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63세. 인생의 수많은 일을 겪고, 사람들을 마주했을 텐데도 복음을 나누어 달라는 자리는 늘 쑥스럽지만 감사하다는 김숭년 선교사.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명예와 성공만을 목표로 살면서 35년간 의지해온 마약을 끊게한 복음의 능력. 스스로는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웅덩이에서 기적같이 건져내주신 유일한 구원자요, 치료자요, 영광이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자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리라면 어디든 예스(Yes)!로 답하며 순종하기로 했다. 그 순종의 걸음으로 현재 자리한 곳이 한국에서 영어로 복음을 나누는 헤브론선교대학교의 단과대학인 교육선교대학이다. 그는 이곳에서 교육선교사로 섬기고 있다. 지금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학기 동안 복음을 영어로 가르치는 집중훈련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순종의 걸음 이후, 손자뻘 되는 청소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비신자뿐 아니라 신자에게도 복음만이 능력임을 확신하게 됐다고 김숭년 선교사는 말한다.
– 어떻게 이 같은 순종의 걸음을 걷게 되셨나요?
“저는 원래 마약에 빠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지요.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마약을 끊기까지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다른 약물로 치료를 받아요. 그마저도 실패하면 폐인이 되거나 죽는 게 다반사죠. 오직 복음을 통해서 마약에서 해방된 저로서는 정말 그들에게 복음을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주님이 허락하신 자리가 최고의 자리이고, 누구보다 다음세대에게 복음이 필요해서 저를 부르신 거라면 그 자리도 물론 아멘이죠.”
복음 만난 이후, 마약중독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 쉽지는 않은 결정이셨겠군요.
“지난해 ‘다시복음앞에’라는 대회가 열려서 한국에 들어왔을 때 한 선교사님을 통해 다음세대를 섬기자는 권유를 받았어요. 당시는 6개월 공동체 훈련인 복음사관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간 터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가자마자 다음세대 신앙훈련과정인 ‘빛의열매학교’ 진행자로 부르심을 받게 됐어요. 요청한 선교사님께 ‘학생들의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조심스레 물었어요. 듣고 정말 당황했어요. 제가 좀 더 일찍 결혼했으면 있을 수 있는 손자들 나이인 거예요. 아니, 자기 부모들보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가 학교를 진행하면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기도를 해보겠다고 답을 잠시 미뤘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오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섬겼죠. 그때부터 주님이 다음세대를 향한 마음을 부어주시기 시작하셨어요.”
그 후 여러 차례 진행자와 강사로 이 과정을 섬겼던 김 선교사는 교회 안에서 자란 다음세대 안에 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다음세대는 믿음 좋은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왔음에도 음란 영상물과 마약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주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이것 봐, 너 지금 다음세대들이 어느 길로 향하고 있는지 보고 있지? 교회 안이 이렇다면, 세상은 어떻겠니?’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 내 꼴 나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철저히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한 후, 복음으로 새롭게 살고 싶다는 다음세대를 보면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됐어요. 나이가 많은 저 뿐만 아니라 나이가 적은 아이나 남자, 여자, 어느 민족이든지 상관없이 존재적 죄인의 문제는 똑같잖아요. 유혹의 문제, 갖고 싶고, 되고 싶고, 과거와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들까지도. 이 모든 종노릇하는 것에서부터 해방시켜 주신 것이 복음이라는 것을 저는 확신하게 됐죠. 그래서 지금 이 학교에 섬김이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기쁘게 ‘아멘’ 했어요.”
교육 선교사의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복음으로 다음세대를 섬기는 자가 아니라 다음세대와 마찬가지로 복음 앞에 서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됐다. 강의를 준비하고, 들으며 주님 만나기 전과 후의 삶을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을 갖고 있다. 2004년, 미국에서 총체적 복음을 들을 수 있는 훈련학교가 열렸지만, 세상에서 방황하던 그는 쉽게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마음을 바꿔주셨다.
– 그동안의 삶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3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어요. 어머니가 그때 당시 굉장히 신여성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삶을 다 정리하고 누님, 저 이렇게 셋이서 미국에 이민을 왔거든요. 그때가 1966년이었는데, 제가 10살쯤 됐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2개월 반 동안 화물선을 타고 갔죠. 미국으로 곧바로 가는 선편도 없어서 브라질을 거쳐서 갔어요. 저는 삶의 목표가 오로지 세상적인 성공이었어요. 세상에서 좋다고 말하는 모든 번쩍번쩍하는 것을 하면 성공인 줄 알았죠. 14살 때부터 마약을 시작했는데, 마약을 하면 곧바로 돈, 술, 음란이 따라와요. 처음에는 정말 왕이 된 기분이었어요. 겉으로는 잘나가는 사업가, 최고 의리의 사나이, 교회에서는 또 모범적인 집사로 살았죠.
