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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건져 주신 주님이 북한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어요”

복음통일을 기도하는 유소망 목사(가정교회)

[216호 / 인터뷰]

유소망 목사는 작은 화분을 많이 키우고 있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꽃을 좋아했는데 한국에 와서는 집에 있을 시간이 없어서 화분 하나 키울 겨를도 없이 살다가, 지난 해 수술 후 요양하는 덕분에 1년 동안 모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꽃을 보며 하나님과 한참 대화했다. ‘하나님, 이 꽃을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키우셨어요? 예쁘네요. 하나님이 피워주시는 아름다움이니까 마음껏 자랑해라.’

이곳에서 천국가기 전에 천국생활을 맛보게 해주셔서 너무 행복하다는 유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정말 우연히 오게 됐어요.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도 있었어요. 한국은 쉴 새 없이 데모하고 불편한 곳인 줄 알았어요. 그때는 나 살겠다고 어디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세상 살기가 힘들어서 여러 번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어요. 그래서 두만강에 뛰어들었는데 중국으로 떠내려 오던 나를 누가 구해줘서 살게 됐어요. 살고 나니 기가 막혔죠. 그래서 흑룡강 쪽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북한 아이들을 도와주자 싶어서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돈 좀 보내달라고. 그랬더니 절대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한국에 와야 된다고, 중국은 안전하지 않다고요. 한국에서 브로커를 보내줘서 이 땅에 오게 됐어요.”

끊으려던 목숨을 구해줘 살아났다

– 한국에서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여기 와서도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내 목적은 죽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때는 예수님도 몰랐어요. 외로워서 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예수님은 믿지 않았어요.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니 위로나 받자고 했는데 그러다 예수님을 만났어요. 하나님이 내 목숨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래서 자살할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믿음은 여전히 약했어요.”

– 목사님이 되신걸 보니 믿음이 자라는 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어느 날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한 선교단체에서 전화를 걸어왔어요. 수련회에 오라더군요. 감사하게도 그곳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만났어요. 이어서 선교훈련도 받고 선교사로 헌신했어요. 결국 물에서 저를 건져 주신 주님이 그곳에서 통일이 되면 북한에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지금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그때 ‘내가 너를 대사로 불렀다.’고 하셨어요. 그땐 대사가 뭔지도 모르고 웃었어요. 믿음이 없으니까요. 한번은 금요철야예배를 드리고 통성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오신 강사 목사님이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해 주셨어요. 영어로 기도해서 일단 기도를 받았죠. 통역하는 분이 설명해 주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빛을 비추면서 ‘내가 저 사람을 북한 대사로 불렀다.’고 인사를 하라는 마음을 주셨대요. 목사님은 내게 와서 큰절을 하셨다고 해요. 저는 눈을 감고 있어서 몰랐죠. 그때 제 나이 64세였는데 ‘목사님이 왜 내게 큰절을 하나?’하며 우습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도를 하는데 ‘내가 주님에게 받은 마음이 진짜구나.’ 깨닫게 되면서 그때 제 인생을 주님께 드렸어요.”

– 주님이 강력하게 불러 주셨군요.

“이제는 죽기 살기로 하나님 일을 하기로 했어요. 그 선교단체의 간사로 섬기면서 신학교에 다녔어요. 그때는 하루에 1시간 자면 잘 잔 편이었죠. 그렇게 6년 동안 그 단체에서 살면서 공부했어요. 그러다 네덜란드에 가라는 마음을 주셔서 영어를 모르는데도 갔어요.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가보니 이곳은 탈북민들이 오면 안 될 곳이었어요. 브로커들이 자기들도 정착을 못한 땅에 탈북민들을 오게 한 것이었죠. 탈북민들이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빚더미에 앉아요. 이런 사정도 모르고 이곳에 오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제가 한국으로 돌아와 네덜란드 상황을 알렸어요. 한국보다 좋은 곳이 없다고요. 그때 네덜란드 가는 게 중지됐어요.”

수련회에서 예수님 만나다

– 다행이네요. 주님이 탈북민들을 지켜 주셨군요.

“2013년도에는 주님이 김포에 탈북민 교회를 허락해 주셨어요. 아시는 분이 교회하라고 건물을 내주셨어요. 그렇게 많은 탈북민들을 도왔어요. 그러다 그해 딸에게 연락이 왔어요. 암에 걸렸던 딸이 다 나았다고요. 어떻게 나았냐고 물어보니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손을 대고 ‘감사합니다’ 기도하는데 하루 자고 일어났더니 깨끗하게 나았다는 거예요. 사실 네덜란드 가기 전에 딸의 암소식을 듣고 기도했어요. ‘하나님, 나도 어머니입니다. 낫게 해주세요.’ 그러고 순종하고 네덜란드로 간 것이었는데, 주님이 낫게 해주신 것이었어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순종의 걸음이셨네요.

