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묵상과 기도를 마칠 즈음 제일 먼저 내 앞에 나타나는 막둥이. 잠이 덜 깬 채 졸린 눈을 비비며 건네는 첫 마디는 “엄마, 오늘 하루가 기대된다.”이다. 여섯 살짜리 아이의 고백에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주님 때문에 오늘 하루가 기대 되나?’
나는 16살, 12살, 6살 삼남매의 엄마다. 세 아이를 키우며 각자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 웃기도 하고, 눈물 짓기도 한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깨달아지는 것은 육체로 낳은 것 외에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얼마나 아이들을 나의 소유물로 여겼는지, 내가 원하는 높은 기준을 주장하며 얼마나 아이들을 어렵게 했는지…. 매 순간 주님의 지혜와 믿음이 아니면 지지리 못난 내 모습밖에 직면할 것이 없다. 그러나 신실하신 주님은 아이들을 통해 복음을 이용하고 나의 영광을 추구하려는 내 안의 부정함을 완전히 깨뜨리셨다. 그리고 이제는 오직 주님만 기대하는 자로 바꾸어 주셨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을 여러 신앙훈련과정에 참여시켰다. 나 자신이 가정 안에서 복음의 통로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아이들은 변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훈련을 받을수록 더 자아의 본성대로 반응하는 것만 같았다.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아이들을 보며 절망했다.
아이들을 양육하며 내 안의 부정함을 완전히 깨뜨리신 주님
급기야 사건이 터졌다. 아이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속였다. 믿었던 아이에 대한 배신감과 엄마지만 내 아이에 대해 정말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이를 통해 내가 받게 될 수치와 부끄러움에 견디지 못하고 분노하는 나의 죄 된 존재의 실상이었다. 나는 나를 너무 사랑했다. 내가 가장 중요했고 모든 마음의 끝이 항상 나를 향해 있었다.
이런 죄 된 나의 실상은 다른 면으로도 나타났다. 성품이 온화하고 유머러스하며 여러 면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딸아이를 보며 마치 내가 인정받는 것처럼 좋았다. 조금 부족한 모습이 보이면 아이에게 더 높은 기준을 제시했다. 아이 안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이의 존재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 없었다.
수많은 고백을 하지만 복음이 실제 되지 못한 불쌍하고 가련한 나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 망해도 상관없어. 네가 망하는 게 나의 은혜야.” 얼마나 나를 드러내고 싶고 주목받고 싶어 하는지. 이런 나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시선을 주님과 함께 죽은 십자가로 옮겨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감사하다.
주님은 이제 아이들이 아니라 나를 훈련해 주신다. 한 선교단체에서 주관하는 ‘복음과가정’이라는 모임을 통해 나에게서 나오는 모든 생각과 기대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순간마다 깨닫게 하신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난 아이들뿐 아니라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분은 친절하시고 섬세하시다. 그래서 나는 주님이 일하시는 것만 기대하고 주님만 바라보게 되었다. 주님만 바라보는 바보가 된 것 같아 참 좋다.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 때문에 너무 기대 되요!” 여전히 변하지 않고 늘 똑같은 일상이라도 아이들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 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감사하다. 주님만 기대합니다. [GN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