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극심하게 목말랐던 50대의 삶… 복음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어요”

복음이 실제 된 기쁨을 누리는 김혜신 권사(광교 더사랑의교회)

[218호 / 인터뷰]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화제다. 여기 ‘59년생 김지영’이 있다. 순종적인 아내, 착한 며느리, 성실한 엄마로 살아내려 최선을 다해 살아온 몇 십 년의 세월. 결국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그 ‘순종’과 ‘착함’의 한계에 부딪혀 쓰러져 버렸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과 자아를 추구하며 불완전한 결론을 내린 것과 달리, 김혜신 권사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십자가 죽음 안에서 완전한 자유와 생명을 얻었다.

– 전통적인 가치관 속에서 살았다고 하셨는데, 어떤 배경이 있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대구에서 4대째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어요. 약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24살 이른 나이에 선 본 지 3개월 만에 결혼하고, 서울 생활이 시작됐어요. 어떻게 시댁 어른들을 모셔야 하는지, 어떻게 아이를 낳아 키우고, 어떻게 남편을 대하며 아내로서, 엄마로서, 여자로서 살아야 하는지 잘 몰랐죠. 보고 배운 것은 친정엄마의 청교도적인 삶이었어요. 엄마는 둘째 며느리인데도 큰 며느리 역할을 다 하셨고, 우리에게는 알뜰하게 먹이고 입혀도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웃에게 줄 정도로 열심이 특심이셨어요. 원망스럽고 불만스러웠지만 나도 저렇게 참고 인내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돌아보니 그건 믿음이 아닌 율법의 삶이었어요. 약국을 하며 두 아들을 낳고, 30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나’는 없는 삶이었죠. 어느 순간 숨이 막히면서 50대 초반 극심한 목마름이 찾아왔어요.”

– 어떤 목마름이었나요?

“처음에는 정확하게 몰랐어요. 약국에 갇혀 꼼짝 못하는 삶, 쳇바퀴 도는 듯한 이 삶을 멈추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50세 되던 해, 약국을 접겠다고 했어요. 시어머니도 더 이상 모실 수 없었어요. 형님들과 시누이가 세 분이나 계셨지만 막내인 저희가 30년을 모시면서 나의 열심과 최선의 삶에 한계가 온 거죠. 언제나 ‘네’밖에 할 줄 모르던 제가 더 이상 그러지 않자 그토록 다정했던 남편도, 시댁식구들도 관계가 어려워졌어요. 모두 제 탓을 하며 제가 문제라고 했어요. 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자녀들과의 관계도 나빠졌죠. 저도 모두가 원망스러웠어요. 1년여 남편과 씨름하다 2009년 약국을 닫은 후 6년 정도 어려운 시간을 보냈어요. 착한 며느리, 착한 아내로 살아온 저에게 그러나 그 시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얻을 수 없는 시간이었어요.”

더 이상 율법에 매여 살 수 없는 한계

– 약국을 닫은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 말씀과 기도카드, 기도의 제목들이 가득한 김혜신
권사의 책상(ⓒ 복음기도신문)

“목사님도 만나고 집회도 가보고 무언가 배워도 보고… 내 세계를 살아보려고 애를 정말 많이 썼어요. 진정한 자유는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투자하는 거라고들 했죠. 이제 옷도 좀 사 입고 운동도 하고 나 자신을 찾으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답이 아니었어요. 그때 저는 자아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고 있었어요. 그러다 남편이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서 2014년 관상동맥 우회술(심폐바이패스를 사용하는 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의사인 남편이 수술을 받고 1년 후 정기검사를 했는데 중요 혈관이 막힌 게 확인됐어요. 수술이 실패한 거죠. 언제든지 심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듣고 남편의 죽음이 임박하자 두려움이 닥쳤어요. 하나님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결국 나는 남편을 벗어날 수 없는, 모든 것이 의존되어 있는 존재였어요. 그즈음 주님께서 그동안 쌓아온 삶의 터를 완전히 허물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경기도 광교로 이사하게 하셨어요. 살림도 정리하고, 교회도 옮기시고, 저를 복음 앞에 세우셨어요.”

