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호 / 나는 기도하리라 (4)]
캄캄한 밤 같은 절망의 시대, 주님의 눈길이 딱 머문 한 사람이 있었다. 다윗,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 13:22) 주님은 다윗의 중심을 알고 계셨다. 어떤 시련에도 그는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매달릴 사람이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이방 여인이 딸을 고쳐달라며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 말씀하시며 또다시 외면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더욱 간절히 매달렸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고 시험하시는 예수님께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라고 고백했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시험 들어 도망갈 법도 한데 이 여인은 오히려 예수께 더욱 바짝 따라붙었다.
자식 못 낳는 설움과 마음의 고통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던 한나, 그녀 또한 고통이 더할수록 하나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고통이 될 때까지 기도하던 한나는 드디어 자신의 기도의 한계(限界)를 넘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아들을 주시면 종으로 바치겠다.’며 서원(誓願)하기에 이른다.
암울했던 사사시대, 잘난 남자들, 잘난 성직자들, 잘난 장로들 많았지만 하나님은 그들 대신 그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만을 구하는 한 여인, 하나님 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던 한 여인을 찾으셨다. 누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인가? 전심(全心)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 하나님 한 분 밖에는 남은 것이 없는 사람이다.
한나 자신의 고통에서 출발한 기도가 주님의 이름의 영광을 구하는 서원의 자리로 승화(昇華)될 때까지 주님은 기다리고 계셨다. 그러다 기도의 양이 찼을 때, 주님은 드디어 천하고 고통받는 한 여인의 그 작은 심령 안에 하나님 나라를 담으셨다. 그리하여 한나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냈던 다윗 왕국의 통로가 되었다.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바치겠다.’는 한나의 서원 기도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믿음의 통로였던 것이다.
한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기까지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 생각에는 너무 더딘 것 같고, 너무 불합리해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은 절대 구애(拘礙) 받지 않으셨다. 우리의 육적인 상식과 헤아림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2018년 1월)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저작권자 ⓒ 내 손 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문의:
[관련기사]
“기도는 고통이 될 때까지 구하는 것”
역사의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교회
“위기의 때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