 강퍅한 세대. 그 어두움의 악한 세력을 파하고 포로 된 백성을 구원하는 거룩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낼 자들.
그들은 패기만만한 자신감과 야심이 가득한 전략가나 대단한 이력의 실력가가 아니다. 오직 꺾인 다리와 부러진 날개를 가진 심령, 깨어진 마음의 사람,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인자하심만 구하는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충분한사람.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 복음이 결론이 된 사람(고전 1:22-24). 예수 그리스도로만 설명할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어떤 전략가보다도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기도의 무릎으로 능력을 삼은(요 14:12-1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주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주님이 하신다면 무엇이라도 주저 없이 순종할 수 있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 아멘
영광이 오직 주께! 마라나타! [GNPNEWS]
김용의 선교사 컬럼
<순회선교단 대표>
「그날이 오기까지」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