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관계정상화를 계기로 발칸반도에 새로운 봄기운이 일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이 정착되기 위한 관문에 이르기까지 걸림돌은 많다. 지난 오랜 세월동안 골이 패인 반목의 시간만큼 난관들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도대체 어떤 일들이 이들 발칸 반도 사람들의 마음을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멀리 떼어놓았을까? <편집자>
오늘날 유고슬라비아(이하 유고)라는 이름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유럽의 화약고’로 악명 높았던 발칸반도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유고연방은 이제 수많은 독립국가로 쪼개져 각각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분할된 국가는 무려 7개로 나뉘어져, 그 이름은 다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코소보가 한때는 유고슬라비아(1945~1991)로 불리어졌던 곳이다.
구 유고연방이라는 용어는 현재의 마케도니아 국명에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FYROM(Former Yugoslavia Republic OfMacedonia 구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공화국)이 마케도니아의 공식명칭이다.
지난 해(2012년) 동유럽 한인선교사 수련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참석한 선교사들이 각 나라별로 모이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필자를 비롯한 세 명의 선교사가 서성거리다가 한 자리에 모였다.
나라별로 모이자니 다른 선교사들이 없었다. 그래서 각 한 사람이 그 나라의 대표 격으로 모여 모임을 가졌다. 이 세 명이 구 유고연방에 속한 나라였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처럼 이 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틀’이 ‘구 유고연방’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해보는 것이다.
구 유고 연방에 속한 각 나라의 오늘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도하려면 과거에 서로 얽히고설킨 이들의 사연을 모르고는 접근할 수가 없다.
구 유고연방이 해체될 때 어느 한 곳의 분쟁은 그곳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지역, 다른 공화국으로 번져갔다. 이 지역 국가들은 그만큼 긴밀한 관계가 형성돼 있었다.
거꾸로 한 곳에서 해결점에 도달한다면 다른 곳으로도 번져갈 수 있는 환경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구 유고연방을 보는 시야가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유고슬라비아란 이름은 20세기 초반 이지역에 있던 세 나라(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가 국명을 바꾸면서 쓰기시작했다.
그 의미는 남(南)을 뜻하는 유고와 슬라비아의 합성어로 ‘남슬라브족의 땅’이란 뜻이다.
사도 바울이 유럽의 전도를 위해 이곳을 건너가야했듯이 발칸반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이다. 마게도냐교회는 그 전도여행을 통해 남겨진 흔적이다.
이같은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이 지역은 시대의 강대국들이 서로 주도권을 주장하며 수많은 전쟁과 분열이 나타났다.
서로마와 동로마의 경계, 구 유고연방 주후 410년 로마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나뉠 때, 그 경계가 구 유고연방지역의 일대이다. 이들 동서 로마는 정치적인 분열 뿐만아니라, 종교적인 갈등을 겪으며 로마카톨릭과 동방정교회로 나뉘었다(1054년).
반도의 서쪽에 위치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로마 가톨릭 중심의 서로마로,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는 동방정교회 중심의 동로마(후에 비잔틴 제국)로 나뉘어졌다.
이후 약 500년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알바니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을 무슬림화하고 세르비아의 민족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무슬림 알바니아인을 강제 이주시켜 그들을 코소보에 정착시킨다.
이때 이들 세 나라 즉, 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가 유럽의 이슬람 국가로 남게 된 것이다.
근대에 들어 19세기말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에서 이긴 제정 러시아가 발칸반도를 기반으로 패권을 확장하려는 의도로 이들 지역의 국가들을 독립시킨다.
이때까지 오스만 투르크는 여전히 마케도니아를 장악했다. 이에 대해 세르비아, 그리스, 불가리아는 발칸동맹을 맺어(1902년) 오스만 투르크를 발칸반도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세 나라는 마케도니아의 땅을 장악하던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발칸 1차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이 종료되자 이들 세 나라는 마케도니아를 놓고 제2차 전쟁을 벌여, 결국 이 땅의 일부분을 나눠 점유한다. 이처럼 인간의 탐욕이 국경과 주도권 다툼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지역이 바로 발칸반도이다.
그 후에 1차, 2차 (1914,1939년)세계 대전의 발화점이 되고, 그때마다 예외없이 강대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1차 대전의 시발점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사건을 통해 발생하고, 2차 대전 때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의 양자간 인종청소식의 학살과 보복이 반복됐다.
양차 대전후에 결국 유고연방을 수립(1945년~1992년)하였지만, 티토 사망이후 약화된 공산사회주의와 급부상한 민족주의 흐름에 결국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선언과 함께 구 유고연방은 점차 붕괴(1992년부터)되기 시작하여 2008년 코소보 독립에 이르기까지 분쟁과 분열이 계속되고 있다.
