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김정화 선교사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 완성을 위해 삶을 통째로 드렸다. 그리고 후퇴 없이 전진하며 순종해왔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고아’와 ‘과부’를 섬기는 사역의 한 복판으로 초대받았다. 단순한 구제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흘려보내는 긍휼사역을 통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있는 김정화 선교사(전능자의 그늘 미니스트리·ShAM(쉠) 대표)를 만났다.
– 어떻게 긍휼사역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2012년에 사역일정 때문에 당시 사역을 하던 미국을 떠나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였어요. 제가 국내에 입국하기 일주일 전 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죠. 어머니의 상황은 안타까우나 선교사로서 저의 부르심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사역지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입국 비자가 거절됐어요. 모든 계획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던 중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급속히 악화됐다면서 도움을 요청하셨어요. 두 분을, 공동체로 살고 있는 저희 선교센터로 모실 수밖에 없었어요. 함께 살고 있는 선교센터 공동체 가족들이 배려를 해 주신 덕분이죠.”
– 주님이 불가피한 상황을 허락하신 것이군요.
“영혼을 섬기는 일이 선교사의 사역인데 당장 어려운 처지에 있던 연로하신 부모님을 외면할 수 없었죠. 그러다 아버지도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힘이 드셔서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결국 오갈 데 없는 어머니만 저희 선교센터에 남게 됐어요.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처지에 있는 분들의 상황을 돌아보게 됐어요. 선교완성을 목표로 전력 질주하던 저의 계획에는 없었지만,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때 기도하던 중 이 땅에서 버림받고 오갈 데 없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일이 저의 일이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즈음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교사님에게도 주님이 같은 마음을 주셔서 예기치 못한 긍휼사역을 시작하게 됐어요.”
비자 거절, 치매 어머니 봉양
– 긍휼사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주세요.
“어려운 누군가를 돌보는 일로 받긴 했지만,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았어요. 오직 주님께 구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죠. 그런데 날이갈수록 어머니의 증세가 더욱 악화되셨어요. 그러다 마침 서산의 한 폐교를 선교센터로 활용할 수 있게 됐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당신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이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동시에 인도의 사원에 팔려가는 아이들을 구출해 신앙으로 양육했던 에이미 카마이클의 도나부르 공동체가 생각났고, 지금도 죽음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을 위한 피난처인 베이비 박스에 관한 소식도 듣게 됐죠.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야고보서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진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가 섬겨야 할 대상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나이 드신 과부, 아이들로 구체화됐어요.”
– 그런 과정을 거쳐서 과부와 고아를 돌아보게 된 것이군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첫 계명은 모든 성도가 마땅히 순종해야 하는 계명이잖아요. 하지만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가 사역의 현장에 있으면 이 일들에 대해 소홀해지기 쉬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를 세우신 목적이 사랑이 식어지는 마지막 때에 어느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통로로 성도들이 서도록 일깨우는 역할임을 알게 됐어요. 마태복음 22장에 임금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각자의 일로 분주해서 아무도 잔치에 응하지 않자 임금이 거리에 나가 모든 사람들로 자리를 채우라고 하시잖아요.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아요. 주변에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자들에게 우리가 가기 원하시는구나.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 싶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됐어요.”
– 이전에 이와 같은 사역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어요. 선교사로 헌신한 것도 저의 계획이 아니듯이 말이죠. 지금 치매 걸리신 어머니는 친 어머니가 아니라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예요. 한 달도 채 안된 피투성이인 저를 양어머니가 거둬주셨죠. 어머니의 인생 마지막 즈음에 저를 끼어들게 하시면서 제가 어떤 섬김을 받았는지 주님이 기억나게 하세요. 고스란히 같은 마음으로 섬기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고 있어요. 하나님의 섭리가 참 놀라워요. 주의 마음이 깨달아지니 저를 향한 이 부르심이 특별한 은혜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어머니 섬김 통해 유년시절의 은혜 깨달아
– 사역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삶으로 인도받은 것이군요.
“맞아요. 제가 정말 사역을 오해하고 있었어요. 현장에서 사람들을 훈련하고, 세워 성취감이 생기면 제가 뭘 하고 있다는 착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마치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인 양 생각했구요. 긍휼사역을 하면서는 제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에는 많이 어려웠어요. 사역이라고 해봤자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가는 것이었어요.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아이와 어른을 돌보는 정도가 전부였으니까요. 이전에도 믿음이었지만, 더욱 믿음으로 사는 삶이예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에 그저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을 깨닫게 됐어요. 제게 어떤 성취감이 주어지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며 인내하고 믿는 삶을 살도록 지난 3년 동안 신실히 일해 주셨어요. 그동안 얼마나 제 마음이 높아져 있었는지 알게 됐어요. 높아진 마음을 허무시고 빈껍데기인 저의 존재를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세요.”
–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셨는지 선교사님의 삶을 들어보고 싶네요.
