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호 / 인터뷰]
모태신앙이었지만 믿음 없는 사람들처럼 살았다. 직장을 다니다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시 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뭔가 모를 답답함이 있었다. 늦게 예수님을 만난 다른 성도는 열심도 대단한데, 정작 자신에겐 열정도, 주님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저 교회 다니는 게 믿음이라고 생각한 강선자 집사는 그때 비로소 믿음생활을 하고 싶은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믿음생활을 다시 시작하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제대로 믿자고 결정한 이후,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첫째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아들이 그리 축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약간의 편법을 쓰면 축구를 할 수 있는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죠. 마음이 찜찜했어요. 그렇지만, 한번 말이 나온 뒤 아이의 진학을 취소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학교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런데 아이는 결국 한 학기만 하고 축구를 그만뒀어요. 그때쯤 교회 집사님이 복음학교를 소개해 주셨어요. 가고 싶었지만 처음에는 남편의 반대로 참석할 수 없었어요. 남편은 믿는 사람이 아닌데다, 훈련에 참가하려면 집을 일주일이나 비워야했거든요. 그러다 갑작스럽게 남편의 태도가 바뀌어서 복음학교에 다녀오게 됐어요.”
– 어떤 은혜가 있었나요?
“5박 6일 동안 은혜는 있는데, 주님이 나를 여기 왜 불러주셨을까? 질문이 생겼어요. 하루하루 흐르면서 여기 오는 동안 우리 아이들을 돌봐준 집사님들에게 뭐라고 해야지, 은근히 걱정한 거죠. 그런데 주님이 마지막 날 강의시간에 ‘너를 선교적 존재로 불렀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마음으로 감동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는 게 먼저는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그동안 주님과 이런 만남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부르심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어요. 반드시 중보기도학교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선교적 존재니까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거죠.”
“너를 선교적 존재로 불렀다”
– 주님의 음성에 바로 순종하셨군요.
“처음에는 강의만 듣고 바로 귀가해서 일상 생활에 큰 변화가 없어서 별로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런데 훈련 과정 중에 합숙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일들이 몇 번 있었어요. 그때부터 남편이 반대하기 시작했죠. 심할 땐 이혼 얘기도 나오게 됐어요. 처음에 중보기도학교 하면서 말씀을 잘 모르니까 결단했어요. 주님이 가라하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겠다고요. 그게 제가 주님께 드린 첫 고백이었어요. 근데 멈추라는 사인이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하루하루 견디면서 살았죠. 남편의 반대는 계속 심했어요. 그런데 더 큰일이 생겼어요.”
– 어떤 일이었나요?
“중보기도학교에서 떠나는 아웃리치 기간이 가족 행사와 맞물렸어요. 식구들에게 행사가 있는 주간에 해외로 아웃리치를 간다니까 처음에는 농담으로 여겼어요. 그런데 진짜로 간다고 하니까 선교는 선교사가 가야 된다면서 심하게 반대했어요. 날마다 욕을 먹었어요. 그런데 주님이 멈추라는 사인을 주시지 않는 거예요. 멈추라는 말씀이 없으면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웃리치를 준비했어요.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날 때 주님이 터를 바꿔 주시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부모가 매일 다투는 모습을 보며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했죠. 주님이 터를 바꿔 주시겠다고 했다고요. 집을 지으려면 헌집을 다 부숴야 되는데, 그러면 시끄러울 수 있다. 지금은 그런 과정이다. 믿음으로 가려다보니 소란스러운 것이라고요. 아이가 알겠다고 하면서도 이해는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군요?
“그렇게 아웃리치를 떠났어요. 그런데 아웃리치 다녀온 이후 더 겁이 났어요.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야 되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전화할 때마다 떨렸어요. 믿지 않는 분은 오히려 건강하게 다녀와서 다행이라고 하셨지만, 가족과 친척들은 대부분 냉정하게 대하셨어요. 그때는 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만 당하는 것 같고 그들의 어려움은 몰랐죠. 시간이 지난 이후 주님이 그분들도 저를 바라봐야 되는 게 힘들었다는 것을 알려 주셨어요. 관계도 회복됐어요. 주님의 은혜죠. 이제는 가족들이 우리 집에 오리지널 집사가 있다고 말해요. 우리 남편도 제게 진짜 집사라고 말해 줘요.”
– 시련은 있었지만, 진짜 믿음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네요.
“주님이 나로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하셨어요. 그때는 매일같이 울면서 버스를 타고 훈련을 받으러 다녔어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믿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배워갔던 것 같아요. 내 열심이 아니라 말씀이 결론이 되도록 한 거죠. 그때 주님이 에베소서 말씀을 주셨어요.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요. 그땐 잘 몰랐죠. 나중에 알게 됐어요. 이거 아니면 내가 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랬구나.”
– 그 이후 믿음의 길은 어떠셨어요?
