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내 삶의 전부가 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내 삶의 주인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에 대한 처절한 절망을 경험하기까지는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실 수 없었다. 마침내 기도의 자리에서 그 주님을 만났다. 그리고 주님을 진정한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된 최종일 목사를 만났다.
– 복음의 삶을 누린다는 것은 복음을 지식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서 2장 말씀처럼 그 진리가 내게 실제 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의 복음이 실제 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기 전의 이야기를 좀 나눠야겠네요. 함께 믿음으로 교제하고 있는 한 분이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어요. “전도사님, 소개할 훈련이 있어요. 한번 참여해 보세요” 저에게 대뜸 복음학교라는 곳을 소개했어요. 당시 저는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사역을 잠깐 쉬고 있을 시기여서 어렵지 않게 참석하기로 결정했어요. 아무 생각도, 준비도 없이 갔어요.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집회였어요. 처음에는 조금 이상한 곳에 온 것 아닌가 싶었어요. 나름 은혜 받았지만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대신 훈련을 받으며, 열심히 필기한 강의내용이 훌륭한 설교노트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훈련을 마친 이후, 설교 때마다 그 복음노트를 가지고 활용했어요. 그런데 쉽지 않았어요. 늘 버벅거리는 거예요. 복음에 관해 잘 정리된 내용이었는데 제가 활용을 못하고 있었어요”
– 강의 내용을 잘 정리했는데도 활용을 못한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다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그 무렵, 교회를 개척해야 할지 고민을 했어요. 아내는 제가 결정하면 전적으로 순종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함께 기도를 시작했어요. 하나님께 말씀해달라고 구했어요. 수시로 교회 예배당에 앉아 기도했죠. 3개월이 지나자 너무 답답해서 20일을 작정하고 삼각산에 올라가 밤 기도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예배당에 앉아 기도할 때였어요. 주님이 저의 믿음 없음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곧바로 돌이키기로 결단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나님. 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어요. 다음 날 아침, 바로 아내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날 저녁에 입주할 예배당을 계약했어요! 지금 이곳이 그때 주님이 인도해주신 예배처소에요.
하나님의 일은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더군요. 이것 때문에, 누구 때문에, 뭐가 안돼서. 그게 아닌 거죠. 믿음으로 드렸을 때 주님이 이끌어 주셨어요”
교회개척을 결정하다
개척을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을 굳게 신뢰했던 아내도 복음학교에 다녀왔다. 아내는 훈련과정을 마친 이후, 뜨겁게 반응했다.
– 사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 아내는 제가 복음학교 다녀온 지 1년 반이 지나서 딸과 함께 참여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복음학교를 다녀오더니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응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예요. 제가 은근히 걱정이 될 정도였어요.
마치고 돌아온 주일 오후예배 때 간증을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저는 복음학교 다녀와서 설교도 쉽지 않았는데, 아내는 십자가 복음이 자신에게 실제된 내용을 정리한 ‘나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복음에 대해서 구슬을 꿰듯이 선명하게 나누는 거예요. 저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저는 당시 교회에서 나의 복음을 한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었거든요”
– 충격이면서도 도전이 되셨겠어요.
“제가 복음에 직면한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어요. 교회를 개척한 지 3년 정도 지났을 때, 아내가 저에게 공동체 훈련에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권했어요. 6개월 과정의 복음사관학교라는 곳이었어요. 저도 그런 시간을 통해 내게 예수님이 전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어요. 나로서는 그 어떤 생명도 살릴 수 없다. 그래서 예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나는 그 누구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내가 정말 바라는 것도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런 간절한 소망을 품고 훈련센터가 있는 강원도에 갔어요. 도착해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여기에 하나님이 부르신 게 맞다면 말씀을 주세요” 기도하는데 주님이 한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셨어요.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큰집에는 여러 가지 그릇이 있는데, 그중에서 주인이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면서 그 얘기를 했어요. 놀랍게도 아내도 아침에 새벽기도 때 그 말씀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내에게 한 가지 더 나눴어요. 이곳의 모든 권위에 100% 순종하기로 하나님께 고백했다고요”
나의 간절한 소원은 주님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
– 시작부터 결의가 대단했군요.
“저는 여기서 끝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더는 목회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훈련이 시작되고 한동안 이유 없이 아팠어요. 소화가 안 되고, 머리도 아프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침으로 손을 따도 안 되고. 너무 힘들어서 학교 측에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요청도 했어요. 그런데 안 데려가 주시는 거예요. 이유가 있었겠죠. 서운한 마음이 있었지만 순종하기로 했죠. 힘들었지만, 시간만 나면 기도실에 가서 주님께 엎드렸어요.
