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호 / 믿음의 함성]
성도의 삶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악한 자들의 싸움이다.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장에서 믿음으로 승리를 선포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고백을 소개한다. <편집자>
장애아이로 태어난대도 주님은 선하세요
결혼 한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우리 가정에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그러나 아기는 선천적으로 약했다.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 임신 7주차에 산부인과에 갔을 때, 의사는 아기가 작고 심장도 많이 느리게 뛴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어차피 안 될 아이는 한 주 기다릴 것 없이 빨리 지우는 게 낫다며 부리나케 나를 찾아오셨다. 나는 가족들 성화에 등 떠밀려서 수술 날짜를 잡기 위해 병원에 갔다. 약하긴 해도 내게 온 아이인데, 아직 아기가 살아 있는데 내가 먼저 지우는 건 낙태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단 가족들을 돌려보내고 남편과 예배를 드리며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받았다.
아기를 품는 것이 내가 드릴 영적 예배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기가 장애가 있는 채로 태어난다고 해도 선하신 주님을 묵상하며 감당하자고 우리 부부는 다짐했다. 그러나 아기는 서서히 심박수가 줄어들다 멈추게 되었고 나는 결국 소파술을 받았다. 결과는 동일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우리 부부는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상황보다 더 큰 주님 앞에 믿음의 결단을 드릴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앞으로의 걸음도 선하신 주님을 의지한다.(경북 경산시 김혜연)
나와 다른 사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된 새끼고양이가 머물고 있는 공동체에 오게 됐다. 잘 걷지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고양이를 공동체 식구들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싫어하던 나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난 고양이가 깨끗지 않을뿐더러, 또 안아주면 나를 할퀴고 물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며칠 고양이 옆을 지나다니며 어미 없이 아파서 고생하는 고양이가 불쌍해졌다. 지켜보니 발톱을 세워 기어오르고 이빨로 물어뜯는 것이 고양이의 타고난 특성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나니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 이후부터는 고양이를 안아주기도 하고 함께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지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지 못하고 있음이 깨달아졌다. 나와 다른 지체의 모습을 지적하고 꼬집어주기 바빴다. 내가 그렇게 할수록 지체들은 내게 마음을 닫고 힘들어했다.
그러다 고양이 사건을 통해 이 모든 문제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기준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양이가 더럽고 무섭다고 생각했으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때 고양이가 받아진 것처럼 나와 다른 지체들도 내 기준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함을 주님은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지체 안에서 함께 하고 계심을 믿는 것이었다. 이제 내 기준을 버리고 지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믿음으로 받으며 주님께 순종을 드리며 나아간다.(충남 서산시 고은혜)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지?
‘콜록, 콜록’ 며칠째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서 폐렴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하고 항생제를 투여 받았는데 부작용으로 탈진했다. 먹지도 못하고 기력이 쇠해질 대로 쇠해진 채 퇴원을 하고 집에서 한방치료를 받았다. 왜 이런 시간을 하나님이 허락하셨을까.
순간 주치의를 원망하는 마음과 동시에 선지자 ‘요나’가 생각났다. 내 눈에 비친 ‘요나’는 이기적이고 교만했다.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순종하기보다 불순종을 일삼았다. 그리고 곧 ‘요나’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치의는 그런 나를 고쳐주시려는 박넝쿨과 벌레였다. 사실 한동안 나의 교만한 마음과 씨름하고 있었다. 주님께 엎어지며 나의 병든 마음을 고쳐달라고 간구했다. 주님은 나의 마음을 고치고 계신다. 허락하신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나를 더욱 고치시도록 온전히 주님께 나를 드린다.(강원 홍천군 정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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