“아웃리치를 다녀오고 이제 진짜 전쟁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첫째 아들이 축구를 그만두고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좋은 중학교를 다니면 아이가 잘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을 따라가기가 어려우니까 학교에 안 가겠다고 했어요. 뭘 해야 할지 몰라, 아침, 저녁으로 기도했어요.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는 애를 깨워서 보내고 계속 기도 하는데 주님이 이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학교에서는 계속 벌점통지를 보냈어요. 저는 일주일마다 학교에 불려가고요. 선생님에게 정중하게 내가 데리고 있으면서 다시 가르쳐야 될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어봤어요. 학교에 아예 안 나오면 퇴학이 되니까 매일 몇 시간 있다가 가면 수업 일수는 모자라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 그럼 그때부터 아이 옆에 계시는 시간이었겠군요.
“그때부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쇼핑하고 싶다면 쇼핑하고 영화보고 싶다면 보여줬어요. 해달라는 대로 해주니까 아이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집주인이 갑자기 계약기간이 남은 집을 비워 달라고 했어요. 그럴 일이 거의 없는데요. 당시에 교회를 놓고 기도하고 있던 저는 옮기라는 주님의 사인이라고 여겨졌어요. 선교적 존재로 부르심을 받고 난 이후, 열방을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었죠. 그러나 아이가 좋은 학교를 졸업하기 원하는 남편의 반대로 이사를 할 수 없었어요. 아들의 증상이 더 심해지자, 남편이 결국 이사를 가자고 하더군요.”
– 힘든 시간이셨네요. 이사하고 좀 나아졌나요?
“그런 시기에 평소에 교제하고 지내던 두 가정이 휴가를 함께 보내자고 펜션으로 우리 가정을 초대했어요. 그때 기독학교인 헤브론원형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우리 아들에게 학교에서 하는 캠프에 초대를 했어요. 다음세대 아이들이 같은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시간이었어요. 예상치 않았는데 아들이 원서를 받아서 줄줄 쓰는 거예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거죠. 캠프를 마치고 아이가 돌아왔는데 얼굴이 완전 달라져 있었어요. 빛이 났죠. 그러면서 자기는 이제 헤브론원형학교에 가겠다고했어요. 그곳은 다음세대 선교사를 양성하는 기독학교인데 가겠다는 거예요. 아빠가 어땠냐고 물어봤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왔다고 대답했어요. 남편의 첫마디는 ‘큰일 났네.’였어요.”
“가족과 씨름하며 믿음을 배우다”
– 정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을 실감하게 되네요.
“아이가 와서 고백하기를 ‘아빠는 예수님 못 만났지? 난 예수님 만나고 왔다. 이제 학교 안 가겠다.’고 했어요. 선교사 할 거라면서 로마서 12장 말씀을 받아왔다고 하는 거예요. 영적 예배자가 될 거라고, 순교할 거라고요. 완전히 변해서 왔는데 아빠는 안 받아들였죠. 남편은 일단 학교를 가라. 나중에 신학을 하면 되지 않냐. 그랬더니 아들이 ‘나는 밭의 보화를 발견하고 왔는데 왜 똥 보자기를 들고 가라고 하냐.’며 따졌죠. 보화는 복음이었고, 똥 보자기는 이전에 살던 자신의 삶이었어요. 아이는 자기가 다시 학교에 가면 예전처럼 될까봐 겁난다고 했어요.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았던 거 같아요. 그러나 아이가 말씀과 기도의 기반이 없으니 결국 아빠의 설득에 무너지더라고요. 아빠한테 학교에 돌아갈테니 핸드폰 바꿔 달라고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어요. 그땐 절망이 찾아왔죠. 한편으로 남편이 원망스러웠어요. 아이가 3학년 2학기 때 이사를 왔는데 겨우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고등학교는 안가겠다는 거예요. ‘학교 가도 배울게 없다. 학교가 지옥 같다.’ 아빠는 학교 가서 잠만 자더라도 졸업만 하라고 했죠.”
– 또 어려운 시간이 시작됐네요.
“아빠는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것을 못 받아들였어요. 고등학교에서도 벌점이 날아왔어요. 저는 또 학교로 불려 다녔어요. 한번은 제가 일주일 집을 비운 사이에 남편이 학교로 불려갔어요. 그때 더 이상 못 보내겠다고 결정하고 자퇴를 시켰어요. 그렇게 고1 때 그만뒀죠. 그런데 제가 아이와 집에서 같이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어요. 낮과 밤이 바뀐 아이를 볼 자신이 없었어요. 어느 날 주님이 ‘저 애는 신생아야.’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먹고, 자고, 게임만 할 줄 아는 신생아구나. 그러니까 마음이 평안해졌어요. 먹고, 자는 게 그 아이가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죠.”
내가 돌아갈 곳은 말씀뿐이었어요
– 그래도 마음이 얼마나 어려우셨겠어요.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말이 많았어요. 속상했죠. 그때 시편 37편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어요.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고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거예요.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신다고요. 그러면서 이 아이는 주님이 쓰실 거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제게는 그 자리에서 기뻐하고 찬양하라는 마음도 주셨죠. 정말 감사했어요. 하루하루 아이를 지켜보며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내가 돌아갈 곳은 그 말씀 뿐이었어요.”
– 말씀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가셨군요.