이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어요. 삶이 지쳤다고 표현하는 게 맞아요. 정말 목이 마르고 지쳤어요. 새롭게 삶을 시작해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오히려 더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빠지더군요. 저는 늘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구덩이에서 쉽게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세요? 이 손만 조금 더 뻗으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는 기분을요.
다시 빠지는 그 깊이는 더욱 깊어만 갔어요. 결코 저는 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이렇게 피곤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어느 날은 정말 죽고 싶어서 총을 머리에 겨누기도 했죠. 제가 기도를 안 해봤겠어요? ‘왜 기도를 안 들어주시나? 이러다가 내 삶이 끝나는 거 아니야?’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이 상태로 제 삶이 끝나는 게 싫었어요. 잘 모르는 주님인데도 엉엉 울면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이 제게 ‘모든 상황을 내가 붙들고 있어, 신뢰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정말 새롭게 제 삶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때 미국에서 복음학교 소식을 듣게 됐어요. 처남이 그 훈련과정을 마치고 총체적인 복음 앞에 서면서 제게 이 복음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를 전해줬어요. 2005년쯤인데, 그다음 주 한국에서 복음학교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죠. 아직도 그때가 선해요.”
성경책 한 권, 조그만 가방에 몇 가지 옷 짐만으로 한국을 향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어린아이 같이 비행기 안에서 볼을 꼬집기도 했다. 분명 주님이 특별한 것을 준비하셨을 것 같았다. 그랬다. 정말로 기쁜 소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다.
복음이 변화시킨 사람을 보면서 복음 앞에 서다
– 훈련과정을 통해 십자가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되셨나요?
“첫날 월요일 오후부터 마치는 토요일까지 5박 6일간 저는 눈물, 콧물로 시간을 보냈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더군요. 오랜 세월 교회를 다녀도 주님을 모를 수 있더군요. 28살, 늦깎이 장가를 간 저는 처음 아내 때문에 교회를 나가게 됐어요. 첫 자식을 낳았는데, 아들인 거예요. 너무 기뻐서 아내에게 감사헌금을 드리라고 했죠. 두 번째도 아들이었어요. 이번에는 그냥 헌금만 낼 수 없어서 한 번 교회를 나갔는데, 완전 코가 끼었죠. 자연스럽게 집사가 되고, 구역장도 됐어요. 복음에 대해 무지하고 무시하고 무관한 삶을 살았는데도 말이죠. 총체적 복음을 듣고 난 후에 저는 완전히 주님을 믿게 됐어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죠. 마약을 해야지만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죠. 어떻게 단번에 마약이 끊어져요. 때로 유혹이 있었지만, 주님이 저를 강권적으로 붙들어 주셨어요.”
그 이후 드리는 모든 예배와 모임은 기뻤다. 그런데도 돈의 욕심, 음란한 생각, 세상과 타협하는 지점, 정죄, 시기, 분노는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었다. 주님께 자기 생각, 자기 삶을 온전히 드리지 못한 것은 여전히 포기 못하는 1%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 주실 때마다 다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만 되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 믿음의 걸음을 걸으면서 생기는 절망감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으셨죠?
“어느 날은 주님께 묻기도 했어요. ‘주님, 사우나 후, 가벼운 맥주 한 잔 정도는 왜 안돼요? 이전처럼 술 취하거나 즐기는 게 아니잖아요.’ 세상에서 여전히 발을 빼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림의 떡처럼 누리지 못할 복음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셨을텐데. ‘왜 나는 복음이 실제 되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12년간 새로운 광야를 걷게 됐어요. 이전에는 이유도 모른 채 혼자 걸어야만 했던 광야라서 너무 버거웠어요. 그런데 이 12년의 광야는 힘겹지만,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죠. 넘어져도 위로하시고 일으켜 주시는 주님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도대체 주님은 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살려두셨을까? 내 삶에 어떤 목적인 있으신 걸까?’라는 두 질문을 가지고 6개월간의 공동체 훈련인 복음사관학교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부어주셨어요. 마치 제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았어요.”
더는 돌아갈 수 없도록 38년간의 페인트 사업을 정리했다. 내려놓기 너무 아까워서 집에 돌아가면 생각을 번복하곤 했었다.
그는 ‘돈인가, 하나님인가?’라는 질문으로 1년간 씨름을 하다 마침내 2016년 8월,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왔다.
38년간의 사업을 정리하고 믿음의 길을 걷다
– 그런 결정을 반대하는 분들은 없으셨나요?
“가족 중 그 누구도 저의 선택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제가 어떤 씨름을 했는지, 하나님을 향한 어떤 갈망이 있는 지 알았거든요. 오히려 저의 순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줬죠.