2개월이 지나가는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물어보시더군요. “너의 주인이 누구냐?” 저는 고민할 것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어요. “과거에는 저였지만, 이제는 주님이십니다”
또 바로 물어보시더군요. “너의 가정의 주인은 누구냐?” 동일한 대답이었죠. “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주님이십니다. 아내와 자녀들은 더는 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또 한번 물어보셨어요. “그러면 교회의 주인은 누구냐, 누구 것이냐?” “예, 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고백을 하는데 갑자기 회개가 터져 나왔어요. 얼마나 회개하면서 울며 기도했는지 몰라요”
주님은 복음에 대한 지식적인 동의가 아니라, 실제된 믿음의 순종을 그에게 요구하셨다. 복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그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순종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끝까지 자기의 왕 된 자리를 포기하지 않던 그의 주인이 되어주셨다.
– 정말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군요.
“그렇게 기도실을 나오는데 학교 관계자가 저를 병원에 데려가 주셨어요. 시내에 있는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어요. 피를 뽑고 엑스레이 찍고, 소변검사 하고 여러 가지를 검사했어요. 다 마친 이후,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 거예요. ‘정상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어요. 저는 여전히 아프고 나아진 게 없었어요. 그러나 입을 열어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고백했어요.
주님은 또 다른 사건으로 제 마음을 확정시켜 주셨어요. 아웃리치를 가기 위해 재정을 구했지만 다 채울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수백만 원에 이르는 팀의 아웃리치 비용을 그날 다 채워주셨어요. 재정이 채워지고, 병원에 오게 되고, 검사를 했는데 정상이라고 하고.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셨네!’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더군요.
저는 아웃리치를 다녀온 이후 확실히 결론을 내릴 수 있었어요. 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고, 여기 훈련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이 믿어졌어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복음 훈련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많은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어서 찾아오잖아요. 특별히 교회를 섬기는 입장에서 주님에 대한 완전한 의뢰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주님이 제 내면의 고민을 정리해주신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런 고민 안하도록 도장을 찍듯 매듭지어주셨어요”
도장을 찍듯 믿어진 하나님의 인도하심
–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개척할 때, 정확한 비전은 없었지만 교회의 사명은 바로 증인으로 서는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그리고 2018년도에 주시는 말씀과 표어를 구했을 때, 스가랴서 8장 23절 말씀을 주셨어요. ‘복음의 증인 한 사람’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그 사람, 바로 증인을 보고 따라가는 거예요. “우리도 함께하겠다, 우리도 함께하겠다”하면서요. 이 말씀을 주셔서 1월에는 거의 이 설교만 했어요. ‘복음의 증인’을 잊지 않으려고요. 그러나 2월이 되고 3월로 넘어가면서 그 말씀이 제 마음에서 잊혀져갔어요.
그 무렵 인천에서 ‘한국교회 회개’를 주제로 하는 큰 집회가 열리게 됐는데 집회 진행 측에서 제게 간증을 요청하셨어요. 그땐 ‘믿음의 증인’이란 올해의 표어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어요. 그저 저는 어떤 간증을 사람들 앞에서 해야 하나, 그런 것으로 고민을 했죠. 기도하면서 준비했어요.
집회 날이 되어 강대상 앞에 맨 앞줄에 앉았어요. 긴장이 되잖아요. 원고를 꺼내놓고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 여기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해야 합니다. 제가 잘못해서 하나님이 부끄러움 당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렇게 고백과 함께 기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2018년 우리 교회 표어가 생각이 났어요.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지는 교회. ‘어? 지금 내가 복음의 증인으로 서는 거네?’ 갑자기 그 생각이 나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말씀을 주신대로, 나를 먼저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주시는 거구나. 그 누가 아닌 나를 먼저!’
깨달아지는 순간, ‘붙잡아주세요, 뭐 해주세요’가 아니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외쳤어요. 엄청 큰 은혜를 주셨어요. 올라가서, 담대히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셨어요.
육신을 입고 있어서, 순간순간 육신을 따라가고 순종하기 싫어하는 존재를 봐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한 번씩 건드려주셔서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죠. 그럼 또 그 은혜로 가는 거죠, 사실은. 그 은혜가 없으면 못 살죠”
증인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최 목사는 주님이 증인으로 세워주실수록, 자신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 그 깨달음이 어떤 순종으로 이어졌나요?
“사실 처음 복음 훈련을 받으면서 ‘나의 복음’의 의미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나의 복음을 하는 목적을 정확하게 몰랐어요. 그러다 보니 정확하게 내가 죽은 십자가를 믿음으로 화합하지는 못했죠. 그러나 복음사관학교 훈련을 통해 옛 생명의 죽음의 시간을 통과했어요.
하나님께서 나 자신이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면서 ‘나 정말 죽어야 하는구나. 그런데 죽었구나’를 알게 하셨어요. 이 과정을 겪으며 내 옛 생명에 대해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 같은 시간을 보냈고 이때 ‘나의 복음’이 제게 실제가 됐어요”
<이상 복음기도신문 188호 게재>
“저는 교회에서 내게 복음이 어떻게 실제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에는 나누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선교와 중보기도훈련 과정을 섬기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어요.
