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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기도를 통해 열방을 기쁨으로 달리는 용사가 되게 하셨다

re_152_7_1-prayer무사 경햄수꽈? 이수꽈어수꽈? 메기우다게.”(왜 그렇게 하세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에 있던 게 이제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제주도 방언이다. 조선 최초의 선교사 이기풍 목사님이 파송되었던 제주도. 그러나 그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조상신을 섬기는 제례 문화는 흔한 일상이자 삶이었다.

어렸을 때 마당에서 형제들과 놀다 방에 들어왔을 때, 아주 커다란 구렁이 몇 마리가 안방에 뒤엉켜 있는 게 너무 무서워 한참을 달려 아버지 회사로 갔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상신 섬기다 죽어 지옥에 떨어졌을 내가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생명으로 만난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모른다.

죄 중에 살다가 하나님의 때에 복음 앞에 서게 된 사람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어난 기적을 마치 오래전에 울며 봤던 감동적인 영화를 다시 보는 것처럼 마주할 기회가 주어졌다.

가끔 허리가 아프고, 걸을 때 불편하게 걷는 것 빼고는 특별히 아픈 적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엉덩이 쪽 통증을 시작으로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만큼 되었다. 이런저런 검사와 치료 끝에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유전성 운동실조증인 강직성하반신마비 진단을 받게 되었다. 같은 유형의 병자들 중에서 그래도 나는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처럼 내가 바로 치료가 필요한 병자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노름과 빚으로 도망하다시피 떠난 제주도. 그 후에도 술과 노름, 폭행으로 변하지 않던 아버지 때문에 형편이 어려워 술장사를 하게 되었던 어머니.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어느덧 사람을 두려워하고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선교사로 헌신하고 10여 년을 보내면서 과거의 나와 육신의 가족들의 모습들을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니 나의 슬픔과 고통, 상처와 아픔을 건드리지 않고 싶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30년 만에 다시 이곳 제주도에 와서 불신자인 가족과 함께 일 년을 함께 하게 되었을 때, 어쩜 그렇게 바뀐 게 없는지. 10년 전의 시간이 마치 어제 일로 내게 확 다가왔다.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열방을 매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가족의 문제가 열방의 문제요, 가족의 필요가 열방의 필요임을 보며 늦은 밤, 무릎 꿇고 통곡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시간은 일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구원이기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복음을 알아들을 수 없는 영혼이기에, 나의 기도는 관념이 아니라 실제였다. 도저히 꿈꿀 수 없던 일이 일어났다. 부모님이 차례로 복음을 만나게 되셨다. 복음훈련을 받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고, 먼 길을 오고갔던 소중한 모든 시간들. 열방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자녀들을 이곳 땅 끝까지 파송하셔서 일하신 주님의 열심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다시 복음과 기도로 하나님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향하여 달려가는 공동체와 사역의 자리에 돌아와 서 있다.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공동체 안에도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도 무엇이 바뀌었을까? 한 가지 뚜렷하고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바로 ‘은혜’다. ‘은혜를 알게 되었구나.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 얼마나 하나님의 큰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인지를 인치 듯 마음에 새겨주셨구나.’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집에서 바라보이는 자그마한 운동장이 있다. 이제는 내가 그런 곳을 예전처럼 신바람 나게 달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더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기쁨으로 달리는 용사처럼 이제는 열방을 그렇게 달릴 수 있겠구나. 복음이 실제가 되고, 기도가 실제가 되는 축복이 더욱 사모되고,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삶을 더욱 누리고 싶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제주도. 그 땅의 구원을 위해 매주 말씀기도를 하기 위해 오가는 차 안에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던 찬양이 나의 고백이 되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그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소망한다.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GNPNEWS]

양동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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