– 어떻게 복음 앞에 서셨나요?

“예전에 함께 일하던 약사가 복음학교에 다녀와서 권한 적이 있었는데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캄보디아 선교사로 있던 친구가 복음학교를 다녀온 이후 변화한 모습을 봤어요. 목마름으로 인터넷을 찾아 원서를 쓰고 2015년 9월 복음학교에 갔어요. 삶의 끝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 때였고, 복음이 뭔지 듣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어요. 총체적 복음을 듣고, 처음엔 뭔가 충격적인 느낌만 있었지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어요. 내가 죄인이구나… 그 정도만 알아들었죠. 복음학교 이후 바로 기도학교, 선교관학교를 등록하고 매주 조금씩 진리가 알아지면서 주님이 하나씩 제 내면을 깨뜨려 가셨어요.”

– 어떤 깨달음이 있으셨나요?

“그렇게 애를 쓰고 살았는데 결국은 모든 것이 믿음이 아니라 정말 내 열심이라는 것이었어요. 시어머니께도 친정 엄마처럼 정말 그렇게 잘 해드렸다고 자부했는데 그것도 한계에 이르고, 남편도 시댁식구들도 용서가 안 되는 내가 정말 죄인이구나…. 복음학교에서 들은 ‘죄 곧 나, 나 곧 죄’라는 것, ‘생명 안에 죄가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또 들으면서 ‘존재 자체가 죄인이고 내가 복음이 진짜 필요한 자이구나, 십자가를 너무 쉽게 그냥 넘겨 버렸구나.’를 그때 깨달았어요. 그런 신앙 훈련을 받으면서 첫 해외 아웃리치를 가기 전 어머님과 남편, 시댁식구들께 용서를 구하는 은혜를 주셨어요. 그동안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지만 무너지고 또 무너지며 용서가 되지 않았는데, 복음 앞에 서니 모두 내 탓이었어요. 내가 죄인 중에 괴수이고,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정리가 됐어요. 주님이 그렇게 회복의 시간들을 허락해 주셨어요.”

복음의 삶은 애매한 것이 아니었다

– 이후에는 어떤 믿음의 걸음을 걸으셨는지요?

“기도학교의 말씀기도모임에 갔는데 지금까지 내가 하던 기도와 너무 달랐어요. 은혜는 있었는데, 그런데 저는 막상 그렇게 기도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말씀으로 하는 이 기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안 빠지고 열심히 다녔어요. 선교사님들과 교제도 계속하고, 9학기를 연속 섬기면서 오만, 이집트, 파키스탄 등 아웃리치를 5번 갔어요. 해외에서 열리는 복음캠프도 섬기고요. 복음으로 살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 그런 훈련과정이 도움이 되셨나요?

“예전에 정말 영혼의 폭포수 같은 은혜를 구했어요. 설교를 들으면 알겠는데, 말은 화려한데, 그걸 삶에서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어 너무 답답했어요. 그런데 복음 앞에 서니 말씀은 분명하고 명확한 것이었고, 복음으로 사는 것은 애매한 것이 아니었어요. 교제와 나눔, 훈련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죠.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일대일 양육을 맡고 있는데 정말 문제가 많은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에게 “답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잖아.”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게 너무 기뻐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정말 그렇구나.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는데 내가 죄인이라고 인정을 못하니까 잘 몰랐던 거죠. 아니, 알긴 알았는데 지금은 이전에 알았던 그 앎이 아니에요. 복음 앞에 서기 전에도 제자훈련을 받고 일 년에 성경을 4~5독을 할 정도로 열심이었어요. 그러나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복음 앞에 선 이후였어요. 그 전에는 교리로, 지식으로는 알았지만 진짜 앎이 아니니까 살아지지 않았어요. 복음으로 안 되는 나를 수치심에 감추고, 큐티를 하면서도 ‘오늘 나는 뭘 고쳐야 하지?’ 그 수준이었어요. 이제는 나로서는 안 되는 것을 복음 앞에서 인정해요. 사랑하려고 애쓰는 자가 아니라 못하는 존재니까 본질상 죄인이고, 내게 예수님이 필요한 자임을 인정하는 것이죠. 이전에 살아오던 ‘율법주의’와 지금 ‘말씀을 행하며 사는 삶’은 보이는 모양은 같을지라도 분명한 변화가 제 안에 있어요.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이면 충분해요. 이게 정말 자유함이에요.”

