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호 / 인터뷰]
김포의 한 유치원 마당에서 취재진을 맞으러 나온 박동하 목사를 만났다. 여기가 집이냐고 묻자 유치원 안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했다. 작년 말, M국으로 떠나기 위해 6년간 몸담았던 기독대안학교를 떠나며 지소영 사모는 종무식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우리가 여기서 헤어지면 이 땅에서 다시 못 만나는 분들도 있겠죠? 그러나 천국에선 꼭 만나야 하니까 모두 믿음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학교를 떠나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해진 것이 없지만 인도하심을 믿고 있어요. 기도해주세요.” 그 기도에 주님은 응답하셨고 그렇게 오게 된 곳이 게스트하우스였다고…. 두 사람의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 M국 선교를 준비하신다고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박동하 목사(이하 박): “신학교 때, 친구에게 M국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그때 제 마음에 그 나라가 씨앗처럼 심겨진 것 같아요.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잊고 있었는데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하면서 M국과 다시 연결이 되었습니다.”
– 어떻게요?
박: “한국에서 일하는 M국 분들이 교회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현지어 예배가 시작됐고 그 부서를 맡으면서 매년 국제심방이라는 이름으로 그 나라에 가게 되었어요. 오랫동안 고향에 못가고,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분들의 이야기는 참 안타까웠어요. 그땐 한국에 있는 그 나라 분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 그 땅에 가서 그 가족들에게 보여주면 눈물바다가 되곤 했죠. 그런 일을 하면서 M국에 대한 마음이 깊어졌습니다.”
신학교 때 들은 그 나라가 마음에 심겨지다
– M국 상황은 어땠나요?
박: “복음이 들어간 이후 교회는 급성장했지만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어요.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이단적인 요소들과 섞이면서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숫자적인 감소도 심각했어요.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선진국 교회의 형식적인 모습만 배워온 거였어요. 손을 들고 찬양하고, 예배도 하지만 정작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는 못했죠. 그래서 그 땅의 다음세대를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구체적인 비전을 발견하신 거군요.
박: “2010년 M국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는데 그때 건강에 문제가 생겼어요. 몸에 마비가 와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어요. 어쩔 수 없이 파송을 미루고 다음 해에 다시 들어갈 준비를 하는데 2011년 갑상선암, 2012년엔 방광암이 발견됐죠. 그때 병원 옥상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아니라면 모든 사역을 내려놓겠다고요.”
– 힘든 시간이었겠어요.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지소영 사모(이하 지): “9년간 섬기던 교회를 사임했고 다른 대책은 없었어요. 당시 아들이 기독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주님은 저희 가족을 그곳으로 부르셨어요. 거기서 남편은 파트로, 저는 풀타임 교사로 일했어요. 계획에 없던 삶이 시작된 거죠. 그때 영적인 갈급함이 느껴져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느헤미야처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도 만들고, 복음기도신문도 나눠주고, 주중에는 기숙사 창고에서 학생들과 말씀을 읽으며 다음세대를 위해, 열방을 위해 기도했어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기도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선교사 파송을 앞두고 육체적 질병이 붙잡다
– 철저하게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훈련을 하는 시간이었군요?
박: “결과적으론 그런 시간이었죠. 저는 건강을 잃은 후 무덤에 내려간 자처럼 7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주님을 만났어요. 워룸(기도실을 워룸으로 명명한 기독영화 ‘워룸’을 보고 붙인 이름)에 들어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님의 마음을 깊이 묵상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선 말씀 앞에 엎드리는 물리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저도 깨닫게 됐죠.”
– 그 땅을 섬기면서 위기도 있으셨다면서요?
– 어떻게 하면 그 땅을 향한 마음이 그렇게 변함없을 수 있을까요?
지: “남편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처음 해본 것 같아요. 저희가 갖고 있던 모든 재정을 그곳에 고아원을 짓기 위해 헌금했는데 문제가 생긴 거죠. 그때 이렇게 기도했어요. 첫째는 돈을 잃어버리지 않게, 두 번째는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달라고요. 며칠 지나자 기도가 바뀌더군요. 다 잃어버려도 주님의 마음은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세요. 남편은 재정과 관련된 사람조차 용서하고 품는 것이 선교라고 했어요. 우리가 포기하고 싶은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짜 선교라는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부어진 것 같네요.
박: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잖아요. 변함없이… 작년 가을 아내가 허리디스크 파열로 수술하게 됐을 때 마음이 많이 무거웠어요. 왜 그 땅에 가려고 할 때마다 이런 일이 발생할까. 그래서 기도했어요. 우리가 M국에 꼭 가야한다면 분명한 확증을 보여주시라고요. 워룸에 들어가 엎드렸는데 주님이 제 마음에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너, 그 사람들 사랑하니?” 주저함 없이 대답했죠. “예, 사랑합니다.” 그랬더니 다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그 사랑에 변함이 없니?” “예, 변함없습니다.” 저의 명확한 대답에 주님이 이런 결론을 주시더군요. 그들을 사랑하는 너의 마음이 변함없는데 더 이상 무슨 확증이 필요하냐고….”
