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호 / 2019 다시복음앞에 – 지상중계(5)]
한국 사회의 타락과 교회의 세속화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이때, 다시 복음 앞에 서기를 결단하는 2019 다시복음앞에 대회가 지난달 31일 선한목자교회에서 열렸다. 일일 금식기도성회로 열린 이번 대회는 ‘십자가 복음’을 주제로 다양한 강사와 강의 이후 기도회로 이어져 회개와 결단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선포된 믿음의 고백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
창세기 3장 15절을 우리는 흔히 원형복음, 또는 최초의 복음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그 순간부터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아들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이 세상을 구원하실 계획을 아담과 하와에게 처음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로 인해 타락해서 무지해진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오직 십자가, 그리고 당신이 준비하신 아들 예수에게 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시해 주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쫒아내시면서 그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주셨다. 인간이 죄를 짓고 나서 옷을 만들어 입었지만 그것으로는 죄를 가릴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고 아담과 하와는 그렇게 소원하던 죄가 가리어졌다.
창세기 4장부터 본격적으로 십자가 복음이 계시된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얘기해 줬을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신다. 만나려면 생명이 죽어야 한다.’ 그렇게 아벨은 희생을 감수하고 피의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창세기 3장 15절에서 예언해 주신 십자가 사건을 점진적으로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계시하신 언약을 온전히 이루어주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목적은 ‘너희로 하여금 사흘 길 광야 길을 걸어가서 제사를 지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살았던 430년 동안 잃어버렸던 하나님에 대한 제사를 다시 회복하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 제사에 가장 기본은 번제이고, 그 번제는 다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시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유월절로 이어진다. 여기에서는 한 마리의 양이 희생 되어서 한 가족을 구원한다. 구속의 범위가 한 사람에서 한 가족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레위기 16장에 나오는 대속죄일을 통해 이스라엘의 모든 생명의 속죄를 이룬다. 대제사장이 자기를 먼저 정결케 하고 염소 두 마리를 취해서 한 마리는 아사셀로 정해 광야로 보내고 또 한 마리는 죽여서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간다. 이제 구속의 범위가 한 민족으로 확대되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장 29절, 요한일서 2장 2절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신 어린 양은 세상의 죄를 구속하시는 양이신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이것은 대구(對句)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십자가를 이야기하면서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십자가를 통한 회복이다. 이는 전인적인 회복이다. 주님의 몸이 그렇게 상하신 이유는 죄를 짓게 하는 경향성, 그 죄의 깊은 뿌리를 뽑기 위해서이다. 십자가는 날마다 짓는 우리의 죄를 용서할뿐더러 죄를 짓도록 만드는 뿌리까지 뽑아내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십자가는 다 끝난 십자가가 아니라 매일 나가야 되는 십자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했다. 이 평화는 구약의 ‘샬롬’, 신약의 ‘에이레네’다. ‘샬롬’은 완전한 상태, 하나님 나라의 질서다.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 에덴동산에 누렸을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샬롬이다. 샬롬은 우리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근본적인 회복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평안이다. 세상의 지위가 평화를 주는 게 아니다. 초대교인들은 돈도 없고 사회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평안이 있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평안이 초대교인들처럼 드러날 수만 있다면 교회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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