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네, 여기까지예요, 이제 주님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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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계를 인정하며 주님을 기대한다

– 인도 박윤근 선교사

늦은나이에 부르심을 확신하고 선교지로 나아가기까지. 주님이 한 인생을 다듬어 주님의 뜻대로 사 용하시는 주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평범한 집사에서 열방을 품는 선교사로 걸어오기까지. 50대가 넘어 타 문화권으로 떠나, 새로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있는 박윤근(56) 선교사를 만났다.

–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인도에서는 폴지로 불립니다. ‘지’는 현지어로 ‘님’이라는 뜻 입니다. 비자 때문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곧 출국할 예정 입니다. 폴은 아시다시피 성경의 바울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저를 잘 아는 선교사님이 제가 사울보다 더 악독한 핍박자였다 며 이런 별명을 붙여주셨어요. 현재 아내와 함께 선교사님들을 협력하고 열방을 품으며 살고 있습니다.”
– 바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변화시킨 주님의 일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게 복음 앞에 서게 되셨나요? “저는 5남매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강원도 산골 그것 도 유교적인 집안에서 기독교와는 아주 거리가 먼 배경에서 자 랐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30대 중반에 장사를 시작 했죠. 저는 스스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죠. 진리를 몰랐기 때문이죠. 그러다 한 권사님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막내 동생이 신학을 하는 데 기도해야 하지 않겠냐는 권면이었죠. 그 말을 1년 정도 외면 하다가 한번쯤은 가줘야겠다는 생각에 출석한 이후, 지금에 이 르렀네요. 오래 전에 안수집사라는 직분까지 받았으나 제 삶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집안 제사 지낼뿐만 아니라, 제사지내는 집에 불려 다니며 축문을 쓰기도 했지요. 선교사인 동생이 집안 어른 기일에 와서 절하지 않는다고 욕을 퍼부었지 요. 시간이 지난 후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을 통해 복음학교를 소개받았으나, 사실 귀담아 듣지 않았어요. 그러다 강권에 의 해 마지못해 복음학교에 다녀온 후 내안에 뭔가 허전한 마음 이 생겼습니다. 이후 복음학교에 섬김이로 몇번 참석하게 됐고 그러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주님께 홀 랑 미쳐버리게 된 것이죠.”
– 선교사로 헌신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 떤 과정이 있었는지요. “저는 사실 배운 게 없는 사람이에요.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어 요. 처음 이 사실을 교회에서 고백했을 때 다들 의아해하더군 요. 가족마저 놀라더군요. 매사에 당당하던 아빠에게 그런 과 거가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를 숨 기고 산 것이죠. 이처럼 무지한 삶을 살던 제가 힌디어를 배 우고 인도에서 선교사로 산다는 것은 정말 주님이 하신 일이 에요. 주님의 은혜죠. 복음을 만난 후 선교관학교를 통해 인도 로 비전트립을 가게 되었지요.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두 번 다 시 못갈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꾸 이 나라 모습이 생 각나더군요. 어렸을 때 살던 곳과 비슷한 환경이고 고향 같았 죠. 이후 6개월 과정의 복음사관학교(GNA)에서 공동체훈련을 거치며 삶의 각 영역을 다듬어주셨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런 시간동안 주님께서 저를 선교사로서의 삶으로 준비시켜주 신 것이지요. 신학도 하지 않았고 영어도 잘 모르기에 ‘나는 선 교와 무관한 사람이다’는 생각을 바꿔주신 것이지요. 직접적인 계기는 말씀이었어요. 어느 날 주님이 요한복음 15장 16절 말 씀을 주셨어요.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택해서 보낸다’ 나 같은 사람 불러서 주님의 은혜를 나타내시려는 마 음을 알게 되었고 단순히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주님 이 만져주셔서 갈 수 있었을뿐이에요.”
– 선교지에 가기로 결정하신 후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담임목사님께 말씀드렸을 때 조금 당 황하시더군요. 이제 겨우 복음을 만나고 신앙생활이 걸음마 수준인데 말이죠.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제가 그런 염려 를 받은만한 위인이었죠. 목사님은 꼭 그 나라가 아닐 수도 있으니 다른 나라도 다녀와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면하시더군요. 그래서 다른 곳을 다녀왔지만 마음은 변함없더군요. 아내 역시 저의 이같은 결정을 듣고 몹 시 힘들어했지요. 그런데 주님이 제가 복음사관학교에 서 훈련받고 있는 기간 동안 아내의 마음을 바꾸어 주 셨어요.   저는 선교사로 헌신한 막내 동생을 보고 미쳤다고 말 하던 자였어요… ‘누가 예수 믿지 말래? 왜 그길로 가 려고 해…’ 보이는 길 중에 목사님 되는 길도 있고 다른 길도 있는데 왜 꼭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가려는지 이 해가 안된다고 윽박질렀어요. 그런데 이제 주변 가족 들이 말하죠. 한 명이 미쳤는데. 같이 미쳤다고… 저도 이렇게 헌신하면서 동생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전에 하던 사업은 어려운 시기를 만나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었고, 부모님이나 자녀문제도 주님이 정 리해 주셨어요.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신 주님 의 은혜로 순종할 수 있었죠.”
