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머슴이 장로로, 주인이 평신도로 섬기는 아름다운 교회

▶ (위)금산교회 한옥예배당 현재 모습과 조덕삼 장로(좌), 이자익 목사(우)의 모습. 금산교회 내부 ㄱ자 형태. 강대상을 중심으로 왼쪽이 여자, 오른쪽이 남자들이 앉던 자리(출처: 한국기독교회사)
조선선교열전 (10) – 전라북도편·끝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132주년을 맞고 있다. 구한말부터 본격화된 개신교 선교 역사는 문화, 교육, 의료 분야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맥을 같이 하며 한반도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됐다. 우리나라 곳곳의 선교역사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110년 믿음의 유산, 김제 송지동교회

군산과 익산을 넘어 김제에도 교회들이 세워졌다. 김제 서부지역의 송지동교회는 전킨 선교사가 만경강을 건너 1897년 5월 3일 김제 지역에서 처음으로 세운 교회이다. 송지동에 살던 주민들이 군산에서 장을 보고 오던 길에 전킨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고 송지동 문학선 씨 댁 대청마루에서 송원선, 강문성, 최치국, 문학선, 문종삼 씨 외 다수가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다. 이때가 1896년도였다.

그 후 믿는 사람이 늘어나 1897년에 선교사들에 의해 정식으로 교회 설립이 보고됐다. 전킨 선교사가 교회를 돌아보며 말씀을 가르치고, 세례를 베풀었다. 그 후 해리슨 선교사, 불 선교사가 계속해서 교회를 돌아보며 말씀을 전하면서 교회를 부흥시켰다. 특히 불 선교사는 전북지역 교회들을 많이 돌아보며 복음을 전했는데 1937년까지 수시로 송지동교회 당회장을 역임했다. 송지동교회는 110년이 넘게 이어져 오면서 지금까지 교회 분열을 한 번도 겪지 않고 믿음의 유산을 잘 간직하고 있다.

남녀 좌석을 구분한 ㄱ자형 금산교회

금산교회는 호남7인의 선발대 중 한 사람인 미국 남장로교 테이트 선교사에 의해 1900년 설립됐다.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6호에 지정된 이 교회는 테이트 선교사와 조덕삼, 이자익, 박화서, 왕순칠 등의 주도로 1908년 ㄱ자형 한옥 교회를 건축했다. 금산교회의 내부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강단 좌측으로 여신도가 앉고 정면에 남자들이 앉는 자리로 구분했다. 여신도 좌석 쪽에는 차단막을 쳐서 남녀가 서로 보지 못하게 했다. 이 차단막은 1940년경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북서쪽 모서리에 있는 5평 정도의 강단은 2단으로 꾸며져, 결과적으로 3층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전래의 제단구조이면서 동시에 ‘뜰, 성소, 지성소’로 이루어지는 성막의 3중 구조를 상징하며, 복음의 토착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단 뒤쪽으로 목사들이 드나들던 조그마한 쪽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몸을 숙여야 했다. 목회자들은 이 문을 드나들면서 ‘겸손’을 배웠다고 한다.

금산교회의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거상이자 지주였던 조덕삼은 금산교회의 운영에도 많은 후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자익보다 나이도 15살이나 많았고, 금산교회의 설립자였으며,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1908년 장로 피택에서 선출된 사람은 이자익이었다.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해도 권위적인 구습들로 교회 내 차별이 여전하던 때에 주인이 떨어지고 종이 장로가 된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조덕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더욱 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주인과 머슴의 관계가 되고, 교회에서는 장로와 평신도가 될것을 믿음으로 겸허히 받은 것이다.

주인으로 충실히 섬기며 자기 직분을 다하였다. 조덕삼은 후일 사재를 털어 유광학교를 세워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으며, 이자익의 목회를 위해 평양신학교에 보내고 학비 전액을 지원해주기도 하였다.

1910년 조덕삼이 장로로 피택되었을 때는 이자익을 목사로 초빙해 금산교회의 담임목사와 장로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골 작은 교회의 목사였던 이자익 목사는 후에 3회에 걸쳐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미국 남장로교의 테이트, 레이놀즈, 전킨 선교사 등 호남7인의 선발대에서 시작된 전라북도 지역의 선교는 이렇게 전주를 시작으로 군산, 익산, 김제까지 전라북도 전 지역에 미쳤다. 지금도 이 지역의 교회, 학교, 병원 등은 그 발자취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끝> [복음기도신문]

* 다음 호부터는 전라남도 편이 연재됩니다.

참고문헌: <전라북도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의 현황과 의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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