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 인터뷰]
유가나. ‘가나다라’의 ‘가나’로 아무 뜻 없이 지어진 이름이라고 했다. 작명소에서 할아버지가 받아오신 춘봉(春鳳)을 대신한 이 이름은 예수님을 만난 후,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었다. 첫 사역지에서 듣게 된 ‘가나의 혼인 잔치’를 통해 유가나 목사는 자신의 부르심을 확증하게 되었다. 세상을 향해 기적을 일으키는 자에서 가장 큰 기적, 복음을 노래하는 자가 되기까지 주님이 인도해 오신 그의 삶을 들어본다.
– ‘복음을 노래하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2013년에 시작해 2017년 11월까지 머스트워십은 철저히 실패한 팀이었습니다. 저희를 전형적인 예배팀으로 생각하고 함께 하고자 오셨던 분들은 많은 실망을 하고 돌아갔어요. 음악은 그저 예배를 드리는 데 쓰임 받는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희는 음악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악 전공자 없이 피아노와 기타로만 예배를 드렸으니까요. 처음 머스트워십을 결성할 때, 사실 저는 한국 예배사에 큰 획을 그을 줄 알았어요. 당시 성도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워십팀 출신에다 대형교회 예배인도자였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사람 수를 주목하며 예배 방식에만 치우치다 보니 금방 진이 빠졌어요. 여러 한계에 부딪히면서 하나님은 저희 팀 한 사람, 한 사람을 복음으로 부르시고 세워주셨어요. 죄인들을 사랑하시지만, 죄와 함께하실 수 없는 하나님 앞에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는 죄인들의 행위는 어떤 것도 받으실 수 없다는 사실을 총체적 복음 앞에 서며 알게 됐어요. 복음이 빠진 예배는 자기만족이나 종교적 열심에 불과했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망하면서 알게 됐죠. 그래서 저희는 선언했어요. 십자가 복음 외에 노래하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 복음만 노래하리!
– 팀 전체가 이 선언에 순종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복음 앞에 서기까지 많은 고통이 있었어요. 현재 함께하고 있는 지체들은 11명이에요. 복음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 선교적 삶을 살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모두 팀을 떠났어요. 복음이 도전하는 실제적이고 격렬한 싸움의 모든 화살을 제게 돌리며 끝끝내 근심만 하다 떠나는 사람들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 후유증으로 긴장성 두통에 원형 탈모까지 생겼죠. 그래서 더욱 복음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 커뮤니티를 통해 모집 광고를 본 사람들이 저희 팀에 지원을 해요. 정식 멤버가 되는 자격은 그리 까다롭지 않아요. 두 번의 인터뷰와 사역한지 1년 안에 ‘복음학교’를 다녀오는 거죠. 처음엔 다들 이런 약속을 어려워하지 않다가 막상 약속된 시간이 되면 갑자기 팀을 그만두겠다고 해요. 극단적인 예로 11개월 29일만에 말이죠. 이런 일을 거듭 겪으면서 사람은 정말 복음을 듣기 싫어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지만요.”
– 목사님도 복음이 듣기 싫으셨나요?
“싫었던 게 아니라 굳이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할 필요를 몰랐어요. 신학을 배우면서 늘 좋은 평가를 받았고, 지식도 충만했으니까 복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복음학교에는 친한 목사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어쩔 수 없이 갔어요. 팀원들 중 제가 가장 마지막에 갔어요. 그런데 복음 앞에 서보니 정말 제가 복음을 몰랐더군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함께’라는 단어의 의미, 제 삶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았다는 믿음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어요. 때마다 주님을 위한다고 했던 삶이 사실은 세상 무대에서 기독교 무대로 바뀐 채로 여전히 저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있던 꼴이었죠.”
– 언제 예수님을 처음 만나게 되셨어요?