“지금은 이 아이가 ‘그때 나 때문에 주님과 더 가까워졌잖아.’라고 말해요. 그 어려운 시간에 육적으로 싸웠다면 관계가 어려워졌을텐데 말씀 덕분에 지금은 제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도 웃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어요. 여전히 아들은 교회에 나가진 않아요. 그래도 한 번씩 교제할 때 주님을 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이상 225호에 게재>
– 주님이 어려운 시간을 잘 통과하게 하신 것 같아요.
“한 아이로 끝나면 좋으련만 둘째 아이에게도 사춘기가 왔어요. 여자아이는 감정적인 치열함이 있었어요. 한창 어려울 때 창세기 2장 1절 말씀을 통해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어요.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었다. 그게 딸 아이 안에 있다는 거예요. 딸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어 보이는데 천지 만물이 이 아이 안에 이루어졌다고요, 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 펑펑 울었어요. 말씀을 붙들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부딪침도 많이 있죠. 그래도 모든 소망이 다 끊어졌을 때 주님으로 소망을 두게 하세요.”
– 어려울 때마다 말씀에서 힘을 얻으시네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말씀과 기도의 생활이 삶에 배어있으신 것 같아요.
“저 스스로는 어려웠어요. 김포로 이사 오면서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를 찾았었는데 느헤미야52 기도를 하고 있는 교회가 마침 집 근처에 있었어요. 느헤미야52 기도는 열방을 위한 기도인데요, 그때 교회에 한 권사님이 홀로 그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계셨어요. 어차피 주님이 저도 선교적 존재로 불러주셨으니 열방을 위해 기도해야죠. 처음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황무지 같은 나에게 주님이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생각나게 해주셨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느헤미야52 기도 담당이 저에게 넘어오게 됐어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 못해요. 덕분에 함께 기도하던 분들이 지금은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20 가정이 아이들과 이 기도를 이어가고 있어요.”
강 집사의 인터뷰에 동석했던 지정숙 권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가 바로 느헤미야52 기도를 홀로 하고 있던 장본인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주님이 강 집사에게 느헤미야52 기도담당을 넘기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다 모르고 순종했는데 지금은 아이 엄마들이 느헤미야52 기도에 많이 와요. 강 집사의 삶이 그들에게 도전이 됐죠. 기도만 하면 된다는 강 집사의 말을 처음엔 이해 못했어요. 엄마들의 비난도 적지않았죠. 근데 학교도 안가고 속 썩이던 아들이 대학도 가고 강 집사가 아이에게 복음을 전한다며 지금은 은혜를 많이 받아요.(아들은 검정고시 이후, 기독교재단에서 설립한 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다) 지금은 이 느헤미야52 기도를 다음세대로 옮기신 것을 봐요. 지금 우리 교회에 다음세대가 1000명이 넘어요. 물론 이 아이들의 부모가 다 교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아이 엄마들이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코로나로 나올 수 없는 지금, 아이들과 기도의 불을 지피고 있어요. 주님이 다음세대를 향한 계획이 분명 있다고 믿어요. 주님이 기도시키시는 다음세대를 통해 분명 일하실 거예요.”
– 기도하면서 받은 은혜를 나눠주세요.
“열방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궁금했어요. 하나님의 마음으로 열방을 위해 기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정작 우리 아이와 남편의 마음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 정작 옆에 있는 지체의 마음을 보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서 그들의 시선으로 봐야겠다는 마음 들었죠. 그렇게 하다보니까 우리 아이의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관계가 결국 마음이구나 깨달아졌어요. 관계 회복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싶어 하는 것에서 시작됐어요. 지금은 내가 주님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보는 것처럼 지체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어요.”
– 네, 기도의 자리에서 많은 회복이 있으셨겠네요.
“남편에게도 내가 복음을 안다고 가르치려고 했었데, 어느 날 남편은 주님을 믿지 않는데도 생각이 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 남편을 인정하게 되고 남편이 나보다 낫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니까 그 다음부터 관계가 좋아졌어요. 우리 딸도 어느 날 긴 가발을 하나 사온 거예요. 옛날 같았으면 뭐하러 사왔냐고 핀잔을 줬을 텐데 마음을 헤아려보면서 아이와 가발을 써보면서 놀게 됐어요. 그렇게 받아주니 복음을 얘기하면 듣게 되더라고요.”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선교적 존재로 불러주셨으니 기도의 자리에 있어야죠. 열방을 내게 기업으로 주셨다고 하셨으니까요. 우리나라와 열방의 상황을 보면 사탄에게 다 넘어가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됐는데, 시편 2편 말씀을 주시면서 세상의 군왕들이 아무리 대적해도 그들은 결국 망하게 돼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내가 두려워할게 아니라 여호와께 피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으니 여호와께 엎어지는 거 밖에 없죠.”
–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복음으로 하나 되는 우리 가정이 되는 것이 기도제목이에요. 남편이 요즘에 교회를 나가려는 조짐이 보여요. 자기 전에 찬양을 듣다 자고, 운전하면서 찬양을 듣고요. 남편이 청년 때 선교단체에 4개월 정도 있었어요. 군대 가는 바람에 그만 뒀지만요. 그렇게 주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끝>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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