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호 / 믿음의 삶]
휴가 기간 내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말씀 묵상과 복음일기를 미뤘다.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넘어갈 가벼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내가 진리 자체를 거부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도원에서 10년간 생활했다. 지금은 하루도 주님을 찾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그때는 어떻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예배를 드릴 수 있었을까? 그건 내 믿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낙담이 확 밀려왔다. ‘정말 내 삶에서 복음이 실제가 될 수 있을까? 예전으로 돌아가면 나는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마음이 어려울 때 주님은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조건 없이 사랑하시고, 내 마음에 소원을 두시고 주님이 내 삶의 이유가 되겠다는 믿음을 주셨다.
지금 재학 중인 헤브론선교대학교에서 5박 6일 동안 성경일독학교가 열렸다. 오직 약속의 말씀만을 붙들었다. 내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시간이 되도록 구했다. 주님 없이는 내가 얼마나 소망이 없는지 내 심장에 인 쳐 주시도록 간절히 구했다. 그러니 주님이 더욱 궁금하고 사모되었다.
주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창세기부터 사람은 불순종하고 반역하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구원자를 보내 우리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신 사랑의 하나님이셨다.
내가 중심이 되어 바라보던 성경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지 알게 되었다. 노아의 홍수 속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다시 한번 주께로 돌아올 기회였다. 설교 말씀으로 들을 때와 달리 성경 전체 내용을 복음의 관점으로 보니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농도가 달랐다. 하나님의 마음이 열려있는 듯 보였다.
말씀을 듣는 시간 외에 식사시간에도 기도를 이어나갔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하나님도 섬기고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우상도 섬겼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었다. 죄인이 아니라고 했던 내 마음을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하나 비추시고 여시고 찢으셔서 말씀을 믿게 하셨다.
하나님의 관점을 보게 한 성경
요나서 말씀을 통해 복음이 실제 되지 않고, 선교를 막고 방해하는 것이 바로 나라는 것도 보았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이웃을 사랑하시기에 나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순간마다 나를 부인하며 내가 죽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삶인데, 이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십자가의 도를 통하여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진정한 보화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나는 이 보화를 내 것으로 가지려고 나의 가진 모든 것을 파는 중이다.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거룩한 신부된 교회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왜 주님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셨는지 알겠다. 이 자리가 결국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시작하신 이가 주님이시고 이루실 분도 주님이시다. 일평생 주님만을 더욱 사랑하는 자 되도록 구한다. [복음기도신문]
허은미
<저작권자 ⓒ 복음기도신문 > 본지 기사는 열방을 품고 기도하는 분들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복음기도신문]을 밝히고 사용해주세요. 활용하신 분은 본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gnpnews@gnm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