“저는 큰아버지가 신부님인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지만 제가 4살 때, 어머니가 동네 교회에 나가게 되시면서 저를 가끔 교회에 데리고 가신 기억이 있어요. 대학생이 된 저는 연출을 공부하기로 했는데, 첫 워크숍 작품에서 ‘천재’라는 별명을 얻고 교수님의 추천으로 바로 회사에 들어가게 됐어요. 제가 들어간 회사는 당시 임금이 밀려있어서 연출부가 마비 상태였어요. 그때 막내인 저와 총감독 두 사람밖에 없었죠. 그 덕에 저는 빠른 시간 안에 현장 분위기를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많은 작품을 찍었는데, 찍을 때마다 대박이 나니까 정말 눈에 뵈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 저에게 영화를 제작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투자자와 배우 사이에 미세한 신경전 같은 게 있었는데, 제가 그걸 견디지 못하고 사채를 끌어다 회사 하나를 차려버렸어요. 24살의 머리가 영악했죠? 성공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고선 그 돈으로 배우들에게 엄청난 로비를 했죠. 성공이 눈앞에 막 펼쳐질 것 같았는데 계약 직전까지 갔던 배우의 출연 고사로 저는 한순간에 망했죠.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았어요. 세상은 말이죠. 내게 이익이 안 되는 일이나 사람과는 절대 가까이 하지도, 얽히지도 않으려 해요. 수많은 군중 속 적막감을 아세요? 결국 스스로 생명을 끊으려고 했어요. 그러나 주님이 다시 기회를 주셨어요. 깨어났을 때, 제 곁을 지키신 어머니가 보였어요.”
성공을 꿈꾸었지만 그러나…
– 젊은 나이에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셨군요.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 금요철야를 가게 됐어요. 제가 겪은 일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어떻게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 정말 신기해요. 단순히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삶이 뭘까?’를 생각했을 때, 떠오른 단어가 신학이었어요. 제 빚을 상당 부분 회사가 갚아줘서 저는 보답 차원의 의미로 일을 해야 했고, 좋은 제의를 통해 재기할 수도 있었지만 더는 그 삶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때는 주님의 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죠. 다음 해 서원을 하고 신학교에 바로 입학했어요. 그게 불과 6개월 만의 일이었어요. 멋모르고 간 첫 사역지에서 들은 ‘가나의 혼인 잔치’ 얘기에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는 곳에서 주님이 나를 쓰시기 원하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어요.”
– 그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생명의 변화의 의미를 알고 계셨나요?
“당시 저는 그 변화를 미라클 메이커(기적을 일으키는 사람) 정도로만 알았던 것 같아요. 기적이 복음이고,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예수님 믿으면 잘 되고 복음에 이바지 정도하는 것인 줄 알았어요. 주님을 만난 2004년부터 2015년까지의 인생이 그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제가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던 저는 ‘종교’의 범주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발견해 제 무대만 펼치고 있었던 거죠. 제 자아숭배의 끝판 왕이었던 대형 교회의 사역을 내려놓지 않으면, 복음은 한낱 추억에 지나지 않겠더군요.”
– 목사님의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는 주위 사람들을 많이 놀라게 했을 것 같은데요.
“친구처럼 지내는 아내는 제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다 알았고, 어떤 결정을 내려도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편이에요. 남편이 한 단체 대표라서, 교회 담임이라서가 아니라 저와 동일한 부르심으로 섬기는 사람이라 걱정이 안됐어요. 오히려 저는 제 삶을 정직하게 나누었을 때, 팀원들이 떠날까 두려웠어요. 그런데 염려와는 달리 복음 안에서 자신의 죄 된 실존을 먼저 본 지체들이 오히려 저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어요. 완전 성화의 삶을 꿈꾸며 산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간음’이라는 죄의 열매를 짓기 직전까지 간 저를 보며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선 단 한순간도 복음을 살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죠. 어제는 어제의 믿음으로 오늘은 오늘의 믿음으로. 회심은 날마다였던 거죠.
그 후 저는 ‘머스트커뮤니티교회’를 개척했어요. 벌써 3년이나 됐네요. 몇몇 성도들은 제가 복음만을 전하니까 너무 어려워했어요. 복음대로 살고 싶지 않은데, 계속 들려지니까요. 그러나 새해를 맞아 올해 초 5박 6일간의 느헤미야52기도를 한 후 달라졌어요. 제게는 머스트워십과 머스트커뮤니티교회가 별개의 단체가 아닌데도 분리하며 생각하던 성도들이 있었어요. 올해 머스트워십이 특별복음집회를 준비하면서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을 초대할 때, 성도들 몇이 핍박을 받았다고 해요. 그 시간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증인에게 고난과 박해는 피할 수 없고, 복음으로 인해 오는 저항이 싫어 전하는 자를 핍박할 수밖에 없는 것을 성도들이 보면서 교회와 워십을 하나 되게 하셨어요.”