“각자 인생마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저는 정말 특별한 환경에서 태어났어요. 저희 아버지가 아들을 너무 원하셔서 여러 부인을 두셨는데, 저는 그 중 한 분에게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딸을 낳은 저의 생모는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저를 버리고 집을 나갔어요. 이런 상황과 환경들을 알고 자랐으니 저는 소극적이고, 우울한 삶을 살았죠. 대학교 졸업 후, 저는 승무원이 됐어요. 회사 취직 후 두 번째 비행 중, 우연히 언니뻘 되는 한국인을 만나게 됐어요. 그 언니를 통해 교회에 나가게 됐죠. 3년 정도는 주일만 교회에 나가다가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자 열심히 교회를 섬기게 됐어요. 점점 그 사랑이 깨달아지자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제 삶을 드리기로 결정했어요.”
– 그렇게 헌신을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당시 제게는 하나님의 사랑이면 충분했거든요. 그러나 그 무렵 감격뿐이었지 갈라디아서 2장20절 말씀처럼 예수님과 제가 함께 죽은 십자가를 경험하지는 못했어요. 그런 말 자체를 저는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모르고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제게 전도자가 되라고 하시는 것 같았어요. 죽으라 하시면 죽는 시늉까지 할 수 있겠는데, 이 일을 순종할 수는 없더군요. 그렇게 씨름하다 96년, 전도자 훈련을 통해 예수님이 정말 나의 주인이 되어주시는 운명적인 사건을 허락하셨어요. 진짜 제 안에 저를 내려놓는 일은 죽음이더군요. 아니 진짜 죽었어요.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모든 주권을 주님께 넘겨 드리는 헌신을 하게 하셨어요.”
– 그 후 어떤 믿음의 발걸음을 걷게 되셨나요?
“함께 전도자로 헌신했던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며 순회선교단이라는 단체를 세우게 하셨어요. 선교사도 많은데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선교지들을 돌아보니 한 목적을 위해 조건 없이 섬기면서 연합하고 있지 않는 현장을 보게 됐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한 사역에 고정된 단체가 아니라 돌아다니며 연합을 이루자. 그런데 그 마저도 우리의 힘으로 큰 연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우리 안에서조차 연합이 불가능했거든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그저 우리는 순종할 뿐이지 우리로서는 할 수 없구나. 이 복음을 살아내는 것 또한 기도가 열쇠임을 알게 되면서 저희의 부르심이 더욱 구체화 되었죠. 그 후 이 긍휼사역으로 옮겨주셨어요. 저를 이 영역에 순종하게 하셔야만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으니까 이 자리로 불러 주신 것 같아요.”
믿음 재정으로 긍휼사역 시작
– 현재의 긍휼사역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두 사람의 전임선교사와 선교사로 헌신한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현재 훈련과정에 있어요. 파트 타임 동역자들도 계시구요. 하나님 앞에 드려진 영적인 과부일 뿐만 아니라 실제 과부들을 불러 함께 하고 싶어요.
한 달에 한 번 매월 셋째 주에 정기기도모임이 있고, 일주일에 두 번 말씀기도모임을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아이를 키우는 첫 1년은 영원히 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두려웠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기쁨이 넘쳐나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복음과 기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영적으로 공급받고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 믿음의 걸음을 걷는 동안 잊지 못할 특별한 만남이 있으신가요?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참 적어요. 그래도 가장 잊지 못할 만남은 지금 양육하는 우리 모세와 시우와의 만남이 아닐까요. 지난 2014년 12월에 태어난 지 12일 만에 출생신고도 안 된 한 아이를 만나게 됐어요. 선배 선교사님이 ‘모세’라고 불렀는데, 그게 아이 이름이 됐어요. 두 번째 아이인 시우는 이년 전에 알게 됐는데, 최근에 오게 됐어요. 부모 사랑 독차지하고 커야 할 나이에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겠어요. 이제야 제 아들이 되어가고 있어요.”
– 센터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날마다 주님을 구하는 믿음재정의 원리로 저희 사역이 이어져 왔어요. 처음에는 한 분을 통해서 주님이 재정을 주셨어요. 어느 날은 꽤 큰 규모의 헌금이 들어와 저희가 거할 수 있는 건물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어요. 다음날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주님이 재정을 허락해주셔서 현재 이 건물을 짓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난 5월에 입주감사예배에 참석하신 분들도 함께 동참하고 계세요.”
– 사역하시면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많이 보실 텐데 위로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최근에 보게 된 글귀인데요. 문제 없이 형통한 상황 가운데서 볼 수 없던 것들을 마음이 가난해져서야 비로소 보배로 발견했다는 말인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래요.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을 지금 경험하면서 마음이 낮아지고, 더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가는 것 같아요. 이 시대의 어머니들을 정말 존경하게 됐어요. 이전에 참 행복하고 좋았다가 아니라 지금 이 시기가 가장 귀한 보배를 발견할 기회의 시간인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끝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긍휼한 마음을 품은 분들이 더 오셔서 저희와 함께 했으면 좋겠고요, 하나님의 아이들이 이곳에 보내져서 하나님의 손길로 양육되면 좋겠어요. 우리 사역이 모델이 되어서 하나님의 생명이 열방 곳곳에 흘러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GNPNEWS]
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