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호 / 믿음의 삶]
“선생님 제가 주님의 은혜로 약을 끊었어요.” “글쎄요, 환자분은 지금 굉장한 조증 상태에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럼 이렇게 기적적으로 약을 끊을 수는 없는 건가요?” “네, 그런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면 절대 안되고요.”
하루에 스무알 가까이 먹던 우울증 약이었다. 6년 반만의 일이다. 십 년 이상을 기독교 극단의 리더로 있었던 나는 늘 작품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지 못해서 세상 연극에 눈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주님이 내 삶의 전부라고 고백하며 난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사모한다고, 그래서 세상의 그 어떤 작품보다 난 내가 하는 하나님의 연극이 좋다고 단원들에게 매일 주입하듯 얘기했다. 하지만 마음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었던 나의 욕망들은 세상의 것을 더 알아야 하나님의 것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거짓으로 포장하고, 스스로를 하나님이 아닌 세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연습이 진행될수록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오물과 같이 더러운 일인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영혼이 고통스러운지를 알아갈 때쯤, 공연 전날 연출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연기 지도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진 성추행.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그 길로 그곳을 뛰쳐나왔지만 다음 날부터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 진단명은 조울증과 공황장애였다. 이렇게 시작된 병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매일 알 수 없는 공포와 통곡이 찾아왔고, 아무도 만날 수도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수시로 자살에 대한 유혹이 찾아왔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과 두려움으로 긴 침대 생활이 이어지곤 했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폐쇄 병동에 여러 번 입원했고, 툭 하면 찾아오는 공황 마비로 수시로 응급실로 실려 가곤 했다. 너무나 긴 시간 동안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서 난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모든 것이 나의 교만함과 믿음 없음을 알게 하신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을 드리기보다 그냥 약에 의존하며 병에 기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약에 찌들어 있던 나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이렇게 무너져 있는 건 병 때문이야, 어쩔 수 없잖아.’라며 그 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 지인의 오랜 권유로 찾아간 집회에서 주님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너무도 오랜만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고백하고 있었다. ‘나는 주의 자녀입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탄의 머리를 밟고 승리의 깃발을 흔들고 있는 나의 모습과 그 옆에 서 계신 주님을 깨닫게 하셨다. 주님 안에 거하는 순간 나의 기도는 바뀌기 시작했다. ‘주님, 병이 평생 낫지 않아도 좋습니다. 주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평생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완전한 안식과 평안은 오로지 내 주, 예수 안에 거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그리고 보너스로 이 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의사는 아직도 믿지 못한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내 주님은 그렇게 하신다. 온전히 주님만이 드러나시게, 주님이 하셨음을 완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하셨다. 이제는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스스로 눈을 뜨고, 약에 취하지 않고 온전한 정신과 육체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나게 감사한 날이다. 오늘도 시편 23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신경혜 단장(극단 비유)
<저작권자 ⓒ 내 손 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
문의:
[관련기사]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인정하게 됐다
병상에 계시던 외할아버지, 마침내 주님을 만나고 소천하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조차 하나님의 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