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믿음의 삶은 주님의 부르심에 나를 온전히 드리는 것”

이영숙 권사는 본지 인터뷰 요청에 응하고 나서부터 여러 가지 생각들로 마음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뭘 했다고. 지금도 두려워서 떨고 있잖아. 지금도 100% 전심으로 못나가잖아.’ 그러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평안과 기쁨이 내 삶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 더욱 사실이다. 평생 두려움에 종노릇하던 그런 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걸음이 주님의 인도하심이라고 고백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하나님과의 첫 만남은 언제였나요?

“저는 두 살 때 어머님이 예수를 믿으시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신학공부를 하시겠다고 해서 김천의 한 기도원에 들어가 살게 됐죠.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는데 그때 주님을 만났어요. 기도원에서 살다보니 하나님께 헌신해서 사는 것이 너무 좋게 느껴져 주님께 시집가겠다고 서원했어요. 그러나 아버지가 다시 사업을 하신다는 이유로 기도원을 나왔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는 다니지 못하고, 그런 청소년들을 가르쳐주는 고등공민학교에 다녔어요. 그러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사춘기를 앓던 저는 결국 열여섯 살에 집을 나오게 됐어요.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겠다 싶어 무조건 직업소개소를 찾아갔어요.”

고된 삶을 벗어나려고 한 결혼

– 열여섯 나이에 직업소개소를요?

“네. 처음에 소개 받아서 갔는데 저에게 화장을 시키고 옷을 입히더니 쇼윈도에 앉혀놨어요. 그때까지 기도원에서 살다 보니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었어요. 욕을 해본 적도 없거니와 유행가만 불러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 같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그곳에 앉아있는데 여긴 있으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도망쳐 나왔어요. 그 이후, 가게 청소하는 일에서부터 갖가지 공장들을 다니며 돈을 벌었어요. 그 돈을 모두 집에 보냈어요.”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요?

“엄마는 돈이 없다고 하시면서 피를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어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본 5남매의 맏딸이에요. 월급을 받아 엄마한테 갖다 주면 그것으로 장을 보시는 모습이 좋았어요. 물론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그렇기도 했지만 나중에 복음을 만나고 나서 깨닫게 된 사실은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서 그랬던 거였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제가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르셨어요. 어린 딸이 어떻게 돈을 벌어오는지 물어보실 만도 한데 삶이 너무 팍팍하셔서 그랬는지 묻지 않으셨죠. 한편으로 저의 삶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주님을 떠난 지도 오래였어요. 편하게 잠 좀 자보고 싶었어요.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스물여섯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하고 난 이후에 알게 된 것은 남편이 알콜중독자더군요.”

– 결혼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네요.

“그때부터 또다시 용광로 같은 고통의 삶이 시작됐어요. 남편은 매일 술을 먹었어요. 매일 싸웠죠. 이혼하겠다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는데 갈 데가 없었어요. 친정에 갈 수도 없고요. 게다가 남편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죠. 그렇게 어려움이 생길 때면, 과거의 어려움들이 생각나면서 저를 짓눌렀어요. 저는 태어나자마자 고아원도 갔다가 이웃집, 친척 집을 전전해야 했어요. 버려진 인생 같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어요. 결혼을 했지만 남편도 이렇고…. ‘왜 나는 이혼도 할 수 없을까?’ 생각이 들면서 자살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쥐약을 구해 먹고 누웠어요. 그런데 두 살 된 큰 아이가 저에게 기어오는 거예요. 순간 내가 죽으면 썩기밖에 더하겠나, 살면 이 아이 콧물이라도 닦아 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쥐약을 토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살려달라는 말이 나왔어요. 다시 살아났고, 그 다음날부터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예배를 통해 지난 삶에 대해 회개

– 하나님이 기적같이 목숨을 살려주셨네요.

“예배를 드리면서 지난날의 삶에 대해 회개했어요. 그리고 주님이 제 마음을 만져주셨어요. 남편은 변한 게 없는데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어요. 너무 사랑하면 심장이 아플 정도까지 되는거 아세요? 주님은 그렇게 남편을 사랑하게 하셨어요. 그리고 남편도 얼마 후 “나도 네가 믿는 하나님 믿고 싶다.”며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기도원에서 남편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응답을 해주셨어요. 술도 끊고 하루에 서너 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게 하셨어요. 나중에 교회에서 권사가 되기까지 주님 앞에 서게 하셨어요. 그렇게 10년 정도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2010년에 남편이 암으로 주님 곁으로 가게 됐어요.”

– 상심이 크셨겠네요.

“처음에는 이상하게도 남편이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눈물도 나지 않았고 이전처럼 모든 예배에 참석했어요. 그런데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았어요. 집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만 나가면 두근거렸어요. 어느 날 싱크대에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보고서 밥을 안 먹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병원을 찾아갔는데 우울증과 대인공포증이라고 했어요. 가족과 함께 사는 게 좋겠다고 권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네요. 어떻게 극복하게 되셨어요?

“교회의 한 장로님이 지나가는 말로 “복음훈련을 받아봐. 좋더라.”고 말씀하셨어요. 뭔지는 모르지만 4년 동안 갇혀 살았기 때문에 이건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2015년 3월에 복음훈련을 받게 됐어요. 복음을 만나고 나니 이 모든 것이 자아의 반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런 자아가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지금의 나는 주님과 함께 부활한 새 생명이라는 사실이 믿어졌어요. 그러자 복음을 더 알고 싶었어요.

