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호 / 월드포커스]
기도하러 가려고 일어날 때쯤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방안의 한기가 내게 광장으로 가는 길은 몹시 추울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불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었지만, “우크라이나 친구들이 5년 동안 매일 기도하는 동안, 나는 겨우 3일밖에 하지 않았잖아!”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호텔을 나와 얼어붙은 얼음더미와 깊은 진흙 웅덩이 길로 다니며 바람을 피해 고개를 숙인 뒤 스카프를 조금 더 단단하게 감싸고 새벽빛의 하르코프 자유광장으로 걸어갔다. 영하 3도에 불과했지만, 눈이 내리고 매서운 바람이 얼굴에 몰아쳤다. 하지만,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기도용사들의 커다란 미소와 따뜻한 악수, 그리고 볼에 입맞춤을 받으며 나는 광장에 도착했다. 그 전염성 있는 기쁨은 내 마음부터 따뜻하게 해주었고, 내가 이 자리에 온 것을 기쁘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눈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이 이 사람들을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는 자리로 나가게 만들었을까? 따뜻한 침대에서 기도할 수 있었을 텐데도 이 추운 날에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72년의 공산당 통치기간 교회 폐쇄의 아픈 기억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동북부에 있는 하르코프 거리에 탱크로 거리를 장악하고 총을 들고 마스크를 쓴 무리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모든 것을 격변으로 몰아넣고 공산주의 이후 누려온 23년간의 종교적 자유를 위협했다. 루간스크와 도네츠크의 인근 도시들도 분리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으나, 하르코프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몰랐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실제 전투에 맞서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일 아침 7시에 이 광장에서 영적 전투를 위해 기도할 것을 촉구했다. 일주일 만에 150~200여 명의 신자들이 공산주의 아래 그들의 땅을 가린 영적 어두움을 무찌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싸웠다. 이것은 정치적 싸움이 아니었고, 예배의 자유를 위한 전투였다. 즉,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 만나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믿음을 나누는 자유가 모두 위협받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영적 싸움이었다.
이 세대의 아버지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임을 당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공산주의라는 진짜 얼굴을 알고 있는 우리 앞에 그것이 다시 돌아오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릎을 꿇었다. “주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당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주님, 유일한 희망은 주님뿐입니다.” 침례교단에 속한 V목사가 기도했다.
72년 공산당 통치 기간 동안 복음주의 교회는 폐쇄됐다. 성경을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지하에서 강제로 끌려 나와 심한 박해를 받았다. 두 세대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하나님이 없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상황은 특히 더 악화됐다. 침례교도와 구소련 내 다른 개신교 신자들은 강제적으로 정신병원에 보내졌고, 긴 재판과 투옥을 견뎌야 했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부모의 권리마저 박탈당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의 기도와 신앙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그 이후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의 성경 벨트가 되었다. 구소련 전역에 걸쳐 복음주의 생활의 중심지로, 새로운 교회로 나아가고 선교사를 파송하게 됐다.
동유럽의 성경벨트가 되어가는 우크라이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현재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너무 잘 기억하고 있는 적대적인 태도를 복음주의자들에게 보이고 있다. 분리주의자들이 2014년 점령한 이후, 복음주의 교회는 폐쇄되고 점령 지역의 주요 도시에서 벌금을 부과 받았다.
우크라이나 형제, 자매들은 기도를 쉬지 않는다. 그들은 성령님이 사람들의 마음에 회개의 영을 불어넣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실 때 전쟁 지역의 한복판에서 평화가 올 것임을 확신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인들이 날씨가 어떠하든 무릎을 꿇고 매일 기도하는 이유다. V목사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위기인지 잘 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조국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음을 회개했다”
우크라이나 교회의 신실한 기도용사들이 보이고 있는 순종을 보며, 전 세계 교회는 교훈을 얻었다. 위기의 때에 성도가 무엇을 해야 할지 우크라이나 성도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모았다.
첫째, 회개부터 시작하라.
2014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주요 건물, 공항, 군사기지를 점령했다.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우크라이나 교회는 이 사건이 하나님이 그들을 깨우는 부르심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조국과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음을 자책했다(딤전 2:1~3). 공산주의로부터 벗어난 이후 23년 동안, 신앙에 대한 열정은 식어 갔고 교회는 금세 안일해졌다.
“우리가 광장에서 기도를 시작했을 때, 나는 대통령이나 정부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개해야 했습니다. 성경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도자들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어요.”라고 하르코프의 한 목사님의 아내이자 내게 통역으로 도와준 나디아가 말했다. 이제 그들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좋든 싫든 그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둘째, 평화로울 때 기도하라.
하르코프에서 폭력의 즉각적인 위협이 지나갔지만, 20명 정도 헌신적인 그룹이 지속적으로 만나며 신실하게 기도하고 있다. 5년 전 일어난 사건을 통해 위험의 위협과 평화가 얼마나 특권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들은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안전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뿐 아니라 교회와 거리에서 부흥을 위해 기도하며, 모든 우크라이나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셋째, 사회적 또는 정치적 압력이 멈추도록 기도하라.
이들은 2014년 기도 모임이 시작되자 기도 모임을 해산하거나 감옥에 가야 한다고 위협하는 경찰뿐만 아니라 군인으로부터 폭력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광장에서 기도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우리는 우리가 구타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두려웠어요.”라고 신실한 기도의 사람이자 정교회 신자인 니나가 말했다. 두려움은 상상되지 않았다. 격렬한 전투 현장인 노테츠크에는 기도 장막이 설치되었고, 기도 모임 지도자는 구타당하고 입원하였으나 결국 사망했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서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라고 매일 아침 5시 30분에 광장으로 기도하러 나가는 80세의 이반은 말했다.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으면 큰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주셨습니다.”
넷째, 모든 성도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을 찾으라.
이 기도 모임의 창립 멤버 중 두 명은 정교회 사제와 침례교 목사인 V이다. 전쟁의 두려움은 모든 교단과 교파의 성도들을 새롭고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로 모이게 했다.
V목사는 “기도하는 친구들이 그들의 세계를 넓히고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일을 보도록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누구도 새롭게 기도 모임에 나온 기도자에게 그들의 교회가 어느 교파나 교단에 속했는지 묻지 않는다. 모두 환영한다. 니나는 “교회가 서로 모였고, 기독교인들이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광장에서 교회가 하나가 되었다.”고 말했다.
다섯째, 기도 안에서 교제하라.
광장으로 오는 긴 여정과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매일 함께 모이는 사람들은 이제 중보기도를 통한 격려와 교제를 누리고 있다. 기도 모임 안에서 활짝 웃고 포옹하고 웃는 모습은 그 기쁨이 불편함보다 더 크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V목사는 이러한 모습이 환영받는 일상이 되었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성령 안에서 그들이 더 강건해지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날씨가 어떻든 간에, 기도하고 형제, 자매들과 교제한 후에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나는 믿음의 날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뿐이에요.”라고 이반은 말했다.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일어나려고 하면 발가락이 약간 저리고 솔직히 말하면 얼어버린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러한 기도용사의 증인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감사와 따뜻함이 넘쳐서 발가락이 얼어버린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복음기도신문]
니콜 레이(IMB 작가)
출처: IMB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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