“2014년에는 중국에서 선교하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중국 상황은 살벌해요. 그래도 순종해야죠. ‘내 목숨 하나님한테 바칩니다. 죽어도 천국이니까. 이 땅에서 쓰겠다면 지켜 주시고 데려가시려면 아무 때나 데려가셔도 된다.’고 기도하고 갔어요. 보통 탈북민들은 중국에서 조선족인 것처럼 거짓말하면서 살아요. 아파도 병원에도 못가죠. 교통사고가 나서 다쳤는데도 사람들이 몰려오면 자신이 탈북민인 게 들통 나기 때문에 아픈데도 일어나서 도망을 가요. 그 몸으로 또 일을 하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요. 우리를 지켜 주시는 아버지가 계신다. 그러면 누구도 믿을 구석이 없으니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요. 몇 달씩 공부시켜서 한국에 데려오는데, 한국에 오면 잘 믿지 않아요.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복음을 받아들였으니 몇 달 후, 몇 년 후에는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한참 실망을 했는데 지금은 기뻐요. 빛은 역시 빛이구나 깨닫게 되죠.”

한국에 와서 정말 북한을 위해 기도해요

– 중국에는 탈북민들이 많죠? 상황은 어떤가요?

“중국에 오는 북한사람들은 대게 돈을 벌어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돈이라도 쥐어 줘요. 북한에서는 모여 기도도, 예배도 못 드리지만 마음 속에는 주님이 계시죠. 몇 년 후에 한국에 온 사람들을 만나보면 힘들 때마다 기도했다고 해요. 그러다 한국에 오게 되면 가족에게 돈을 보내주게 돼죠. 중국에선 기적도 많이 일어나요. 한번은 어떤 분에게 탈북하려던 자기 아들에게서 연락이 없다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어요. 우리가 기도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탈북 경로를 아니까 국경에서 돌아갔다면 언제쯤 도착할지 시간을 계산해서 그분이 오늘밤에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어요. 주님께 그렇게 응답해 주시도록 믿고 기도했어요. ‘가던 길을 돌아오게 해주세요.’ 그런데 내가 기도한 것과 똑같이 주님이 응답해 주셨어요. 이모가 말한 대로 그렇게 돌아왔다고요. 사람들은 저를 이모, 엄마, 언니 등으로 불러요. 북한에서 한 사람의 증인만 있으며,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안 믿을 수 없도록 역사하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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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이 말씀하시는대로 순종하는 유소망 목사(ⓒ복음기도신문)

– 그 이후엔 어떤 걸음을 걸으셨죠?

“중국에서 나와 주님이 서울에 또 교회를 허락해 주셨어요. 탈북민을 위한 교회를 세우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단 한 명이라도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세우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에 순종했어요. 그러다 교회를 개척하고 싶어 하는 탈북민이 있어 그분에게 넘기고 나는 가정교회로 들어왔어요. 지금은 한 명을 섬기고 있어요.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과 같은 상황이 됐죠. 그분은 전라도에서 일을 하다가도 토요일에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무조건 올라와요. 지금은 선교사가 됐어요. 한 명만 주님 앞에 똑바로 세워도 주님이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하는 거니까요.”

– 근데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좀 어떠신가요?

“작년 12월에 러시아에 갔다가 위천공과 장출혈이 생겨 쓰려졌어요. 러시아 의사들이 못 살린다고 하는 걸 기도하면서 ‘죽어도 천국이니까.’하며 6시간 수술을 하고 24시간 만에 깨어났어요. 그때 꿈을 꿨는데 천국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천국에 들여놓지 않으셨어요. 그러고 잠에서 깼죠. 수술 8일 만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와서 입원했어요. 그때부터 2개월을 절식하고 올해 3월에 퇴원했어요. 한동안은 물 한모금도 못 먹었는데 5월부터는 죽도 먹게 됐죠. 그렇게 회복되는 기간 동안 주님이 주신 안식을 누렸어요. 그러면서 복음학교도 가게 됐고요. 제가 신학공부를 하면서 얼마나 복음 앞에 바로 섰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 복음 앞에 바로 서 있었구나 확인하게 됐어요. 계속 훈련을 받고 싶어서 중보기도학교에 가게 됐는데 다시 췌장염이 생겨 지금은 나가지 못하고 있어요.”

– 또 안 좋으셨군요. 근데 아까 자녀분들이 북한에 계시다고 하셨는데 안전하게 지내고 계시나요?

“네, 잘 있었어요. 어느 날 지인이 저에게 가족을 한국에 데리고 오자고 했죠. 그때는 300만 원이면 데리고 올 수 있었어요. 내가 바라던 일이었죠. 그런데 순간 ‘주님께 기도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주일을 기도해 보기로 했는데 주님이 아니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데려오지 못하고 하나님께 맡겼어요. 아이들은 지금 잘 있다고 해요. 어디에 있건 이제 주님께 맡겨요.”

