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호 / 인터뷰]
십자가 복음에 부딪힌 후 오직 성경만 붙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말씀에 무지하고, 말씀을 등한시한 자인지 알게 되었다. 매 장마다 빽빽한 노트와 밑줄로 가득한 성경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구광택 목사를 만났다.
“전남 영광, 마을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1년 동안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어요. 그 후 가방 하나만 들고 광주를 거쳐 서울에서 객지 생활을 했어요. 22살에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은 후 25살에야 처음 교회에 갔습니다.”
–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전도로 교회를 잠깐 나가시던 부모님과 함께 다닌 적은 있었지만, 저는 괜히 이유 없이 교회라는 곳이 싫었어요. 교회는 나와 좀 다른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22살부터 한 3년 정도 가끔씩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흰 옷을 입은 천사 같은 사람들과 무당이 부르는 두 갈래 길에서 망설이는 꿈같은 것들이었죠. 누가 해석을 좀 해줬으면 했는데 직장 후배가 교회를 소개했어요. 성도 3명, 전도사 1명이 전부인 교회였어요.”
성도가 4명인 교회에서 신앙생활 시작
– 신앙생활은 어떠셨나요?
“천국과 지옥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믿어졌어요. 바로 산 기도를 다니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렸어요. 아이들 유치원도 안 보내고 옷도 얻어 입히면서 가진 것을 헌금하고, 예배에 모든 것을 걸었어요. 26살 여름, 교회에 다닌 지 1년이 갓 넘었는데 수요예배 설교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때라 다른 목사님 설교를 외워서 나눴어요. 예배 전 강단 뒤에서 무릎을 꿇고 정말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내 연약함을 아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어요. 주님께서 애처롭게 보셨는지 제 이름을 정확히 부르시면서 ‘내가 너의 능력 없음을 안다. 내가 네게 능력을 줄 테니 담대히 외치라.’는 내면의 음성을 듣게 됐어요. 감격과 성령 충만으로 엄청난 눈물이 쏟아졌죠.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응답하시고, 힘이 되어 주시다니… 외운 것을 보지도 않고 그동안 들은 말씀으로 말씀을 전했어요. 설교를 마치고 나올 때는 구름을 밟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29살까지 하나님의 능력도 맛보며 순수한 믿음의 시절을 보냈어요. 그 사이 중학교 검정고시를 치르고 1990년 총신대(총회신학대학교) 입학, 그후 신대원(신학대학원)을 마치고 2000년도에 목사 안수를 받았어요.”
– 생계는 어떻게 하셨나요?
“아내가 낮에는 김밥을 팔고, 밤에는 10시부터 새벽 4~5시까지 머리에 떡을 이고 다니며 장사를 했어요. 밤에는 저도 같이 다녔죠. 아이들이 참 어려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3년 정도 열정적으로 살았어요. 대학 1학년 때부터 계속 지하철과 버스에서 노방 전도를 하며 정말 믿음으로 달렸어요. 그러나 결국 죄와는 뗄 수 없는 존재적 죄인이었어요.”
– 어떤 의미이신가요?
“기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대학의 자매와 교제를 하고, 대학에서 리더를 맡았는데 회비를 받으면 개인적으로 쓰기도 했어요. 부목사 시절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속으로는 교회조직 안에서 밀리지 않으려 치열하게 경쟁하며 싸웠죠. 그러다 2002년 신탄진, 지금 이 자리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온갖 좋다는 제자훈련을 열심히 하다 보니 교인도 많았죠. 산기도도 많이 하고, 이웃주민들이 시끄럽다고 신고해 경찰들이 올 정도로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를 뜨겁게 하고 설교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이 겉모습뿐이었어요. 열심히 목회하고 전도했지만 처음 주님을 믿었던 순수한 믿음은 사라지고, 결국 교회건축, 목회성공의 야망으로 내가 주인된 삶이었어요. 언제든지 상황과 조건이 되면 죄를 지었어요.”
– 그런 것들이 야망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셨나요?
“장성한 둘째 아들이 북한 선교를 하던 때였어요. 동료 선교사들을 통해 알게 됐다며 제게 복음학교를 권유하더군요. 처음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했죠. 그러다 저도 나름 갈급함이 있어서 2012년 봄 즈음에 가게 됐어요. 5박 6일의 목회자 복음학교였는데, 제가 다녀본 집회에 비하면 모든 것이 허술했어요. 강사도 방송에서 본 적도 없고 이름도 처음 들어본 분이었어요. 그런데 강의가 한 15분 정도 지났을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는 말씀을 하시면서, “목회자이신 여러분, 이 말씀이 실제가 되셨습니까?”하고 묻더군요. ‘실제’라는 말을 그렇게 제 삶에 적용해보기는 처음이었죠.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았어요. 그때부터 귀 기울여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담겨있는 총체적인 복음을 들었어요. 훈련기간 중간에 조장이 나누는 ‘나의 복음’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목회자였던 저희 그룹은 오히려 그분을 소외시키고 우리는 거룩한 척했죠. 그러다 5일째 되는 밤, 훈련생이던 목회자들이 각자 ‘나의 복음’을 나눴어요. 저의 비참한 실상 앞에 통곡했어요. 모든 사람의 죄가 나의 죄였어요.”
복음의 충격, 비참한 실상을 깨닫다
– 그 후 어떤 변화가 있으셨나요?