교회 개척 통해 복음을 영화롭게
-머스트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must, 머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have to, ~해야 한다’잖아요.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죠. 우리의 최선과 열심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사명자로, 십자가 복음으로 결론 난 예배, 십자가 복음의 증인 된 제자를 가르치고 파송하는 교회로 우리를 부르셨죠. 우리 교회의 비전이 조금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이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을 부르실 때 하신 말씀이잖아요. 교회 개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주일에 신약으로 강해 설교만 하니 주위 분들이 저희를 ‘신학생이냐, 1등 자녀들만 있는 것 같다’라고 해요. 그래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어떻게 멈출 수 있겠어요. 교회 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다시 모여 주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는 삶이 우리의 삶인거죠. 교회에서 일만 하다가 지칠 때 많았잖아요. 이전에 배어있던 모든 종교의식을 벗어버리고 싶었어요. 이제는 열방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이전과는 다른 영혼의 소생함을 경험하고 있어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성도들이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전도를 해요. 선교사로 살고 싶다며 몇몇 사역자들도 우리 교회로 왔어요. 저는 월급을 줄 수도, 좋은 방 한 칸 내어줄 수도 없는데도 말이죠.”
<이상 200호에 게재>
– 교회가 이미 헌신된 공동체네요. 최근 머스트워십도 선교단체로 부르심을 확증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사심을 내려놓으니 복음 안에서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예배하기 힘들어하는 세대에게 그들의 취향과 수준에 맞춘 음악들을 예배에 접목해서 예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예배 사역인 줄 알았어요. 우리의 느낌과 감정의 충만함, 시원함이 일시적인 환기는 될 수 있겠지만, 결코 존재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우리가 음악에 실패하고 대중들에게 실망을 줄 수는 있지만, 복음을 노래로 전할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반응하고 주님께 돌아온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예배자의 삶이 아닐까요?
지난 2년간 복음만을 선포하면서 우리 머스트워십의 정체성을 주님이 드러내 주셨어요. 다른 지체들은 생각이 달랐겠지만, 적어도 저는 다른 단체들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제가 딱 봐도 잘 정돈된 얼굴이잖아요?(웃음)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어요. 최대한 옷을 단정히 입어보기도 하고, 심지어 세수를 안 해본적도 있어요. 외형적으로 복음을 흉내 내는 게 아닌데도 말이죠.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곳이 바로 도시고 각자 삶의 터전에서 복음을 노래하는 ‘도시 선교사’로의 부르심을요. 학생이면서 선교사, 직장인이면서 선교사, 주부면서 선교사.”
– 그들을 다시 파송할 때, 걱정은 없으신가요?
“왜 없겠어요. 늘 있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사람들이니까요. 저 자신부터 그렇고요. 매일 삶을 온라인에서 공유하고 일주일에 두 번 모여서 말씀 기도를 하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나눌 때, 질문과 자기반성과 절망은 늘 있어요. 지금 있는 이 교회 안에도 카메라가 3대 있어요. ‘코람데오’라고 불리는 이 캠은 저희가 하나님 경외함을 입술로만 고백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믿음의 삶을 살면서 날마다 저를 점검하고 싶어서 점검표를 매뉴얼화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에 복음을 살아내는 능력은 말씀에서부터였어요. 이전에는 율법적으로 말씀 앞에 서야 하니까 말씀기도 시간을 가졌다면, 지금은 모두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해서 그 시간을 가져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눈속임만 대충하고 산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끝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최근 기도에 관해 말씀을 나누면서 지체들의 기도제목을 봤어요. 그런데 우리의 기도가 마치 의인들이 구하는 기도 같았어요.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긴 하지만, 우리의 작은 필요들조차 구하지 못하고 의젓한 맏아들처럼 서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기도제목을 보니 제가 먼저 맏아들 노릇을 했더군요. 지금 누군가 제게 ‘당신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바른 믿음인가는 오직 주님이 아시는 거잖아요. 하루에 수십 번도 넘어질 수 있는 그런 나를 세우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에 너무 신비하고 놀라워요. 저와 공동체가 낙오자 없이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주님을 만나 뵀으면 좋겠어요. 믿음의 완주를 하고 싶어요. 결승선을 함께 통과 하고 싶어요.” [복음기도신문]
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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