오만팀 안에서 팀원들이 자신에게 실제가 된 복음을 나누며 변화가 된 것을 본거예요. 복음을 만나기 전 자신의 죄인 된 모습을 고백하기 두려워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가정에서 나의 복음을 나누고 남편에게 굴복 안하고 끝까지 순종 안하던 사람들이 남편에게 무릎을 꿇는 걸 봤어요.
그래서 어느 날 설교하다가 “내가 지금 중보기도학교 섬김이를 하는데, 섬기는 팀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간증을 하게 됐어요.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설교하던 중에 저도 성도님들 앞에서 나의 복음을 선포했어요.”
순종하면서 알게 된 ‘나의 복음’의 의미
“그러면서 얘기를 덧붙였어요. 복음학교를 갔다 오는 것으로 만족하고, 무엇인가 됐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을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제가 나의 복음을 한 이유는 나의 복음을 나누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 경외함을 확증하고 믿음으로 나의 옛 생명이 이미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했다는 것을 증인들 앞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안에 있는 고집과 잘못된 습관과 나도 모르게 나오는 여러 가지 복음을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 드러난다는 거예요. 복음을 만났고, 그것이면 충분하고 전부가 되기를 원하지만, 내 안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나는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뭔가 된 것처럼 그런 인식을 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렇게 증인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렇구나. 나는 완전히 소망이 없는 존재구나’ 더 확실히 알게 돼요. 내 안에 있는 복음을 방해하는 것들을 천국 가는 날까지, 하나님 앞에 가는 날까지, 주님 오시는 날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이 드러내 주실 거예요. 내 스스로가 드러낸다고 해서 드러내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끊임없이 작업해주셔서 드러내시겠죠.
그래서 사람들 앞이 됐든 어디가 됐든, 내 존재가 드러날 때에 내가 절망하고 수치가 드러날 때만이 내가 더 주님 앞에, 복음 앞에 온전히 설 수 있겠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어요.
조금 더 낮아지고 겸손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허락해주신 것 같아서 너무너무 감사하죠. 어떤 사모님이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목회자가 먼저 철저하게 깨지고 드러나야 한다고. 맞는 말이죠”
목회자가 먼저 철저하게 깨어져야 한다
복음은 이처럼 우리 존재를 바꾸고, 또한 삶의 소소한 것들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했다. 삶은 감사가 넘치게 되었다.
“주님이 오래된 승합차 주셔서 2년을 끌고 다녔어요. 그런데 차의 뼈대가 삭아서 주저앉게 됐어요. 결국 폐차를 하고 말았죠. 그런데 자동차수리점을 운영하는 처가의 형님이 전화를 주셨어요. 혹시 승합차가 필요하냐고 물어보셨어요. 제가 이전에 사용하던 차보다 더 오래된 차였어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가져 왔어요.
그 사건으로 강대상에서 하나님이 주셨다고 얼마나 간증을 하고 자랑을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딱 한 달이 지났는데, 다른 차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꾸 좋은 차가 보이고, 그때부터 이 차의 안 좋은 것들이 계속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수동이라 불편하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계속 흠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차가 싫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인간이 참 간사하죠. 불과 몇 일 전에는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도님들 앞에 간증을 해놓고, 이제는 차 탈 때마다 투덜거리고 있는 거예요, 계속. 아내가 듣다가 한마디 했어요. “목사님, 왜 그러세요? 차 싫으면 다시 갖다 드리세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그때 고백하게 된 것이 있어요. “아니야, 아무리 좋은 차가 있어도, 그 차보다 더 좋은 차는 이 차야. 왜? 그 이유는, 새 차가 좋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차가 제일 좋기 때문이야”
그런데 차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똑같아요.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 똑같은 시각으로 보면, 좋은 것은 큰 것, 많은 것, 비싼 것, 흠 없는 것. 그런 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 어떤 것보다도 제일 좋은 것은, 나를 가장 잘 아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상황에 가장 정확하게 맞게 말이죠. “그렇구나,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날 이후로는 저 차를 탈 때마다 다시 감사가 넘치게 됐어요.
그런데 복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은혜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하게 돼요. 어떤 때는 약간 힘들 때도 있고 부딪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이 은혜를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돼요. 저도 복음을 몰랐다면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여전히 세상 속에서, 세상의 방법으로 살고 있었을 텐데, 이 은혜를 누리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해요!”
– 정말 놀라운 믿음의 고백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성도의 고백이네요.
“복음 만나고 나서 내가 계속 교회를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고민에 앞서서, 개척을 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교회잖아요. 그러니 하나님이 다른 허락하심이 있으면 또 말씀해주실 것 아니겠어요? ‘아, 내가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구나’
우리 교회를 2018년에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지는 교회로, 한 분 한 분을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복음의 증인으로 살기위해서 맡겨진 이 자리를 지켜요. 딴 거 없이 복음 앞에, 말씀과 기도 앞에 나아가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더 이상 헛된 소망, 헛된 꿈, 다양한 어떤 것을 생각하지 않아요. 오직 주님이면 충분해요. 정말 주님이 해주셨어요”
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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