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육십에 목마름 가운데 복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8년 동안 쉬지 않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며 복음에 젖어들었다. 복음에 젖어들수록 세상에서 누렸던 부와 명예를 잃어갔다. 대신 주님 안에 거하며 복음이 삶의 전부가 되었다는 김남분 권사를 만났다.
– 어린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하셨나요?
“아버지께서 시골에서 목회를 하셨어요. 그런데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잠시 목회를 내려놓고 서울로 오게 됐어요. 그때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했어요. 저도 어리긴 했지만 동생들도 있고 가장이 돼야 한다는 마음이었죠. 그러나 아무도 그런 제 사정은 잘 몰랐죠. 어려서부터 칭찬을 받고 자라면서 제가 잘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든 게 무너지니까 감추고 싶었죠. 학력을 말한다는 건 제 존재 전부가 걸린 문제였어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도 말하지 못했어요. 최근에야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됐어요.”
– 결혼은 어떻게 하셨나요?
“한 대학교 총장님의 배려로 학교 비서실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 24살에 결혼했죠. 집안도 좋고 미대에 다니던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풍채가 참 좋아요. 안 믿는 사람이었는데 저도 남편을 만나면서 교회에 안 나가게 됐어요. 그게 항상 죄책감으로 남았어요.”
–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아이를 낳은 후였어요. 어느 날 집에 전도하러 오신 분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다시 혼자 교회에 나가게 됐죠. 남편이 권위적이지 않아 반대하진 않았지만 신앙생활을 같이 할 수 없는 게 힘들었어요.”
– 남편분 이야기를 좀 더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남편은 대기업에서 디자인 팀장을 맡고 있었어요. 당시 시중에 나와 있는 전화기는 거의 남편이 디자인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회사가 합병을 하게 되면서 너무 일찍 명예퇴직을 했어요. 그 후에 사업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죠. 남편은 계속 집에만 있었어요. 뭐라도 하면 좋으련만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 수년 동안 집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래도 가지고 있는 재산이 좀 있어서 생활이 어렵진 않았지만, 남편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자존심이 상하면서 우울증이 왔어요. 물론 큰 교회 다니면서 봉사도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집에만 오면 우울했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 생각했어요. 나의 체면과 자존심이 모두 무너져 내렸어요. 남편은 나의 성이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남편을 우러러 봤는데 그게 무너진 거예요.”
나의 성이었던 남편이 무너진 후
– 그 우울증에서 어떻게 빠져나오셨나요?
“2009년에 친정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시댁쪽 작은어머니로부터 손주 얘길 들었어요. 술 담배에 찌들어있던 애가 어딜 다녀오더니 180도 변했다고 했어요. 한 선교단체의 신앙훈련과정이었는데, 그 얘길 들으면서 남편도 그곳에 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정작 남편이 아니라 인도에 선교사로 나가있던 아들 내외가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면서 먼저 그 훈련과정에 가게 됐어요. 그런데 심신이 지쳐있던 아들 내외도 변한 거예요. 같은 해 9월에 저도 그 과정에 참여하게 됐어요. 교회 총무를 맡고 있어서 도무지 시간을 내기 어려웠는데 목사님께 부탁했죠. 그때가 제 나이 60이 넘었을 때에요.”
– 어떤 은혜가 있으셨나요?
“정말 갈급할 때였는데, 총체적인 십자가 복음을 들었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구나! 이것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벅차고 이젠 복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며칠 못가서 한계에 부딪혔어요. 힘들 때마다 ‘나는 죽었어. 나는 죽었어’ 되뇌었어요. 그래도 소용 없었어요. 분명 될 것 같았는데 왜 안 되지? 원점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죠. 목마름으로 6개월 과정의 중보기도학교에 등록하고 몇 년을 쉬지 않고 섬겼어요. 들었던 총체적 복음이 차츰 정리되기 시작했어요. 열방을 위해 일주일 연속으로 기도하는 자리에도 쉬지 않고 나아갔죠. 그러면서 더 이상 이전처럼 집착했던 문제 때문에 힘들지 않았어요. 주님의 은혜로 충만했어요.”
– 생활은 어렵지 않았나요?
“특별한 수입은 없는데 쓰는 규모는 그대로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했던 것이 커피전문점과 주식이었어요. 가게는 꽤 잘됐는데 사정이 생겨 그만 두었어요. 그러나 주식은 생활을 위해 하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한 선교사님께 주식을 하는 것이 맞는지 물어봤어요. 그런데 내가 무엇을 하는 것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내가 해야 될 것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구나. 이 훈련이 돼야 하겠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주식을 정리했어요. 수입의 근거 자체가 없어졌으니 아파트도 좀 외진 데로 옮기고요. 그렇게 서울 생활을 접고 터를 잡은 곳이 지금 살고 있는 당진 합덕이에요. 거의 3년이 돼가네요.”
내가 할 것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
– 당진에 연고가 있어서 오셨나요?
“아니요. 근처 서산에 기독학교가 있어요. 그곳 주방을 권사님 한 분이 섬기시는데 ‘이제 나이 먹어 뭐 하겠나? 그 옆으로 가서 섬길 수 있을 때 섬기자.’는 마음으로 이사를 오게 됐죠. 그런데 이사하기 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차에 주방에도 다른 분들이 헌신해서 들어오셨고요. ‘내 착각이었나? 뭐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후회하지 않았어요. 가진 걸 처분하고 교인들과의 유대도 끊고 왔지만 ‘내가 여기 왜 왔지?’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픈 몸 때문에 안식하는 시간이었어요.”
