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스물둘의 이윤희 선교사를 만났다. 아직 앳된 얼굴에 미소 가득한 그녀에게 어떻게 어린 나이에 선교사로 헌신하게 됐냐고 묻자 “글쎄요. 그냥 주님이 선교지에 남으라고 하셔서….”라며 수줍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주님의 부르심에 단순하게 응답한 이 선교사는 다음세대선교사를 양성하는 헤브론원형학교를 졸업하고 2년간 용감한 정예병이라는 이름으로 창의적접근국가인 L국에 파송되어 해외 단기선교기간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교사로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
–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선교사로 자신을 드리는 게 겁나지 않았어요?
“처음 L국에 가게 됐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이 두려웠어요. 그러나 지금은 주님과 함께 사는 게 뭔지, 그것이 얼마나 완전하고 안전한지,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이 어떤 것이지 알게 돼서 두렵지 않아요. 뭐, 병이 나거나 죽을 위기가 오면 겁나긴 하겠지만 어린 나이에 선교사로 드렸다고 겁나진 않아요.”
– 주님과 함께 사는 게 완전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그 과정이 너무 궁금하네요.
“헤브론원형학교는 성경이 교과서에요. 그래서 학교를 다닐 때 복음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이해하고 그 모든 진리가 제 삶에 실제가 되도록 순종해보며 살았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게 사는 것은 맞지만 L국에서의 시간은 그 농도가 달랐던 것 같아요. 학교를 다닐 때는 선생님들의 보호 아래 선포된 말씀을 따라 순종해 가는 것이었다면 L국에서의 시간은 우리가 직접 말씀을 받고 순종해보면서 주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몸소 경험했던 시간이었어요.”
열방에서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
– 더 궁금해지는데요. 주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나눠주세요.
“학교를 졸업하면 2년 단기선교를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랑 살까, 어떻게 살까, 어디로 가게 될까, 많은 기대가 있었어요. 결국 저 외에 2명의 자매들과 함께 L국으로 결정되었고 다른 나라에서 3개월 언어연수를 하고 L국에 가게 됐어요. 현지 대학에 다니며 단기선교사역을 감당할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아직 대학이 학기 중이어서 3개월 정도 기다려야 했어요.
L국에 가면 누군가 우리를 불러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도 우리를 불러주지 않았어요. 부푼 꿈을 안고 왔는데 할 일이 없어 참 힘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기도했죠. 주님이 모세와 40일 동안 시내 산에서 동행 하셨다는 말씀을 주셔서 주님이 우리도 이곳에 보내주셨으니 기도하면서 주님과 시간을 보내야겠다 생각하고 3일 금식하며 기도했어요. 이후 그 나라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서 리서치도 하고, 땅밟기 기도도 하고, 우리가 가게 될 학교에서 기도 모임도 하면서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그저 기도 하며 학교 갈 준비를 했어요.”
– 학교생활은 어땠어요?
“개강을 하고 학교에 가서 현지 학생들을 처음 만났어요. 그런데 그중 눈에 띄는 한 친구가 있었어요. 이름은 킴이라고 하는데요. 여잔지, 남잔지. 처음에는 남잔데 여자처럼 하고 다니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알고 보니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여자였어요. 호르몬약을 먹고 있었어요. 이곳은 트랜스젠더, 여장남자, 동성애자가 많아요. 킴을 보며 처음엔 너무 당황했어요.
그런데 킴은 너무 밝은 아이였어요. 우리와 같은 반이 되었고 우리가 외국인이니까 계속 말을 걸어왔어요. 그러다 기도하면서 킴과 복음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킴이 우리에게 적극적이어서 조금 꺼려지기도 했는데 하나님이 붙여주신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가 되는대로 예수님에 대해서 나누고 성정체성에 대해서도 나눴어요.”
– 킴은 잘 받아들였나요?