발칸반도 내의 국가 중에서도 아직 분열과 분쟁의 조짐과 불씨를 가진 곳이 유독구 유고연방에 포진하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 마케도니아가 바로 그나라들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발칸반도는 쉼 없이 전쟁과 죽음과 민족들 간의 갈등과 분쟁의 역사들이 이어져왔다. 그 배후에는 오스만 투르크와 러시아의 세력(제정 러시아-소련-지금의 러시아)과 서유럽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러시아 세력을 견제), 그리고 전통적으로 독일의 입지가 강했던 구도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이들 사이에서 세계 경찰국가로 미국이 힘을 행사하는 모습이 깔려있다. 요즘은 다시 터키가 영향을 주려고 하고 있다. 이슬람 정당이 정권을 잡아서 과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광을 어떤 모양으로든 재현하고자 하려고 한다.
동방정교회, 가톨릭, 이슬람이 혼재된 지역구 유고연방지역은 종교적으로 크게 동방정교회, 로마 가톨릭, 이슬람교가 서로 혼합되어 있는 상황이다.
국가별로 보면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주로 로마 가톨릭이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는 동방정교회가 강하다. 반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는 이슬람교가 주류이다.
그러나 각 국가 내부에도 지역별로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 이슬람교가 따로 존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종교는 바로 나의 민족의 정체성이라는 공식이 있다.
그래서 내가 세르비아인이라면 나는 동방정교회인이다. 그리고 알바니아인이면 무슬림이다라는 식의 논리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곳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분열, 전쟁, 죽음이 이 땅을 다스려왔으며, 언제나 왕성하게 활동해왔고, 한 번도 꺾여본 적이 없다. 이 지역에서 인간들의 피에 굶주린 무리처럼 왕노릇하고 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전쟁의 수준이 아니다. 인종청소, 집단강간 등은 세력다툼의 상황을 지나 비인간적이며, 반인륜적인 범죄수준이다.
이러한 것을 부추긴 것은 민족주의이다. 자민족 우월성을 집단적으로 강조하여 행동으로 옮겼다. 이는 집단적인 교만이다.
그래서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그토록 잔인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민족주의는 종교도 흡수했다. 그래서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민족을 말살하려는 일도 있었던 것이다.
신이 기뻐한다는 명분까지 있으니 말이다. 마치 성전을 치르듯 그들은 서로 죽이고 죽었다.
이 모든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교만케 하는 민족주의, 민족주의와 결탁된 종교, 종교와 힘을 모은 정치는 결국 전쟁과 학살, 인종청소, 분열로 이 땅을 더럽히고 하나남의 형상인 사람들의 잔혹하게 무너뜨렸다. <계속>
황자선 선교사
“세르비아-코소보 관계정상화, 갈등요소 봉합되나?”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던 발칸반도의 오랜 갈등요소인 세르비아와 코소보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최근 발칸반도의 핵심분쟁 요소 가운데 하나인 세르비아와 전 세르비아의 영토였던 코소보가 관계정상화를 위한 막바지 타협이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오랫동안 갈등을 겪어온 세르비아 정부가 코소보와 관계정상화 합의를 위한 잠정합의안을 도출, EU측에 통보했다. EU가입을 원하는 세르비아에 대해 EU측은 지역의 평화를 위해 코소보와 관계를 정상화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던 것.
즉, 세르비아 정부가 코소보를 인정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지면서 지역 평화를 위한 파란불이 켜지게 된것이다.
세르비아 여야 정당들은 양측의 잠정 합의안에 대해 뚜렷한 반대를 표명하지 않아 코소보와 세르비아의 관계 정상화는 사실상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외신들의 분석이다.
이에 앞서 세르비아 정부는 지난 22일 잠정 합의안을 승인하고 이런 사실을 유럽연합(EU)에 통보하는 한편 전 부처에 합의안 이행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세르비아 의회는 23일 정부로부터 합의안의 내용을 보고받고 나서 관련 절차를 밟아 26일에 토론을 벌이기로 여야 총무들이 합의했다고 세르비아 국영 탄유그통신이 네보이사 스테파노비치 의회 의장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이같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세르비아는 EU의 요구사항을 충족하게 됐으며, 코소보의 경우 향후 EU 가입시 세르비아가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협력관계를 기반을 마련하는 외교적 자산을 쌓게 됐다.
그러나 이같은 양측의 합의에 대해 대(對)국민 설득작업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특히 코소보 북부 지역의 세르비아계 주민은 “코소보 국민이 되기 싫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세르비아 연립정부에 참여하는 보수계열 ‘세르비아 진보당’ 총재인 알렉산다르 부시치 부총리는 “세르비아 정부가 국민투표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고 발칸뉴스 전문 ‘발칸 인사이트’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GN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