“기존의 가치들이 완전히 붕괴됐어요. 나의 죄 된 실상과 총체적인 복음의 충격이 너무 컸죠. 그동안 접목해왔던 유명한 제자훈련, 기도, 심지어 전도까지 교회 안의 모든 프로그램을 멈추고 한동안 공황상태였어요. 그러나 설교는 해야 했어요. 그동안의 설교 준비는 주석 읽고, 다른 설교 베끼고, 신앙 서적의 예화를 차용하는 것이었는데, 그걸 할 수는 없었죠. 잘 하든 못하든 성경을 붙들고 할 수밖에 없어서 일단 성경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성경을 읽지 않는 목사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작정 통독을 하다가 여러 가지 버전의 번역본과 영어성경, 원어성경 등 7~8권을 펴놓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세밀히 읽었어요. 말씀을 대하며 주님 앞에 서고 싶었죠. 윤리, 도덕 수준의 말씀이 단 한 구절도 없었고, 성경이 총체적으로 꿰어졌어요. 다니엘서든 계시록이든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는 뿔이 몇 개고 짐승이 어떤 나라냐가 아니라 바로 ‘복음’이었어요. 하나님 나라는 부흥하고, 성도는 인내로 이 싸움을 싸우고, 주님은 다시 오신다는 것이죠. 몇 년 정도 사용한 성경만 4권 째에요. 지금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른 책은 안보고 하나님의 뜻과 단어들을 제 방식대로 표시하면서 성경만 깊이 있게 봅니다. 그러다보니 수요예배, 주일예배 모두 강해 설교가 되죠. 처음에는 정리돼 있지 않아 실수도 많이 하고 날카롭게 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온유하고 인내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점점 깊어집니다.”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이 은혜를 나누시는지요?
“저희 교회는 일주일에 두 번 성경 공부와 수요예배, 주일예배를 드려요. 그 시간에 성경 텍스트로 말씀보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에요. 로마서, 에베소서를 50번씩 읽으라고 했는데, 주님은 로마서 안에서 복음을 충분하게 말씀하세요. 저에게 딜레마가 있다면 정말 복음을 알겠고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정말 알겠는데, 실제 저의 모습이 100%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지금도 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 어떤 싸움인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헌금의 본질은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의 재정은 전부 선교와 구제로 흘러가죠. 이전에 계획했던 교회 건축도 멈췄고, 모아두었던 적지 않은 금액의 건축헌금도 선교와 구제로 다 흘려보냈어요. 그런데 교회 재정과 같이 큰 문제는 주님께 넘어갔지만, 제 용돈 몇 만원과 같은 작은 돈은 여전히 내가 주인 되어 있는 영역이 있어요. 잘 다루심을 받다가도 넘어지고, 아직도 싸웁니다. 성도들이 제게 이런 부분을 물으면 정직하게 나눕니다.”
– 조금만 더 풀어서 설명해주세요.
크고 작은 모든 영역의 주권이 주님께
– 복음이 실제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은 모두에게 구원을 주기 원하시죠. 또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그냥 주셔서 받으면 되죠. 그렇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결국 주님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때문’이었어요. 하나님이 당신의 전부이신 아들을 못 박으시며 내어주신 복음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생명 전부로 받지 못하는 것도 결국 주님께 나를 넘겨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거죠. 저의 가장 큰 고통은 바로 이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성도를 사랑하는 것도 혈과 육이 아니라 주님과 관계 속에서의 싸움이죠. 상황이 어떠해도 주님과 바로 서면 기쁘고, 조금만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 틀어지면 고통스러워요.”
“이전에는 구원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어요. 구원은 따 놓은 당상으로 아예 제쳐버린 거죠. 제 관심은 오직 목회가 빨리 안 된다든지, 성도들이 나간다든지 하는 것이었어요. 부부싸움을 하는 것도 괜찮은데 교회 일들이 안 될 때는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고민했어요. 나의 욕망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처음 복음을 듣고 엄청난 은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구원관에 대해 해결이 안됐어요. 주변 후배나 동료들은 ‘그런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 아니냐.’고 하죠.”
“그러나 그건 이전에 제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이었어요. 누가 답을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십자가에서 정말 죽었다면 죽어야 하는데, 그 죽음이 ‘실제’되었다고 혼자 착각할 수 있으니까요. 믿음이 완전하지 않은 거죠. 큰 것은 다 넘어갔는데 작은 것에도 주님이 주인 되시지 않는 것, ‘주님이 정말 주인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는 싸움들을 그래서 하는 거죠. 얼마나 사탄이 강력하게 공격하는지… 저는 지금도 그 고민을 해요. 그런 고민 속에서 주님께 올인하고 더 달려간다면, 바울이 말했듯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것이죠. 결국 주님이 세워주실 것을 믿고 갑니다.”
– 성도들도 말씀 앞에 치열할 것 같네요.
“그렇죠. 제가 이렇게 복음을 나누다 보니 저희 교회는 거의 다 복음학교를 하고 총체적인 복음 앞에 서신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도 ‘다른 교회들은 다 편하게 하는데 굳이 내가 기준을 높여서 하는 것은 아닌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는데 내가 이렇게 기준을 정해서 해버리나?’ 그런 고민을 한두 번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결론은 명확합니다. 십자가는 좁은 길이라는 것. 이 땅에서 잘 살 것인가 못 살 것인가가 아니라, 정말 저들의 영혼이 구원받을 것인가에 진정 관심이 있어요. 지금은 제가 부족하지만 성도들이 정말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내가 증인이 되는 거죠. 늘 그 고민이 있어요. 오직 복음과 말씀, 그리고 기도가 전부입니다.”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유튜브로 설교를 올리고 있는데 영상을 보고 장거리에서 오시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호주에서도 몇 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가 정말 초대교회와 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조건 없이 연합하고,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해 계속 달려가는 교회가 되는 것이 소망이에요. 제 자신은 정말 복음을 위해 말만 하는 자가 아니라 진짜 주님이 기뻐하시는 증인으로 달려가길 원합니다. 다른 것 없어도 충분합니다. 최종 목표인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 완성을 놓치지 않고 가고자 합니다.” [복음기도신문]
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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