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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국 추방기1] 나는 중국에서 이렇게 추방됐다

ⓒ복음기도신문

나의 중국 추방기(1)

이 글은 중국에서 추방된 조용선 선교사가 2018년 1월 5일부터 18일까지 중국 ‘구어바오’(国保) 요원에 의하여 체포되어 추방된 과정의 자전적 기록이다. 중국 공산정권의 극심한 종교탄압으로 2020년 2월초 현재 중국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이는 예배가 사라지기 직전 단행된 중국의 선교사 추방과정을 담았다. 현재 중국 지하교회 성도들은 정부의 불허로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대부분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편집자>

불청객이 찾아오다

2018년 1월 5일 오후 3시 즈음, 지난 18년 동안 상상만 하고 있던 일이 드디어 터졌다. 그 일이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내가 중국의 본토에서 선교사로서 활동을 멈춰야 하는 일이 마침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중국 안전국 국가보위(國家保衛)소속 즉 줄여서 중국말로 ‘구어바오’(国保) 요원이 집에 찾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직접 온 몸으로 겪어야했다.

50대로 보이는 사람과 두 명의 젊은 요원, 이렇게 세 사람이 집을 찾아왔다. 그들은 방문에 앞서 낯선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조 선생이시지요? 우리가 곧 집에 방문 할 것입니다.”

순간, 나는 시간이 ‘쿵’하고 모든 일상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18년 동안 정말 오지 않기를 그렇게 기도했던 그 시간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성경과 찬송가를 감추었다. 벽에 걸려있던 십자가도 모두 떼었다. 강대상에 붙어있던 교회 이름도 떼어냈다. 나는 그것을 떼다가 손가락도 베었다. 피가 났지만 그것을 치료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집을 가정교회로 보이지 않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구어바오’ 사람들은 내가 물품들을 다 치우기도 전에 문 앞에 왔다.

그들이 처음에 문을 열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마치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위장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는 그들이 세 번째 문을 열라고 했을 때에 문을 열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 고 물었다. 그들은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성큼 거실로 들어왔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중국은 왜 왔는가? 직업은 무엇인가? 회사를 다녔다면 명함을 보여 달라! 집안에 왜 이렇게 책이 많은가? …’ 나는 처음에는 이것저것 둘러댔지만 더 이상 둘러댈 수 없었다. 내가 망연자실(茫然自失)한 모습으로 있자 그는 나에게 “조 선생님, 목사지요? 우리가 다 알고 왔습니다. 우리가 보통 경찰로 보입니까? 조 선생이 만일 목사인 것을 시인하면 그냥 조사만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집안을 다 뒤질 것입니다. 그리고 조 선생 문건이 이 만큼 쌓여있는데 그것을 다 대조하여 조사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더 발뺌할 수 없었다. 집안만 수색해도 내가 목사이며 선교사인 증거들이 나올 테니까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낙담한 상태로 내가 목사인 것을 시인했다.

나이가 든 요원은 나의 아내도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심한 감기로 기침을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또 방안에 추위 때문에 텐트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아내가 무슨 병이 있느냐? 고 물었다. 나는 아내가 갑상선 암과 유방암에 걸려 수술했고 지금은 심한 감기에 걸려 누워있다고 했다. 그 요원은 아내를 조사 대상에서 뺏다. 그리고 나만 조사하기로 했다.

그는 내게 ‘언제 중국에 왔는지? 한국의 어떤 교회가 후원하는지? 선교 활동은 어떤 것을 하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 요원이 묻는 방법이 매우 교묘했다. 그는 질문에서 두 가지 양상을 보였다. 하나는 나에 대해 모르고 아주 우연히 나를 잡게 된 것처럼 물었다. 또 한 가지는 나에 대해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숨기지 말고 사실을 말하라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곧 그것이 나에 대한 일종의 시험인 것을 느꼈다. 그는 내가 사실을 말하는지 아니면 거짓을 말하는지를 보고 있었다. 나는 몇 가지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사실대로 말했다. 그것은 포로로 잡힌 군인이 이름과 군인 번호를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시간에 내 머릿속은 계속해서 ‘중국 교인들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교인들 가운데는 그들의 이름을 ‘구어바오’ 요원에게 절대로 말하면 안 될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조사를 받으면서도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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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c)복음기도신문

중국 교인들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까?”

