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호 / 인터뷰]
자신의 떨어진 신발보다 지체의 떨어진 운동화를 새 것으로 바꿔주는 사람. 소셜미디어(SNS)사용이 어려울 만큼 자신의 낡은 핸드폰은 바꾸지 않으면서도 재정이 필요한 곳엔 아낌없이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다. 평범함 속에서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고 있는 은종숙 집사의 인생 여정을 들어보았다.
-처음에 집사님께서 인터뷰에 선뜻 응하지 않으셨지요?
“너무 평범한 제가 왜 인터뷰하게 되었는지 주님께 물어봤어요. 주님이 알게 해주셨어요. 주님은 평범한 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을요. 누구나 주님이 부르시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저처럼 평범하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존재감 없는 자도 주님이 부르시면 주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나누고 싶었어요. 주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는 자들도 부르시지만, 그냥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부르시더군요. 몸의 지체가 발도 있고 손도 있고 눈도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를 한 지체로 부르시는 것이죠. 평범한 자를 부르셔서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게 주님이셨어요.
주님이 그 마음을 주셔서 여기까지 왔어요. 한 걸음 걸어가면 그 다음은 주님이 하세요. 제게 필요한 것은 순종이었어요. 부르심에 ‘아멘’으로 나아온 결과, 주님이 주님의 능력으로 하시는 것을 보게 된 것이죠. 제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너무 당연하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말예요.”
평범한 자를 부르시는 주님
-최근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걸음이 있나요?
“4월 초에 N국에서 열린 다음세대 복음학교를 섬기게 되었어요. N국 복음학교는 벌써 세 번째 참여하고 있어요. 처음 N국 땅을 밟은 것은 작년 6월 복음선교관학교 훈련을 받으면서 아웃리치를 가게 되면서예요. 그때 현지인 복음학교에 참여했어요. 현지인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주님께서 열방의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저도 그 순수한 영혼들을 마음으로 품게 해주셨어요. 그 후 9월에 있는 현지인 목회자 복음학교에 남편과 함께 불러주셔서 다시 갔어요. 그런데 이전에 만났던 몇몇 분이 저를 알아보는 거예요. 현지인 자매와 너무 반갑게 교제를 하며 주님을 찬양했어요. ‘와, 주님께서는 하나이시구나. 성도를 하나로 만드시는구나.’ 이런 경험을 통해 N국이 마음 속 깊이 심어지게 됐죠. 그래서 다음세대 복음학교가 그곳에서 열린다는 걸 듣게 됐을 때, 주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주저 없이 함께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주님이 현지인, 목회자, 그리고 다음세대까지 전 세대를 아울러서 저를 그 땅으로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어요. 주님이 그 나라의 많은 영혼들을 복음으로 회복하시는 영광을 보는 시간이었어요.”
-말씀하시는 그 영광을 어떻게 또 다른 삶의 모습으로 주님이 보여주시는지 궁금해요.
“아들이 전능자의그늘미니스트리(ShAM, 이하 쉠)라는 긍휼사역을 감당하는 선교단체 선교사로 있어요. 아들 때문에 그 단체를 알게 됐죠. 그런데 아들이 처음 입소하던 날, 대표 선교사님이 ‘저희는 세 분이 오신 것으로 받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들뿐만이 아니라 남편과 저까지도 지칭하는 말이었어요.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았어요. 아들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저희에 대한 부르심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말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 되시고 가장 완전한 곳이란 말이잖아요. 그래서 섬겨야하는 자로 부르신 게 아니라 제 영혼을 전능자의 그늘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부르심 같았어요.
그동안 스스로 아이를 잘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섬기다보니 가장 못하는 영역이었어요. 아이들을 좋아는 하지만 아주 어린아이는 어렵거든요. 저는 말귀를 알아듣고 반응할 수 있는 2~3세의 아이들을 좋아하는데요, 내가 좋은 아이들을 섬기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전 이곳에서 가장 할 수 없고 피하고 싶었던 신생아 영역을 섬겼어요. 그러면서 다시 고백하게 됐어요. ‘그렇지, 내가 하는 게 아니지. 모든 섬김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할 수 있으니까 이 일은 하고, 내가 할 수 없으니까 저 일은 못한다는 게 아니구나!’
복음을 만난 이후 저의 가장 큰 변화는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안했어요. 하지만 복음 앞에 서고 난 후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시는 주님을 보게됐어요. 그렇게 해야 ‘주님이 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정말 자연스럽게 고백되더군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자리에서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셨어요. 아이를 재울 때에도 ‘주님이 해주세요’ 아이가 밤에 울면 ‘주님이 하셔야 됩니다.’ 주님을 붙들면서 주님이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게 하시려고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는 거죠. 그럴 때는 주님이 하셨다고 입으로만 고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나 쉠에서 신생아를 섬기면서 매일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터지는 고백을 드리고 있어요. ‘어젯밤도 주님이 하셨습니다!’”