– 너무 감사하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은 분이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늘 ‘사람은 마음을 곱게 먹어야 된다. 푸른 하늘이 내려다본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머니는 남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하면 남을 섬겨야 한다고 하셨어요. 지금 보니 모두 성경에 있는 말씀이었어요. 동네사람들은 우리 어머니를 이상하다고 했어요. 감자를 이웃에게 나눠줄 때 좋은 것들을 나눠주고 자신은 안 좋은 감자를 먹었거든요. 또 어머니는 가끔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계셨어요. 제가 누워서 자라고 하면 ‘안 잔다. 생각한다.’고 하셨죠. 기도를 하신 것이었죠.”

– 북한의 상황을 소개해주세요.

“북한 이야기는 잘 안 해요. 가슴만 아프거든요. 우리 집에 와서 밥 좀 달라고 해서 밥을 먹고 돌아간 아이가 이틀 후에 나가보면 죽어 있어요. 한술씩 빌어먹던 사람들이 얼마 안 있으면 죽어요. 여름에는 썩으니까 시체를 빨리 치우는데 겨울에는 며칠씩 두죠. 저도 1년 동안은 풀만 먹고 살았어요. 풀만 먹으니 눈물이 나지요. 그런데 지금 보면 풀에 약성분이 있었는지 아픈 것들이 낫기도 했어요. 그러나 사회에 대한 반항심은 컸어요. ‘앞으로 살아봐야 뻔하다.’ 싶어서 나이 60이 넘었으니 죽자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어요. 지금은 너무 행복하죠. 하나님을 만난 게 제 일생에 최대의 행복이에요. 이제 내가 74세인데 주님이 수술을 시켜주셔서 성전 청소도 깨끗하게 하셨으니 하나님 마음대로 쓰셨으면 좋겠어요.”

북한 이야기하려면 너무 가슴 아파요

– 아직도 마음은 청년이시네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제가 요즘은 진통제를 먹으면서 청와대 앞에 나가요. 가서 기도해요. 낮에는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앉아있기가 힘들어서 해가 지면 나가서 밤새 기도하고 돌아와요. 이 나라가 반듯해질 때까지 계속 기도할 거예요. 사실 내가 거기 안 나가도 되거든요. 아들도 외국에 있고 한국 상황이 어려워지면 거기 가서 편하게 살면 되잖아요. 근데 우리 조국이잖아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 있으니까 여기 있는 거예요. 그런데 청와대 앞에 나가보면 계속 안 나갈 수 없어요. 이 나라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집에 있다고 해서 편한 게 아니에요. 비록 몸은 힘들어도 거기에 있으면 마음은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그러면 이게 하나님 원하시는 거구나 생각해요. 주님이 내게 새로운 생명을 주셔서 살고 있는데 이 때를 위해서 살게 된 것 아니겠나 하면서 주님 뜻대로 쓰시라고 기도하죠.”

– 청와대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나요?

“그럼요. 낮에는 한 3000명, 밤에는 한 1000명 정도 있는 것 같아요. 그곳에 나가면 이것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누가 조직한 것도 아니에요. 사람들이 일 끝나고 10시에 와서 새벽 5시면 거기서 출근을 해요. 물론 와서 얼마 기도 못하고 자지요. 기도하는 사람들도 큰 소리로 기도하지는 못해요. 그들이 자고 출근해야 되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거기에 와서 자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인 것이죠.”

– 그렇군요. 많이 나오시는군요.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후회했어요. 제가 오자마자 광우병 사태가 있었어요. 그걸 보고 ‘대한민국이 잘못 가고 있네? 이건 북한에서 하는 건데? 북한 지하공작원들이 와서 하는 것이나 다름없네? 괜히 왔네.’라고 생각했어요. 통탄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 시위할 때 유모차 끌고 나와서 하면 돈을 주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렇게 까지 무식한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청와대 앞에서 일어난 일들은 하나님이 하신 거예요. 처음 5일 동안은 울음판이었어요. 니느웨 기도처럼 회개하는 기도가 이어졌어요. 저도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대한민국 위해 더 기도를 많이 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이방인처럼 생각하고 기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회개 기도를 했어요.”

청와대 앞에서 회개기도하고 있어요

– 그렇군요. 나라를 위해 회개를 하고 계시군요.

“저는 하나님이 북한 사람들을 이곳에 데려왔다고 생각해요. 저부터도 안 온다고 하는 것을 데려왔으니까요. 한국 사람들은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기도가 절실하게 나오지는 않죠.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탈북민들을 통해 북한에 대한 실정을 듣게 하신 것 같아요. 북한을 아니까 눈물의 기도가 나오잖아요. 한국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탈북민들을 데려오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을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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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초를 기르며 하나님께서 피워주시는
아름다움을 찬양하다.(ⓒ복음기도신문)

“북한과 복음으로 통일 되는 것이에요. 그 일을 위해 주님이 부르시는 곳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세요. 의사들도 살지 못한다고 했던 목숨을 하나님이 살리셨으니 하나님 나라 위해 마지막까지 쓰임 받다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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