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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 아래 (5)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승리의 비결은 우리의 실존을 보는 것이다. ‘나에게 실망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에 대한 털끝만큼의 기대도 접으라. 우리의 실존은 절망 자체였다.
가장 깨지기 어려운 것이 자기 ‘의’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고 나면 이사야처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사 6:5)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낙심’, ‘절망’이라는 말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말인지 알게 된다. 모든 절망의 이유가 부질없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과 능력을 결론 삼게 된다.
낙망 가운데 엎어져 있던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a)
그러자 이사야가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b) 상황은 변한 게 없었지만 자신의 한계에 묶이지 않고 ‘나를 보내 달라.’고 외쳤다.
내 모습, 내 교회,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보면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보았던 엘리야와 이사야는 자신들의 벌거벗은 실상에 묶이지 않고 일어섰다. 엘리야는 낙심 중에 일어나 엘리사에게 가서 기름을 부었다. 그 이후에도 상황은 바뀐 게 없었고,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야의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사야, 그도 톱에 켜 죽임을 당할 때까지 열매 하나 보지 못했지만 충성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죄악의 파도가 그 연약한 교회를 집어삼킬 것 같았던 그때,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하늘의 보좌를 보여 주시고, 눈에 보이는 역사가 실상이 아님을 계시하셨다. 모든 나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철저히, 완전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또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친히 완성될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는 지금도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전진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놀랍게 전진하고 있다.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방해할 수 없다. 우리의 작은 심령 속 하나님의 나라도 전진하고 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외치신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우리를 초청하시고, 만나 주실 그 날은 속히 올 것이다!(2016. 7 메시지 정리)<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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