“글쎄요. 킴은 이미 여자 친구가 있는 동성애자였어요. 킴이 알아 듣든 못 알아듣든 창조 때 이야기를 하면서 “넌 여자야.”라고 말하면 그냥 듣고만 있어요. 사실 한 번도 그 아이한테 여자다, 남자다 얘기해 준 사람이 없었어요. 그렇게 킴을 계속 만나며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킴에게 찬양도 불러주며 교제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근데 1년 뒤 킴이 학교를 그만두면서 연락이 끊겼어요. 어쩔 수 없이 기도만 하다가 후에 한번 만나게 됐는데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오직 주님께 맡길 뿐이에요.”
– 그랬군요. 킴이 꼭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해야겠네요. 학교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첫 1년은 여러 가지가 어려웠어요. 재정의 영역도, 관계의 영역도, 게다가 비자도 쉽지 않았어요. 일단 학교가 시작됐으니 학비와 생활비가 필요했어요. 우린 오직 하나님만이 재정의 공급자라는 믿음 외엔 없으니 믿고 기도하는 방법밖엔 없었어요. 매일 하는 기도모임에서 사도행전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보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살았어요.
한 사람한테 들어온 재정으로 세 명이 살다가, 또 다른 사람한테 재정이 들어오면 그것으로 살았어요.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이 됐죠. 그마저도 없을 때는 학교를 걸어서 다니기도 하고요. 신기하게도 기도하면서 이렇게 사니까 셋 중 한명만 불평해도 분위기가 어려워질텐데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주님은 우리가 살이 너무 쪄서 운동 하라고 하시나보다 하면서 걷기도 하고, 밥을 못 먹을 때는 우리가 살이 심하게 많이 쪘구나 생각하기도 하고, 별로 배 안고프다 말하면서 웃기도 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파송교회에서 걱정하실 텐데. 그렇게 많이 굶지 않았어요. 한 두 번요.(웃음)”
현지에서 만난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다
– 참 행복한 경험을 하신 것 같네요. 비자는 어떻게 됐어요?
“우리가 다니는 학교도 외국인 학생은 우리가 처음이었어요. 학생비자가 계속 거절당하고 지연됐어요. 이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비자가 안 나오니까 거절당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주님이 나를 부르시지 않았나?’, ‘난 여기서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개인기도 시간에 주님의 이름을 참 많이 불렀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보이는 상황에 반응하고 흔들리는지 보게 됐죠. 그리고 얼마 후 감사하게도 비자가 나왔어요.”
– 한걸음 한걸음이 오직 믿음뿐이네요. 관계의 영역도 어렵다고 했는데 어땠나요?
“서로 너무 다르게 살다가 만나 스타일들이 다 달라서 싸웠어요.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삐치기도 했어요. 지체들이 방을 잘 치우지 않는 것 때문에 저도 어려웠어요. 이불도 안 개고 짐 정리도 안한다고 제가 잔소리를 했더니 잔소리 했다고 화내고, 그럼 저도 화내고, 결국 싸우게 됐어요. 어느 때는 일정을 결정하다가 서로 의견이 안 맞아 마음이 상해서 말을 안 하다가 모임이 끝난 적도 있어요.
그럴 때면 서로 피해 다니기도 하지만 방도 같고 학교도 같잖아요?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하니까 결국 피할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도 그렇게 오래가진 않았어요. 매일 아침예배, 기도 모임, 팀 모임을 함께 하면서 한 사람이 주님이 주신 마음을 터놓으면 사건은 종료돼요. 서로 잘 몰라서 그런 거였더라고요. 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어요.”