지: “학교 사임을 앞두고, 어디로 가야 할지 기도하고 있을 때 한국선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교회에서 남편에게 수석부목사로 와달라는 청빙이 들어왔어요. 정말 가고 싶었던 교회였는데 그곳에서 두 번이나 연락을 주셨어요. 남편이 거절을 하니까 그럼 부목사로 3년만 섬기면 M국으로 파송해 주겠다는 제안도 하셨어요. 그런데도 정중하게 거절하더라고요. 저는 애가 탔어요. 좋은 제안인데 왜 안가냐고, 그동안 존재감 없던 당신을 주님이 이제는 불러내어 쓰시려 하는데 왜 거절하냐고 했더니 남편이 이런 말을 했어요. 큰 교회에서 일하는 것으로, 누군가 불러주는 것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는 나는 주님과 함께 오래전에 죽었다고,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존재감을 찾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 교회에 가게 되면 그 땅에 못 가게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저희는 거처도, 파송교회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학교를 사임하게 되었죠.”
–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셨나요?
지: “작년 12월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그날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종무식 마치고 저희 학교 중국어선생님이 학부모님 한 분과 전화연결을 해주셨어요. 30년간 유치원을 운영하신 분인데 유치원을 지을 때마다 한 층을 선교사 게스트하우스로 하나님 앞에 드렸다고 하는 거예요.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 앞가림 다하고, 빚도 모두 갚고, 형편 좋아진 후에 하나님 일하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내가 먼저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은 나의 일을 해결하시더라고 고백하셨어요. 저희가 이사 오는 날도 엄청 추웠는데 원장님 부부가 이삿짐을 날라주시고, 식사준비까지 다 해두신 걸 보면서 그때 진정한 섬김의 정신을 배우게 됐어요. 그렇게 저희 거처문제가 해결되는 건 축복의 서막에 불과했어요. 하늘이 열린 것처럼 주님이 쏟아부어주셨어요. 하늘이 열린 것 같다의 의미를 물으시기에 이렇게 답했어요. 값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주셨다구요.”
– 두 분이 결혼하고 24년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서요?
지: “가정예배요. 결혼하면서 남편과 둘이 시작했는데 아이들 키우면서 가정 안에서 모양새가 잡히기 시작했어요. 할 일 많은 날은 하루 쉬고, 부부싸움 한 날은 건너뛰고, 때론 형식상 드리기도 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땐 포기하고 싶기도 했는데 가정예배를 이어온 지 어느새 24년이 흘렀네요. 돌아보면 가정예배는 순종의 자리였고, 하나님을 힘써 아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어요.”
가정예배로 준비하며 다시 파송을 앞두다
– 가정예배 특강도 나가신다면서요?
지: “특강은 성경을 1장 읽고, 그날의 감사제목 5가지, 기도제목 3가지를 나누는 ‘153가정예배’와 암송예배, 말씀기도, 긴급기도, 요일별기도, 감사일기 등 가정과 학교현장에서 있었던 사례들을 나누고 있어요. 153나눔을 하면 우리 가족이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는데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실제 해보시면 예배가 즐거운 시간이라는 걸 경험하게 될 거예요. 요즘은 강의를 나가면서 예배의 부흥이 각 가정에서 시작되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 따님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을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지: “학교에서 해외 연수를 가야하는데, 경비가 매우 컸어요. 저희가 후원하는 M국 아이들은 한 달에 3만원으로 살아가는데 딸의 연수가 비교되면서 마음에 있는 부담을 아이에게 나눴어요.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그런 계기로 홈스쿨을 결정하게 됐어요. 처음 가보는 길이라 쉽진 않았죠. 3년간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언어공부에 주력하고, 아빠와 이스라엘 성지순례도 다녀오고, 선교훈련도 받고, 전문학사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어요. 요즘은 현지 대학에 들어가려고 준비 중예요.”
– 자녀가 부모의 길을 응원하며 동역자가 되어줄 때 가장 기쁠 것 같아요.
박: “어느 날, 딸의 성경책에서 메모를 하나 발견했는데 참 감격이 됐어요. ‘하나님, 제가 내년 이 시간에 대학을 준비할지, 선교훈련을 받을지, 먼 이국땅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버지만 아십니다. 올해와 같은 답답함일지, 큰 것을 잃는 고통일지, 무엇이든지… 설령 목숨이라도 아버지께 바칩니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믿음의 고백이 분명하더군요. 자기가 가야할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가장 아름다운 젊음의 때를 주님 앞에 드리고 싶다는 고백을 듣는데 마음이 뭉클하더라고요.”
– 선교지로 나가기 전에 특별히 준비하고 계신 것이 있나요?
박: “단순하게 사는 훈련을 하고 있어요. 아내는 가정예배와 성경적 성교육 강의를 하면서 그 땅의 무너진 가정을 세우기 위해 사전 훈련을 받는 것 같아요. M국은 유목생활을 하는 민족이어서 가정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대부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살거든요.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그곳은 더더욱 성경적 가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죠. 다음세대를 주님의 제자로 세우고 싶은 소망이 간절합니다.”
–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박: “아내와 제가 육체적으로 많이 연약한데 우리의 연약함조차 선교를 위해 사용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건강도 안 좋은데 왜 가냐고 묻곤 해요. 제 답은 간단합니다. 죽으러 간다고 하죠. 그럼 더 이상 묻질 않더라고요. 주님도 이 땅에 죽으러 오셨잖아요. 언젠가는 모두 육신을 벗는데 저도 복음 전하다가 그 땅 어딘가에 묻히고 싶어요.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고 싶어요. 외국인은 어딜 가도 불편하잖아요. 혜택도 없고. 나그네는 늘 이동하니까 뭘 많이 가질 수도 없고요. 좀 불편하지만 이 땅은 영원한 곳이 아니니까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 그 민족을 끝까지 사랑하면서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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