– 구체적인 경험을 나눠주실 수 있나요?

▶ 교회의 북한 선교부(제공: 김혜신)

“복음학교를 마친 직후 기도학교에 다닐 때 한 병원에서 약사 명의만 걸어놓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불법인 것을 깨달아 거절하게 하시고, 말씀대로 사는 게 뭔지 한 걸음 한 걸음 배우게 하셨어요. 또 섬기는 교회에서 지난 여름부터 북한 선교부를 맡고 있는데, 이번에 아웃리치 사역을 준비하면서 일도 못하면서 뭔가 이끌고 싶고 통솔하고 싶은 마음을 비춰주셨어요. 참여하지 않겠다는 분부터 팀이 나누어지는 것까지 정말 놀랍게도 하나님이 연합하게 하시는데, 그것을 내 공로로 삼으려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셨어요. 복음을 말하면서도 실제 관계 안에서 어떤 삶이 나타나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나만 십자가에서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으면 되는 것을 깨닫게 하셨어요. 북한에 대한 마음을 품는 게 문제가 아니고, 내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모임에서 실제 돼야 하는구나, 그게 복음이구나…. 정말 절망이었고, 주님 아니면 안 되겠다는 고백을 드리게 하셨어요.”

지식과 교리를 넘어 진짜 앎으로

– 가족관계의 회복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내가 변하니까 남편이 정말 복음 앞에 계속 반응하고 변하더군요. 남편이 ‘내가 알고 있는 게 복음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고백도 하고요. 저도 이전에는 교과서적으로 남편에게 잘했던 아내였다면, 요즘은 에베소서 말씀처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로 남편을 알게 됐어요. “당신이 말하면 난 무조건 OK야.”라고 해요. 남편에게 실제로 순종하는 관계일 때 하나님과의 관계도 실제니까요. 복음을 만나기 이전에도 저는 순종밖에 없었으니 싸운 적이 없었지만, 모습은 그때와 지금이 같을지라도 지금이 진짜에요. 오랫동안 시어머님을 모셨고 결혼 초에도 남편이 군의관이어서 신혼이 없었다는 섭섭함이 있었는데, 저는 지금 신혼을 사는 것 같아요.”

–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 남편과 함께(제공: 김혜신)

“어려운 속 얘기를 잘 안하는 남편이 교회 구역모임에서 자신의 병에 대한 마음을 나누는 것을 들었어요. 저는 그 병이 남편에게 그토록 큰 두려움과 절망인지 몰랐어요. 남편이 새벽기도를 가며 주님 밖에 없다고, 하나님이 나의 ‘바이패스’(심폐바이패스)라는 고백을 할 때마다, 주님이 남편을 갑자기 데려가면 하나님이 나의 바이패스가 될 수 있을까? 모든 상황을 아멘으로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 남편과의 관계가 또 나의 우상이 될 수 있겠다, 깨어있어야겠다 생각하죠. 거기까지 이루어 주시길 기도해요. 또 두 아들의 가정과 남편, 온 가족이 복음의 증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복음을 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복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저도 그렇게 안다고 말은 했지만 살지는 못하면서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진짜 가족들이 복음으로 달리는 걸 보고 싶어요.” [복음기도신문]

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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