– L국에 있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이렇게 살면서 주님을 알아가게 된 것 같아요. 헤브론원형학교에서는 복음을 온실 속에서 보호받으며 알아갔다면 이곳에서는 배웠던 진리를 주님과 함께 현장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시간이었어요. 아무에게도 물어볼 사람도 없고 결정하는 것도 우리끼리 기도하고 결정해야 했죠. 주님하고 나밖에 없는 시간이니까 진짜 말씀 따라서 사는 삶을 살아보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보게 됐어요. 그러다 주님이 허락한 곳에서 기도 모임을 계속하면서 이곳에서 예배가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님도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도 주셨고요. 이런 마음을 갖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영어예배가 시작된 거예요.”
– 영어예배는 어떻게 시작이 됐죠?
“한 선생님이 예배드릴 곳을 찾다가 저희와 예배를 드리기로 하셨어요. 국적에 상관없이 주일 오후에 10명 정도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됐어요. 우리도 현지 청년들과 드리는 예배가 생기는 게 소원이었으니 당연히 그 예배에 참석하게 됐어요. 처음 기도만 했을 땐 참 막막했어요. 복음을 전하기도 쉽지 않고, 또 기회가 돼서 예수님을 전해도 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네가 믿는 하나님 정도로만 생각해요. 기도해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복음을 나눠도 반응이 없었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평생 살아온 사람들을 이 복음이 변화시킬 수 있는가 생각하면서 답답한 때도 있었어요. 그때 한 찬양을 부르게 되면서 힘을 얻게 됐어요.”
– 그 찬양이 뭔가요?
“찬송가 469장이었어요.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봅시다.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염려하며 심히 애탈지라도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이 찬양을 부르는데 나중에 주님이 칭찬하시면 됐지. 누가 거두든 기도로 뿌린 씨앗은 언젠가 주님의 때에 거둬지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기도모임과 예배를 드리며 힘을 얻었어요”
“나중 그때를 상상해보니까 기쁘기도 했어요. 이제는 기도하고 말씀 따라 사는 삶을 사니까 어디든 가도 상관이 없고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었어요. 그렇게 부르시는 이곳저곳을 섬기다가 복음캠프를 진행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그런데 영어로 해달라는 거예요. 기쁘고 기대도 됐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한국어로 된 자료를 모두 영어로 바꿔야 했죠. 강의, 진행파일, 스케줄표, 파워포인트 자료 등등. 영어라는 게 딱 걸리니까 일이 10배로 늘어난 느낌이었어요. 우리 팀이 잘하는 게 사실 많이 없어요. 참 재주도 없는 세 사람이 조금씩 순종하니 주님이 길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하겠어요. 한번 해보세요.(웃음)”
– 믿음으로 순종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네요. 복음캠프는 잘 끝났나요?
“네. 인근 몇 개국 학생들이 참석했는데 복음이 선포되니까 정직하게 말씀 앞에 반응하더군요. 영어를 잘 모르는 친구들도 있어서 현지 언어로도 통역해 진행했는데 복음의 능력은 어떤 것에도 막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계속 마음에 품고 기도해오던 다음세대에게 복음이 선포되는 이런 캠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그동안 이곳 다음세대들을 위해 기도하며 어떻게 하면 복음이 전해질까 고민하며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커피도 타고, 책 정리도 하고, 기도도 하며 씨앗을 뿌렸는데 캠프를 준비하며 마침내 주님이 허락해 주셨다는 것을 보게 됐어요. 그렇게 복음을 들은 한 영혼이 한 명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그가 증인이 되어 또 다른 영혼에게 일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격이 되던지요.”
– 듣고 있는 제게도 감격이 되네요. 앞으로 계획과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2년 단기선교를 통해 배운 대로 열방을 섬길 계획이에요. 2년 동안 주님이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할 때 어떻게 하시는지 가르쳐 주셨으니 앞으로 믿음으로 기도할 때 이들에게 어떻게 행하실지 주님이 기대가 돼요. 앞으로도 계속 기도하면서 지낼 것 같아요. 여러 생각을 하고 순종한 걸음이 아니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 진 잘 모르겠어요. 말씀에 순종해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앞으로도 이곳에서 보이는 것에 반응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GNPNEWS]
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