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교회의 섬김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시간
이 고통의 시간이 언제까지일까? 2011년 3월 15일 시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다라에서 발생한 민주화시위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이 2년을 맞았다. 사망자 7만여명, 난민 수 100만여 명에 이르고 있음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접경국인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등 인근국으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 행렬은 연일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에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캠프를 다녀온 삼일교회(송태근 목사) 난민구호팀의 방문기(訪問記)를 소개한다.
레바논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시리아의 접경국가이다. 이에 따라 시리아 난민 유입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난민캠프가 없다. 정치적인 이유로 레바논 내에는 난민촌 건설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플라스틱통이 화장실
첫번째 방문지는 수도 베이루트 빈민가. 방문한 현지 교회 주변에는 약 800가정의 시리아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노숙 상태에 있다. 아주 소수의 가정들이 레바논 현지 교회의 도움을 받아 성도들이 보유한 주택의 창고 등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 교회가 수용가능한 가정은 70가구 정도. 이처럼 숙소가 허락된 난민들도 다른 부분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들을 위한 공식 난민 캠프가 없으니 구호물품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이곳에서 노동과 같은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다. 시리아 난민들은 레바논 내에서 결혼과 직장을 갖는 것을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전 중 상당수의 남자들이 실종돼 대부분의 난민 가정이 여자와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여인들의 고통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방문한 한 가정은 화장실 시설이 없어서 플라스틱통으로 용변을 처리해야 하는 할 정도로 생활 환경이 열악했다. 12살된 큰 딸은 가족들을 위해 현지 레바논 사람에게 양녀로 팔려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
좁은 방에 10여명의 식구가 함께 생활
두번째 방문지는 이스라엘 바로 위, 남부지중해 해안에 있는 두로(Tyre)지역이다. 고대 시절에는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엄청난 부를 누렸지만, 지금은 옛 유적지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곳에 시리아 난민들이 갑작스럽게 몰려들었다.
두로지역은 시아파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으로 한국의 동명부대가 이곳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다. 우리 일행은 동명부대를 통해 5개 시에 약 1000 가정의 난민들에게 담요와 옷 등의 생필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방문한 가정에는 좁은 방에 10여명의 식구가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마침 우리 일행이 방문할 무렵, 출산 후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생명이 위험한 아기 엄마가 동명부대 의료진의 도움으로 생명을 간신히 건질 수 있었다.
난민의 대부분인 여성들을 위한 진료와 시설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맨발로 차가운 돌바닥에서 생활
세번째 방문지는 베카계곡이다. 레바논에는 이슬람의 종파와 기독교인들이 거주하는 기독교 구역이 비교적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런 지역 구분에 대해 사전정보가 없는 난민들은 그들이 머물게 된 곳이 시아파인지 수니파 거주지역인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도 한다.
시리아 내전이 종파전쟁의 양상을 띄면서 상대 종파 거주지역에 머물게 된 난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베카계곡은 전반적으로 이슬람 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그 계곡 한 가운데 기독교 지역이 있다. 이곳으로 많은 시리아의 이슬람 난민들이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몰려 오고 있다.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마을은 기독교센터를 중심으로 주거와 식량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늘어나는 난민들을 감당하기에는 많이 어려운 상황이다. 데이르아흐마르라는 작은 마을에는 현재 280가구의 시리아 난민들이 있고 이들 중 100가정을 돕고 있으나 매달 15가정 이상 새로운 난민들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방문했던 한 가정에는 3평 남짓의 좁은 방 한 칸에 15명의 여자들과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의 남편 또는 아들 등남자 가족들은 모두 국경에서 붙잡혀 죽거나 실종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슬람 지역에서 남자 없이 생활해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들은 아직도 눈이 내리는 날씨에 난방 시설하나 없이 맨발로 차가운 돌바닥을 걸어다녔다.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열다
우리가 방문한 가정에서 예배 드릴 때 비록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하였고 같이 울며 기도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알라 마익’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시다.) ‘알라 비헵빅’(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심판하고 복종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창조주가 우리와 함께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이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 받을 백성을 부르기 위해 시리아 사람들을 레바논의 교회들로 보내고 있다는 것을 이번 방문기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시리아 민족에게 복음이 들려지기를 원하셨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현지 지역 교회들과 기독교 마을 성도들이 이들 시리아 난민들을 돕고 있다. 어려운 시리아 난민들이 레바논 교회의 섬김을 받으며 복음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레바논 교회는 최근 크게 늘어나는 난민으로 인해 숫자를 감당하기에 긴급 상황만을 해결하기에도 힘이 버겁게 느껴지고 있다.
현지 교회들을 통하여 시리아 난민들에게 떡과 복음을 전달하는 사역이 지속되는 것이 필요하다.
글. 삼일교회 시리아난민구호팀
아랍의 봄과 함께 시작된 시리아 사태
지난 3월 26일 시리아 반정부가단체인 시리아국가위원회(SNC)가 아랍연맹정상회담에 참석,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현 정부가 아랍연맹정상회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반면, 아랍권 국가들이 반정부 세력을 시리아의 대표성을 띈 주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게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도 시리아 사태를 종식시킬 계기가 될수는 없다.
자국민의 고통은 물론 이 상황을 접경국 국민들도 함께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된 시리아 내전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시리아 사태의 원인과 향후 전망을 알아본다.
▶발생 및 경과 =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15일, 전국적으로 시위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시위는 아주 작은 사건에서 촉발됐다. 시리아 남부에서 쟈스민 혁명과 관련된 구호를 벽에 써 놓았다는 이유로학생들이 체포되고 고문을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민들이 학생들의 석방과 함께 민주주의와 자유의 보장을 요구했다. 그다지 반정부적인 성격의 시위도 아니었고 평화적인 시위였다. 하지만 정부군은 강경하게 대처했다.
이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것이다.
3월 18일 실시된 평화적 시가행진에서는 정부군의 발포로 4명의 시민이 사망했고, 다음 날 사망자의 장례에서 정부군의 발포로 또 다른 사망자가 발생했다. 3월말에 이르러 시리아 정부는 제4 기갑사단을 시위진압 부대로 투입하면서 수십 명의 사망자기 발생했다.
탱크가 주거지역에 포탄을 발사하거나 군대가 민가를 습격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전국적인 반정부 운동이 촉발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상황과 전망 = 몇 개월 후 시민들의 반발은 무력시위가 되었고 정부군에서 이탈한 군인들과 자원한 시민들이 모여 반군이 결성됐다. 이후 반군에 바샤르알아사드 대통령(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를 거부하는 수니파가 성격을 드러내면서 시리아 내전은 아랍권 전체의 이슈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랍진영에서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이 정부군을 지원하고,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반군을 지원하면서 종파 전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와 중국이 시리아 정부의 편을 들어주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미묘하게 얽혀가고 있다. 이처럼 정부군과 반군을 지지하는 외부 세력으로 인해 시리아 내전은 계속 불을 뿜어내는 활화산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같은 시리아 상황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하자.
– 계속 늘어나는 시리아 난민들이 그들이 머문 곳에서 위로와 함께 주님의 은혜를 입게 하소서
–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내전 사태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의 아픔에 이 땅의 지도자들이 눈을 뜨게 하소서
– 자국 이익에 따라 이 땅의 내전 사태를 활용하고자 외부의 악한 생각들이 끊어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