복음사관학교 면담이 있는 약속 날인 오전 10시에 한국에 도착하기 위해 전날 밤 10시, 미국에서 은퇴식을 마친 후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어요. 강원도 안흥훈련소에 도착했는데 30~40년 된 낡은 건물을 보자마자 든 첫 생각은 ‘와우, 나 정말 죽었구나.’였어요. 강의실에서 잠깐 기다리면서 ‘그리스도만 남는 학교’라는 큰 현수막을 보면서 ‘맞아, 내가 이 삶을 사모해서 여기까지 왔지.’라고 생각했죠. 한 선교사님이 제게 “미국에도 이 훈련이 있는데, 왜 한국까지 왔나요?”라고 질문을 하셨어요. 저는 “주님이 부르셨으니까 왔습니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어요. 미국은 제게 너무 익숙한 곳이라서 사실 의미가 없었거든요. 면담을 마친 후에 숙소로 돌아왔을 때, ‘합격이 안 되면 좋겠다.’라는 마음도 조금 있긴 했어요. 그러나 주님은 힘겹게 살아온 60년간의 모든 생활, 분주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게 하신 후, 제게 일해 주시기 시작하셨어요.”
<이상 복음기도신문 182호 게재>
6개월간의 공동체 훈련을 통해 주님의 완전하심을 봤어요. 완전한 때와 완전한 장소에서 말이죠. 첫 번째, 한국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빨리 듣고, 이해하고, 표현하고, 글로 쓰기까지 너무 익숙하지 않았어요. 두 번째,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는 학교였어요. 무슨 과제가 그리도 많은지, 하루 종일 성경 읽어야 하죠, 기도실에 들어가서 또 기도해야하죠. 세 번째는 정해진 식사시간과 하루 세끼 한국 음식으로만 이루어진 식단. 네 번째는 공동체 생활이었어요. 강의실에서 63걸음만 걸으면 도착하는 좁은 숙소와 정해진 빨래 시간, 양 옆에는 감당할 수 없는 코골이 지체들, 강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창문마다 스티로폼으로 가려져 바깥 풍경을 전혀 볼 수 없는 답답한 상황. 공사판에서 고함치면서 일하던 제게 침묵하라는 규칙까지. 모든 조건이 사실 제게 맞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학교측에 잘못 온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였죠. 여기까지 들으면 완전한 불평이죠? 그런데 이 장소가 완전한 장소가 되게 하셨어요. 어떻게 그랬냐고요? 기도로 모든 것을 바꿔주셨어요.”
그는 견딜 수 없을 때마다 기도실로 들어간 그는 처음에는 5분도 기도하지 못했다. 나의 문제해결을 구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기도하지만, 여전히 교묘하게 소원성취에 머무르던 기도였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주님과 깊은 관계가 맺어지고,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의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기도는 축복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가 되는 축복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되게 하는 축복, 기도의 자리에서
– 어떤 은혜와 깨달음이 있으셨는지요?
“진리가 결론이 되니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이라는 외침이 제게 너무 당연하게 됐어요. 선교완성이 되어야지 주님이 오시니까요. 복음을 통해서 제가 알게 된 첫 번째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철저하고 완전한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이전에는 은혜가 제게 너무 가벼운 말이었어요. ‘할렐루야! 아~ 은혜죠.’ 그런데 이 은혜는요,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주신 은혜예요. 그것도 완전한 희생양으로 내어주신 은혜요. 저의 미국 삶은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뒤돌아 볼 수 없을 만큼 앞으로 돌격하면서 산다고요.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제 삶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시는데요. 와. 그때 주님이 저를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으심을 깨닫게 됐어요.
두 번째는 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게 됐죠. 마약도, 술도 모두 끊었기 때문에 저는 새로운 존재가 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복음 앞에 서 보니 단지 제 삶의 방식만 달라졌을 뿐, 어느 때보다 제 자아가 무섭게 살아있는 것을 보게 됐어요. 한 주씩 지나갈 때, 저의 죄인 됨을 보면서 ‘아~ 인정하죠. 그런데 주님, 제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잖아요.’ 라는 맘이 계속 있었어요. 제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단지 거울로 저를 비추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이 보여주시는 시선으로 저 자신을 보게 됐을 때 그런 고백이 나왔어요.