‘구어바오’(国保) 요원은 내게 ‘조 선생의 사역이 대학생 사역이냐?’ 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저 중국인 교인 몇 사람과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는 나에 대해 조사하는 종이에 ‘중국인들에게 설교’라고 썼다. 그런데 당시에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가 질문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좀 정신이 들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의 질문은 정확했다. 선교 초기에 나는 많은 대학생들과 접촉하고 그들을 가르쳤다. 그것은 나의 사역의 초기에 시작하여 약 10년 정도 지속되었던 일이다. ‘구어바오’ 요원은 말했다.

“우리가 직접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지요?”

나는 당시에는 너무 긴장해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요원은 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나를 알고 있었지만 나를 추방시키지는 않고 있었다고 했다.

‘구어바오’ 요원은 나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말했다. 아마도 내 얼굴이 너무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그는 나에게 커피를 한 잔 달라고 했다. 나는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탔다. 나는 그에게 커피를 진하게 마실 것인지 아니면 연하게 마실 것인지를 물었다. 그는 진하게 마시기를 원했다. 나는 두 젊은 요원들에게도 무엇을 마실 것인지 물었다. 그들은 ‘카이수이’(开水) 라고 해서 그냥 뜨거운 물을 마신다고 했다. 나도 커피 한 잔을 타서 마셨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면서 말을 하니까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것은 조사를 받는 취조실의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라 마치 오랫동안 알던 사람들이 만나서 담소(談笑)를 나누는 것과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구어바오’ 요원은 나에게 조 선생이 하던 일들은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D 지역을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D 지역의 일은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중국에 머물 비자가 필요해서 아는 사람을 통해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 즉 서류상의 회사에 들어가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 회사의 한 사람이 선교사로서 북한에 들어간 것이지 나와 연계 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요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조 선생이 조사를 받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설교한 것 때문이요. 그 외에는 말하지 마시요’

나는 순간 ‘이것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를 하러 온 사람이 나에 대해서 조사를 다 하지 않고 단지 한국인 목사인 내가 중국인들에게 설교한 것만 문제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는 내게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이 누구인지 묻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왜 그러는지? 무엇 때문인지? 는 모르지만 그는 나에 대한 문제를 최소화 시켜 주고 있었다. 그는 조사를 마치고 떠나면서 다시 내게 말했다.

“조 선생님, 다음에 다시 ‘꽁안팅’(公安厅: 경찰청)에 올 텐데 내가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하시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마시오. 내 말 알아들었지요?”

나는 알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한 마디를 더했다. 그는 내게 도망가려면 갈 수 있다고 했다. 그 대신 내가 살아 생전에 중국은 영원히 들어올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나는 그들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중국은 엘리베이터에 카드를 대야만 오르고 내릴 수 있다. 나는 카드를 갖고 나가 엘리베이터 신호기에 대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내 집까지 올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짜이찌엔’(再见) 즉 ‘다시 보자’는 인사를 했다.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는 약간이 공백 시간이 있다. 그것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어딘지 머쓱하다. 그러므로 인사 한 마디 하는 것이 그 짧지만 무지하게 길게 느껴지는 적막함을 느끼지 않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돌아간 지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구어바오’(国保) 요원이 내게 전화를 했다. 그는 월요일 아침 9시에 ‘빤쓰따팅’(办事大厅)이라고 불리는 경찰청 문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계속>

조용선 선교사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GMS)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통한 중국 선교를 계속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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