아들과 함께 선교사역을 섬기다
-온전히 주님만을 높이는 삶으로 변화시켜주신 복음의 능력이 너무나도 아름답네요. 이 복음을 만나게 된 과정을 나눠주시겠어요?
“사실 저는 모태신앙이었고 믿음의 삶을 산다고 자부했어요. 교회와 집밖에 모르고 살았고, 이게 믿음이라고 확신하며 살았어요. 그러다 저와 남편과 아들, 세 가족이 복음학교라는 신앙훈련을 받게 되었어요. 강의를 듣는데 정말 아찔했어요. 여태까지의 신앙생활이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었다는 것을 직면하게 되었거든요.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겠지만 내 선함과 내 열심이 바로 교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뒤통수를 맞는 것 같았어요. 저는 당연히 천국 갈 줄 알았는데, 이대로면 지옥에 갈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저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한 자였어요. 모든 시간에 내 의를 쌓기에 바빴더라고요.
‘이 정도면 됐지. 나만큼 믿는 사람 있어?’ 제 안에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깔려 있었어요. 주님이 ‘터’가 아니었고, 내가 ‘터’였어요. 저는 너무 깜짝 놀랐고 소름이 끼쳤어요. 이 복음을 안 들었으면, 나는 지금도 내 의를 밑에 깔고 주님을 섬긴다는 미명하에 나를 섬기며 다른 사람들을 판단했을 것이었어요. 그뿐 아니라 나 같은 믿음을 강요하고 있었을 거예요. 너무 끔찍했어요. 지금이라도 이 복음을 알게 해주신 게 너무 감사했어요. 다만 지금까지의 내 선함과 열심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 한 번도 주님은 없었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이 긴 세월을 나를 위해 살았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가족 모두가 복음학교 훈련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가족들은 어땠나요?
“같이 복음학교를 하게 된 것은 주님의 은혜였어요.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 주셨던 거죠. 사실 그런 학교인 줄 모르고 간거죠(웃음). 끝나고 나서 왜 같이 하게 하셨는지 알게 됐어요. 첫 번째는 아들의 선교사로의 부르심 때문이었어요. 가족이 함께 복음학교를 안했다면, 저희도 사실 반대했을 거예요. ‘아니 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사회생활 하면서도 믿음생활 할 수 있잖아. 세상 속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 해야지, 꼭 그걸 해야만 해?’ 어쩌면 주님이 아들을 부르시기 위하여 우리를 함께 부르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아이가 헌신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어요. 왜냐하면 세상으로 나가는 게 더 불안했거든요. 저는 내 힘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난 복음으로 살 수 있다고 다짐했었지만, 결코 되지 않더라고요. 제가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교만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들을 부르신 주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세상에서 보면 부모로서 무책임 해보일 수도 있는데, 저는 주님의 부르심 받은 이 아이를 주님께 맡겼어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으니까요. 외아들을 향해 걱정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죠. 그런데 함께 복음 앞에 서고 나서 나의 조급함과 인간적인 근심은 없어진 거죠. 가장 선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주셨어요.
온 가족이 복음 앞에 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들을 통해 우리 부부를 거꾸로 쉠으로 불러주시더라고요. 아들만 헌신의 삶이 아니라 우리 부부 또한 헌신의 삶으로 부르시기 위해 온 가족을 복음 앞에 세우셨던 거예요. 그러면서 남편과 제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어요. 바로 복음을 나눌 수 있다는 거였어요. 사실은 믿음생활을 한다면서도 남 욕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대화들이 전부였거든요. 복음을 나누기는커녕 우리는 믿음생활을 잘 하는데 남들은 못한다는 내용을 나누고 있었더라고요. 복음 앞에 서고 나서부터는 믿음을 나누게 되고, 말씀 묵상 내용을 나누게 됐어요. 쉠에서 본 아이들의 변화와 하나님이 이루신 것. 이 이야기밖에 할 게 없는 삶으로 바꾸셨어요. 그러면서 삶이 단순해지고, 주님의 부르심이다 하면 ‘네’라고 순종할 수밖에 없는 삶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믿음의 반응은 순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남편은 이렇게 고백해요. 그냥 감사할 것 밖에 없다고요. 아들을 불러주신 것도, 우리가 이런 삶을 사는 것도 감사하고. 사실 감사함 그 다음은 없잖아요. 감사한데 불평이 나오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평생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거죠.”
<이상 203호에 게재>
–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전적인 주님의 돌보심을 완전한 믿음으로 누리는 자가 되길 원해요. 아직도 여지가 남아있어요. 나의 생각이 순간순간 들어오고 나의 익숙함이 불끈불끈 올라오거든요. 나의 생각과 익숙함이 아니라 주님 행하시는 일에 아멘하고 순종해서 나갈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이 삶이 나 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 그리고 주님이 불러주신 N국의 다음세대에게도 이뤄지기를 위해 기도하게 되요. 제가 그들을 위해서 같이 기도하는 자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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