강릉에서 서울로 일주일에 한 번 중보기도학교를 다녔어요. 강의 내용이 다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내 영혼이 살 것만 같았어요. 훈련 마지막 과정으로 해외로 아웃리치를 가게 됐을 때, 2주 이상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어요. 그러나 주님이 지켜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출발했어요. 기쁨도 있었지만 아픈 것도 사실이었지요. 아픈 몸을 이끌고 열방을 위한 기도의 자리에 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졌어요. 그렇게 기도하고 누워있기를 반복하며 아웃리치를 마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믿음의 발걸음을 떼셨군요. 아웃리치 이후에는 어떠셨어요?

“선교단체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선교훈련 등 신앙훈련을 받았어요. 하지만 훈련을 받을 때는 변한 것 같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이전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무엇이 문제일까, 제 삶을 돌아봤어요. 주님보다 사업이 항상 우선 순위였어요. 그런데 사업은 본사에서 말릴 정도로 잘됐어요. 하지만 돈보다 주님을 택하기로 했어요. 잘되는 사업을 접고, 오직 하나님만 믿기로 결정했어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서울에 있는 아들네 자취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오직 주님께 전심으로 나아가기로 하고 저를 불러주시는 어느 곳이든 가서 섬기고 배웠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의 고백은 점점 화려해져 갔지만, 저의 삶은 그 고백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됐어요.”

–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복음 안에서 새 생명이 되었다고 고백했지만, 다른 사람과 연합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판단하고 연합할 수 없는 존재가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반응하는 나를 부인해보려고 했지만 그럴 능력이 내게 없었어요. 저는 사업도 포기하고 30년을 살아온 터전과 그곳에서 쌓아온 모든 관계도 버린 줄 알았는데 실상 버린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내 성질과 자존심,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생각하고 붙잡고 있던 나를 한 번도 버리지 않았던 거였어요. 문제는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가 않는 거예요. 마치 내가 짙은 화장을 한 창녀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훈련을 받는 날이 더할수록 성경적 언어와 화려한 표현으로 나를 포장해서 기도하고 섬기지만 실제로 저는 썩어 문드러진 송장 같았어요. 거기까지 가보니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나를 주님이 왜 부르셨나. 난 드릴 게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주님의 부르심은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드리는 게 아니라 나를 드리는 거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어요.”

‘자존심 놓치 못하는 나’를 발견

– ‘나를 드리는 것이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믿음의 반응’이라는 것이군요. 감동이 되네요. 그 이후 어떤 헌신의 걸음을 걷게 되셨나요?

“그저 한 걸음씩 발을 떼었어요. 주님은 또 한 가지 사건을 허락하셨어요. 딸이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데 찬성할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남편이 죽고 난 이후, 큰딸에게 제 마음의 전부를 주고 있었나 봐요. 딸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너무 싫었어요. 그러나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어서 복음훈련을 받고 오면 허락해 주겠다고 했어요. 딸은 회사 현장감독으로 일하고 있어서 한 주간씩이나 비우고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휴가를 내더니 복음훈련을 다녀오는 거예요. 결국 저의 악독했던 마음을 딸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결혼을 허락해줬어요.

– 그 덕분에 온 가족이 복음 앞에 서게 됐네요.

“사위도 결혼 후 복음훈련을 받게 되면서 많은 변화가 나타났어요. 그런데 사위가 복음훈련에서 그치지 않고 선교훈련을 받더니 회사를 그만두고 아웃리치를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마음이 어려웠어요. 자녀들이 복음을 만나고 나와 대화가 되는 것까진 좋은데 사표까지 내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할 줄은 몰랐어요.

“하나님의 꿈을 이루시기까지 순종하겠어요”

“어느 날 사위가 ‘어렵지 않느냐’고 묻는데 제 마음이 다 드러난 것 같았어요. 그동안 복음으로 아이들을 잘 인도하고 믿음의 선배 역할을 했었는데 믿음 없는 게 들통났구나 싶었어요. 그날 밤 주님 앞에 기도했어요. ‘주님이면 다지. 내가 지금 뭘 바라는 거야?’ 이렇게 주님은 이런 사건들로 저를 완전한 십자가의 길로 인도해주세요. 그리고 최근 한 사건을 통해 주님은 제게 하나님의 꿈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 어떤 사건이었나요?

“어느 주일 아침, 병원에 있는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어요. ‘누나 죽고 싶어.’ 또 쓸데없는 소릴 한다며 예배 끝나고 통화하자고 전화를 끊었어요. 몇 시간 있다가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동생이 자살했다고 하더군요. 도박과 알코올 중독에 고통하며 살다가 자기 스스로 도박을 끊을 수 없다며 자진해서 폐쇄병동에 들어간 동생이었어요.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오면서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렇게 주님 앞에 엎드렸는데 주님이 밤새 마음을 붙들어주시고 찬양을 부르게 하셨어요. ‘영원 전에 나를 향한 하늘 아버지의 꿈. 성자 예수 외면할 만큼 포기할 수 없던 꿈… 찬양하세 하나님 사랑.’ 생명의 주권은 주님께 있었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주님이 나를 원하셔서 영원 전에 내 안에 하나님의 꿈을 숨겨 놓으시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얼마나 연약하든 관계치 않고요. 복음을 알기만 하는 것과 믿음으로 순종하는 게 얼마나 멀고 다른 것인지 이제 알게 되었어요. 이제는 복음이 지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 삶에서 실제가 되어 하나님의 꿈을 이루시기까지 어디든 순종하며 갈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려요.”
[GNPNEWS]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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