– 어디가 아프셨나요?
“어깨와 두 팔과 등에 이유 없는 통증이 계속 됐어요. 침대에서도 남편 부축을 받아야 겨우 일어날 정도였죠.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녔는데도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얼마 전에서야 섬유근육통이라는 병명을 알게 됐어요. 아무 원인을 발견 못했을 때 최후에 나오는 진단이라더군요. 제가 얼마나 아픈지는 아무도 몰라요. 오직 주님만이 저의 힘이 되어주세요. 통증이 찾아와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의 위로가 제 마음을 감싸요. ‘주님이 아시지, 그러면 됐지.’ 감격해서 울고 주님 사랑 때문에 울었어요. 그런 몸으로 지난 해에는 러시아까지 가서 복음이 선포되는 곳을 섬기게 하셨구요.”
– 주님의 은혜가 놀랍네요. 그럼 지금 합덕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죠?
“매일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비록 아프지만 주님께 의지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예전에는 몸매 가꾸고 운동 다니고 친구들 만나는 게 일상이었지요. 부츠, 밍크코트같이 사치스러운 것은 이사 올 때 다 버렸어요. 이사를 결정하고 아파트 매매가가 많이 올라 손해보는 것 같았지만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받았어요. 오히려 주님 안에 거하는 기쁨을 계속 누렸어요.”
–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하는 기쁨을 계속 누릴 수 있었나요?
“그냥 자연스럽게 된 것 같아요. 2009년부터 지금까지 기도의 자리와 복음이 선포되는 자리에 쉬지 않고 나갔어요. 사실 말씀을 많이 알거나 많이 보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애들처럼 문자 그대로, 곧이곧대로 믿어요. 한번은 아프리카로 아웃리치 나가는 팀의 비자신청 때문에 임시로 현금을 빌려주고 다시 돌려받을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팀 안에 필요한 재정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다 돌려받긴 그래서 얼마를 헌금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때 고린도후서에 넉넉히 연보하라는 말씀을 봤어요. ‘넘치게 넉넉하게 하란 말씀이구나.’ 다른 건 잘 모를 때도 많은데 이런 건 또 확실하게 응답을 잘 해주세요(웃음). 결국 전부를 드렸어요.”
– 정말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순종하셨네요.
“저는 잘 몰라서 그렇게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순종할 때 말씀이 이루어지는 걸 봤어요. 가족 안에서나 사역현장에서도 제가 말하지 않고 기다리면 주님의 말씀이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사실은 말씀이 내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 마음 주시는 대로 하면 되겠다는 것이에요. 만약 잘못된 결정이라면 주님이 막아 주시겠구나하는 믿음이 생겼어요. 전에는 이게 옳은지 그른지, 주님이 원하시는 게 아니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이제는 만약 실수해도 잘못된 길에서 저를 바른길로 인도하실 주님을 믿어요. 그래서 정확하게 정답대로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졌어요.”
– 정말로 주님 안에서 안식하고 계시네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해졌을까요?
“주님께 다 맡기는 거죠. 사실 3년 전 이사 올 때 노년을 준비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계속 집과 땅을 구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자꾸 계약이 틀어지면서 성사가 안됐어요. 누가 내 앞에서 방해하는 것 같았어요. 허락하시는 때가 아닌 것 같아 포기하고 전셋집을 구했더니 기간이 차면 계속 이사를 다녀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게 다 주님의 계획이었어요.”
다른 걸 다 몰라도 주님만 알면 충분해요
– 하나님의 계획이라니요? 어떤 의미인가요?
“저희 부부에게 마지막 보루였던 땅이 작년에 은행에 넘어갔어요. 이 사건을 겪으면서 주님이 이제 주님만 바라보며 살자고 하시는구나 싶었어요. 화가 날만도 한데, 마음이 담담했어요. 만약 그 땅에 집을 지었으면 그 집을 가꾸면서 또 얼마나 마음을 빼앗겼을까 생각하니 오히려 주님께 감사했어요.
믿음의 길을 다 공유할 순 없지만, 주님이 제게 하신 것처럼 남편도 함께 가게 하시는 걸 봐요. 그래서 남편에게도 나그네의 삶을 말했는데 남편은 늘 따라와 줘요. 무엇이든 반대하는 법이 없어요. 이곳으로 터를 옮길 때도 그랬어요. 이곳에 와서 남편도 많이 변했어요. 여전히 인터넷도 안배우고 다른 취미도 없지만, 밭을 잘 가꾸고 고구마도 너무 달게 키워요. 저도 남편을 있는 그대로 마음으로 받게 됐구요. 남편이 내 머리가 되어주는 것이 나의 행복이란 걸 이제는 알게 됐어요.”
–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삶이 실제가 됐군요.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네. 저의 삶을 통째로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게 얼마나 복된 삶인지 모르겠어요. 주님께 기도하면 사랑과 감격으로 눈물 흘릴 수밖에 없어요. 기도할수록 주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요. 하지만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것만 확실히 믿는다면 다른 걸 다 몰라도 괜찮아요. 복음이면 충분하고 주님이면 충분한 삶이죠. ‘권사님이 한땐 참 잘 살았는데….’라는 말을 들어도, 예전 같으면 자존심 상했을텐데 지금은 아니에요. 돈이 더 있고, 세상적으로 좀 더 누리는 것이 잘 사는 게 아니란걸 아니까요. 다 없어진 것이 얼마나 은혜인지 몰라요. 좀 실수해도 절망하지 않고, 주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요. 주님이 그런 저를 받으시고 제가 증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GNPNEWS]
E.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