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독수리 타법을 벗어나며 깨달은 ‘십자가의 자리’

일러스트= 이수진

[185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컴퓨터를 만난 지가 어언 30여 년이 되어간다. 처음 만난 컴퓨터가 286이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이기에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컴퓨터는 일상이 되었고 한 몸이 되었다. 비록 독수리 타자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크게 불편함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주님은 이 독수리 타법에서 벗어날 것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몇 번 타자연습을 하면 독수리를 벗어나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럴 기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젊은 지체들이 이 부분을 잘 섬겨주어서 오히려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달랐다. 복음의 내용을 정리할 마음을 주셔서 강의내용을 녹취하려는데 영상 10분을 3시간에 걸쳐서 받아 적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결단했다.

독수리를 탈출하려면 먼저는 내가 지금까지 익숙하게 사용하던 독수리 타법에 대하여 죽음을 선포해야 했다. 30여 년 익숙한 손가락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자판이 익숙해지기까지 절대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에 손을 대지 않기로 결정했다. 문서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볼펜을 사용했다. 글씨가 엉망이어서 정말 글씨 쓰는 것이 싫었지만 이번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만 되면 타자 연습을 시작했다. 자리 연습, 낱말 연습, 짧은 글 연습, 긴 글 연습.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한계가 왔다. 별로 느는 것 같지도 않고 눈은 빠질 것 같고, 손가락은 쑤시고, 손목은 석고처럼 굳어버린 것 같았다. ‘꼭 이래야 하나? 내가 안 해도 다른 지체들이 하면 되지. 이 나이에 무슨 타자 연습이야?’ 수많은 생각의 공격들이 올 때마다 옆에서 지체들이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솔직히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 손가락이 어느 정도 움직이고 타자 소리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끝까지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숙달된다는 지체들의 격려로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타자 연습을 하면서 주님께서 한 가지 알게 하신 것은 ‘자리’였다. 자기 자리에 있어야 할 손가락이 움직이는 순간 자리를 놓치고 엉뚱한 자음, 모음을 누르게 되고 글자가 완성되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말씀이 생각이 났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시 104:9)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었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여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6~7)

경계를 정하여 놓으신 하나님. 죄가 생명에 들어오자 그 경계를 허물고 싶어하는 인간.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경계를 지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생각났다. 결국 자기 처소를 지키지 못한 천사를 하나님은 심판하셨다. 왜냐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므로 그 이웃 도시들까지 같이 음란하여 다른 육체를 따라가게 하여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게 하는 거울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런 사탄의 모습까지 작은 영역이라고 생각되고, 소홀히 여기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내 마음을 다시금 보게 하시면서 정신을 차리게 하셨다.

자판의 손가락 자리에서 조차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녹아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제 약 두 달이 되어 간다. 영상을 보면서 녹취를 하는 정도까지 주님이 독수리를 탈출하게 하셨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주님에게는 별게 아닌 것이 없음을 다시 보게 해주셨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십자가의 자리. 주님이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신 것처럼 나는 오늘도 십자가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결단한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자기 자리를 떠나는 순간 내가 의도하지 않는 글자가 되고 다른 문장이 되듯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오직 십자가의 자리임을 다시 기억한다. [복음기도신문]

김이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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