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년이 지났다. 강원도에서 작년 3월 경북 김천시에 있는 작은 기도원으로 이사 한지. 이곳은 순회선교단 안흥훈련원의 큰집에 서 분가하여 순회선교사훈련학교를 위해 주 님이 허락하신 장소였다. 당시 이 기도원은 비어 있어 사용되지는 않고 있었지만, 주인 이신 분들이 삶을 녹여 기도하고 잘 가꾸어 놓은 곳이다.
앞에는 사과밭이 있고, 각 종 과수 나무가 가득한 자그마한 동산이 있어 시골의 풍경 과 삶을 풍족히 누릴 수 있는 아주 아름다 운 곳이다. 이사할 곳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 님이 주신 말씀은 민수기 27장 7절의 슬로 브핫의 딸들이 그 아버지의 기업을 딸들에 게 달라하여,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이 계 속 유전될 수 있게 한 믿음의 행위의 말씀이 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서 ‘복의 통로’ 로 서게 될 것을 기대하게 하셨다.
훈련학교 의 특성상 집중하여 훈련을 하며, 주어진 일 들로도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도 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그저 우리 안에서 만 이뤄지는 일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하나 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것이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훈련학교에서 훈련 생들의 상황들 하나하나에 마음 졸이며 기 도해야만 하는 일들과 또한 섬기는 나 자신 의 나약하고 하나님 앞에 믿음 없는 모습의 연속이었다.
이전에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 라도 가리지 않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일이 많아도, 바빠도 할 수 있고, 이 것이 더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맡겨진 두 가지 종류의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일에도 전심을 쏟을 수 없었다. 급하게 처리 하기만 바쁘고, 실수도 잦고, 변명과 핑계를 대며 경건의 생활에서도 멀어지게 되었다. 일주일에 서울, 인천 등으로 왕복 700여 km 되는 거리를 회의, 모임, 강의, 방문, 공 항 픽업들을 위해 꼭 1, 2회는 다녀와야 했 다. 운전하는 내 머릿속에는 ‘다음엔 무슨 일 을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으로 가득했다.
이런 중에 동료와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었다. 신뢰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동 료가 보이는 반응에 따라 변하는 감정, 불신, 시기, 미움. 그러면서 내 기준과 나에게 맞추 어주는 사람만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 은 무시하는 악독한 나의 모습을 보게 하시 며, 복음 앞에 세우셨다. 이렇게 1년을 지나게 되며, 올해 4월 어느 날, ‘복음과 선교’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는 날이었다. ‘복음’이라는 하나님의 전부를 내 어준 엄청난 진리, ‘선교사’로서 목이 터져라 외쳐야하는 ‘선교’라는 목적이 너무 분명한 시간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강단 위에 선 나 의 모습은 입이 바짝 마르고, 등에서는 식은 땀이 나고, 앞에 앉아계신 사람들의 얼굴은 쳐다볼 수도 없고, 머리 속은 점점 하얘졌다. 자꾸 눈길은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쉬는 시간 한 형제가 다가와 너무 힘들어 보이신 다고 힘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갔다. 겉으로 는 웃으며, “주님이 하십니다!” 라고 했지만, 수치, 창피, 무너지는 자존심, 실패감, 하나님 을 향한 원망, 어렵게 학교를 이끌어가고 있 는 지부 식구들에 대한 미안함…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며, 두 번째 시간을 어 떻게 마쳤는지 모르게 내려오고야 말았다. 바로 다음 날. 김천에서 훈련학교를 진행하 며 주일 예배에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이 처 음으로 훈련원을 방문하셨다. 작년에 이곳 김천으로 내려와서 다니기 시작해 1년을 넘 게 다니며, 복음과 기도로 함께 협력하고 싶 은 마음에 기도하고 있던 교회였다. 항상 분 주 할 수 밖에 없는 주일날, 목사님을 붙잡고 어렵사리 식사에 초대했다.
1년을 넘게 기도 했으니, 주님이 이날 반드시 무언가 결실을 맺게 해주실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점 심식사 자리에서 이런 주제, 저런 얘기가 오 가다가 빨리 가셔야한다는 목사님을 붙들고 진짜 마음에 있던 바인 느헤미야52일기도를 소개했다. 할 수 있는 한 겸손한 표현으로 참 여를 넌지시 권유했지만, 생각해보시겠다는 한마디만 하시고는 금방 자리를 떠나 버리 시고 말았다. 내 안에 밀려오는 실망들!
이런 시간들을 돌아보면, 복음 안에 믿음으 로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 중 한 가지는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절망을 겪 게 하시는 일이였음을 깨닫게 된다. 머리로 는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기쁘지 않은 시 간들. 이 절망의 시간들을 겪는 이즈음의 개 인 묵상의 말씀들은 요셉이 창고를 열어 기 근을 당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창세기였 다. 이 말씀이 어느 날 실제가 되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 단체를 조금은 알고 있는 지역 교회 목사님 한 분이 우연히 기도원을 방문하여 교제시간을 가졌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지 역의 4개 교회가 모여 연합 금요철야를 하 며,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4월말 근처에 있는 완동교회에서 ‘느헤미야 52일 기도’가 진행돼 함께 참여했다. 내가 아 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할 무렵, 주님은 사 람들을 보내어 더욱 복음과 기도로 연합하 게 하셨다. 이런 일을 겪으며 은혜와 진리는 나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님께 있음을 확인 하게 되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과 은혜의 충 만한 창고가 되어 언제든지 퍼주고 또 퍼줘 도 다시 생기고 넘치는 샘물 같은 은혜인 것 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나의 영혼에 다른 능 력, 열심, 경험, 경력, 인정을 기대하고 쌓으 려는 헛된 몸짓을 그치게 하셨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복음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시간 으로 이끌어 주셨다.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이미 약속된 축복을 언제든 주님께 더욱 구 하여 누리는 자리가 나의 자리임을, 또 나의 어떠함과 무관하게 내부의 훈련학교에서와 외부의 지역 교회를 섬길 수 있는 복의 통로 로 부르시고 세우셨음을 알게 하시는 시간 이었다. 언제나 항상 성실하신 주님께 처음 십자가 에서 받았던 은혜의 충만한 그날처럼 나아 가기를 다시 결단하며 믿음으로 일어선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마라나타!