– 인도에서의 사역과 삶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그곳에 간지도 만 3년이 넘었네요. 북인도 지역을 거 의 일주를 하고 있어요. A시에서 1년 넘게 살았고, 주 님이 허락하셔서 D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인 선교사님을 통해 현지어를 1년 반 동안 배웠습 니다. 일년 정도 언어를 배우는 동안 정말 머리털이 빠 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참 기쁘고 감사한 시간이 었죠. 또 프로젝트에 띄워서 매주 기도24365 홈페이지 에 있는 화요중보기도모임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20여 명이 모여 기도모임을 인도하고 있었어요. 제가 그걸 어떻게 할 줄 알았겠어요. GNA 훈련 때 배운데로 한 거죠. 현지 한국 선교사님들도 언제나 당신의 사역만 을 놓고 기도하다가 열방을 품는 기도에 적잖은 도전 을 받으셨다고 고백하시더군요. 그렇게 8개월을 그렇 게 기도해 오던 중 지난해말 협력하는 선교사님과 팀 에서 갑자기 저의 거처를 위해 기도 하시는 거에요. 저 는 그곳에 있으면 팀에도 득이 될 것 같았는데 주님이 새로운 길을 예비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부어지니깐 정말 모든 곳에 복음이 전해지길 위해 댓 가를 지불하는 거죠. 그리고 주님이 저를 지금 있는 B 시로 인도하셨어요. 베테랑 선교사님들도 꺼려하는 곳 인데, 나 같은 사람이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 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왜 그런지 허리가 아프기 시작 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허리가 쿡쿡 아픈게 약을 먹 어도 낫지를 않았어요. 몇 달을 고생하는 중에 주님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마음을 주셔서 2월 기도모임 때 저도 모르게 ‘가겠습니다’ 라고 선포했어요. 그 런데 그때부터 정말 신기하게 허리가 안 아프더라군 요. 그곳에  계시는 선교사님께 바로 집 좀 알아봐달라 고 전화를 드린 후 떠날 준비를 했죠.”
– 먼저 우리의 순종을 받으시고 주님이 이끄셨군요. 이 사과정은 어떤 간증이 있으신가요?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았죠. 잘 아시는 선교사님이 물 으시더군요. “돈 있으세요?” 그 당시에 제가 돈이 없 었거든요. 계약하러 가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데 무슨 마음인지 출발할 날짜까지 선포했죠. 팀 모임 중 한 선교사님이 다음 주 헌금시간에 모이는 것은 저 의 가정 이사비용으로 헌금하자고 제안하시더군요. 속 으로 몇 명이나 헌금할까 하며 전혀 기대하지 않았죠. 그런데 바로 그날, 한국에서 갑자기 오신 장로님들이 기도모임 중에 저희들의 믿음의 행보에 도전되셨는지 꽤 많은 액수를 헌금하셨어요. 정확한 금액이었어요. 조금 모자랄지 걱정했는데 은혜로 겨우 이사를 하고 집들이까지 가졌어요. 30명의 선교사님들이 모여서 식사를 했던 큰일을 다 치루고 나니 체력과 돈이 모두 바닥났고, 이제 어떻게 살지 걱정이 들더군요. 지쳐서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저 이제 더는 못 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때 이런 응답 을 주셨어요 ‘그래 맞아 너의 한계는 여기까지야’ 여기 까지라는 말씀을 주실 때 손뼉을 딱 치게 되었습니다. ‘맞아요 여기까지예요. 이제 주님이 하십시오.’ 고백하 니 마음에 기쁨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 현지에서 선교사님들을 조건 없이 연합하고 섬기는 사역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사역을 하며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 인 것 같아요. 자기 것을 내려놓는 것. 그렇지 않을 때, 관계의 어려움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결론을 내리게된 것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가갈 때 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사랑 없이 서로를 품지 않으면 사 소한 것으로 인해 아주 어려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 다. 그래서 연합의 유일한 조건은 복음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연합하려면 자기 기준이 없어야 하는데 그 것은 죽는 것 밖에 없잖아요. 제 마음에 늘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무슨 말이 있어’ 상대를 조건 없이 섬 기면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이죠. 때로는 그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말입니다. 연합을 목적으 로 하고 다가가면 결코 연합할 수 없더군요. 다만 복 음이 내 안에 실제 되고 아버지 마음이 부어져서 다가 설 때면 자연스럽게 연합을 허락하시는 주님을 경험 하게 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지금 있는 곳으로 주님이 인도하셔서 나섰고, 계속 주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숙소에 기도처를 만 들고, 그곳에 기도자들이 와서 얼마든지 기도할 수 했 어요. 누군가 기도하길 원할 때 함께 하게 되기를 기 대해요. 혼자 결정하기 보다는 함께 상의해서 결정하 게 되겠지요. 그래서 연합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떤 일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 저 함께 사는 아내 산띠(평강이라는 뜻)지와 현지 선 교회와 협력하여 나갈 계획입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요. 주님의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엄윤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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