‘야, 이거 완전 보통 병든 놈이 아니네. 아무 소망이 없네. 끝났네.’ 그렇게나 흔하게 듣던 사형선고라는 말이 완전히 제게 내려졌어요. 도움 받을 때도, 소망을 얻을 때도 없이 완전히 죽은 자가 된거죠. 그런데 이 일을 제 자신이 인정할 때까지, 알아들을 때까지 주님이 기다리시면서 하나하나 보여주셨다는 것이 정말 은혜였어요. 로마서 3장 21절의 말씀이 정말 믿어졌어요. ‘이제는!’ 그렇죠. 이제는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 십자가 복음이 나타나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구나. 상상력이 없으셔서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이신 게 아니지. 나의 모든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받으시고 죽음을 통해 사망 권세를 이기신 후, 완전히 부활하신 생명의 의미가 그대로 제게 다가왔어요. 모든 게 끝났다고 말씀하심이 맞았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준비해 주신 것이 확실했어요.”
이 훈련을 마친 후, 그는 결단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막는 어떤 일이든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으로 주님의 영광을 막아서도 가려서는 안 된다는 결단으로 삶의 모든 여지를 잘랐다. ‘이만큼, 이정도, 대충, 됐다 치고’라는 말은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기로 결단하다
– 정말 막다른 골목에서 복음의 진리가 내게 실제가 될 수 있군요.
“‘진작 주님을 좀 만났더라면…’ 이라는 아쉬움도 있었죠. 그런데 주님 안에서는 절대 늦지 않다는 걸 알아요. 주님 부르신 때가 가장 정확한 시간이에요. 24시간이 정말 긴 시간이더군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요. 어제의 결단이 오늘의 삶을 절대 지탱할 수 없더군요. 오늘도 오늘의 결단으로 새롭게 걸어야 돼더군요. 이제 세상에서 부러운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어요. ‘복음이면 너 충분하냐? 다냐?’ 라는 질문에 이제는 저도 ‘물론 다지! 아니 넘치지!’라고 말해요. 감사라는 말 안에 어떻게 이 은혜를 다 표현할 수 있겠어요? 감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으니 이렇게밖에 표현 못하는 거죠. 앞으로도 제게 필요한 건 은혜면 충분해요.”
그렇게 온전히 주님을 기대하는 김 선교사는 복음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도 전혀 조급하지 않다고 했다. 할 수 있는 한 가지, 주님을 아는 만큼 허락하신 영혼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 함께 씨름을 계속 할 것이다.
“복음의 능력을 믿어요. 모르면서 자꾸 아는 척 하고 싶어 했어요. ‘이제 그런 김숭년은 죽었지.’ 사람들의 인정과 평판에서 저 완전히 자유롭게 됐어요. 자유, 저 정말 무슨 말인지 알아요. 사탄이 제 몸을 두꺼운 쇠사슬로 결박했어요.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 사랑이 사탄 놈의 권세를 박살내셨어요. 결국, 존재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프로그램, 책, 다른 인간의 도움이 아닌 딱 한 가지, 복음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뿐이에요. 죽어도 확신해요. 제가 복음을 체험했거든요. ‘존재를 바꾸지 않고도 얼마든지 새롭게 살 수 있다?’ 노! 절대 불가능해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길 그때부터 주님은 시작하실 수 있어요. 제가 완전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주님만 의지하고 붙들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저를 자유케 하는지 알아요.”
그는 아이들과 얼마 전, 캠프파이어 중 활활 타는 나뭇가지를 보았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서 있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를 묵상했다. 나무뿌리에서부터 공급되는 물과 영양분은 붙어있기만 하면 되고, 결국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 말도 안 되게 가지 자신이 하겠다고 하면 뚝 부러져 땔감으로 쓸 수밖에 없다.
“잘 해도, 못 해도 주님과 같이 해결하는거죠. 결과가 꼭 나한테 좋아야만 주님이 하신 건가요. 그게 무슨 날도둑 심보예요. 복음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복음으로 살면 더 어려운 길 만날 수 있어요. 주님이 통과시켜 주시고 이겨내게 하실 텐데요. 전 이제 오래 살 것처럼 전전긍긍하지 않아요.”
모든 것이 우리의 눈으로 보면 불평할 것뿐이지만 주님은 우리더러 굳게 서 있으라고 하셨다. 이제 그 어떤 상황, 경험, 느낌은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을 수 없다.
– 주님이 주신 비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사업차 미국과 브라질을 오가면서 살았어요. 45년 정도 미국에서, 7년간은 브라질에서요. 포르투갈어를 한국어보다 잘 구사했죠.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니까 언어체계가 비슷한 스페인어도 쉽게 하게 됐죠.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들을 다니면서 이제는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인지 아직도 남미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요. 이것이 단지 저의 원함인지, 주님의 원하심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기도하는 것은 주님이 저를 향한 계획만이 이루어지길 기도해요. 내일 일은 아무것도 몰라요. 일상에서 묵상과 기도가 실제 되어서 주님과의 깊은 관계가 지속됐으면 좋겠고, 마지막으로 다음세대들을 향한 열정을 계속 부어주시기를 기도해요.” [복음기도신문]
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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